지증대사 부도. 부도비
신심 돈독한 사찰 순례단 보살님들은 여러 전각에 모셔진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부도비 전각에서 우요삼잡 과 탑돌이를 마치시고 총총걸음으로 백운대 마애불을 친견하려 가신 모양이다. 뒤쳐진 자의 여유인가? 느긋하게 게으름을 부려도 부끄럽지 않고, 동중정의 한가로움은 사치는 아닐련지?
지증대사적조탑
지증대사(824∼882)는 17세에 부석사 경의율사(瓊儀律師)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말년에 봉암사를 창건하고 헌강왕 7년(881)에 왕사(王師)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봉암사로 돌아와 이듬해인 882년에 입적(入寂)하였다고 전해온다.
지증대사 적조탑은 지증대사의 부도이며 지증은 시호(諡號)이고, 탑호(塔號)는 적조(寂照)이다. 구산선문과 함께 시작된 부도는 초기 형식인 팔각원당형으로 방형 지대석 위에 화려하고 세밀하게 각부를 장식하였다.
팔각 하기단에는 면마다 부도를 수호하는 사자가 도드라지게 새겨져있다.
상기단은 뭉개구름이 모서리 기둥마다 피어오르고, 가릉빈가는 극락음을 노래하고 있다.
몸돌에는 우주를 새겼고 자물쇠와 문고리가 달린 문짝 모양을 조각하였다.
팔각의 지붕은 겹처마이며 처마에는 반전이 보인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연꽃받침 위로 노반.복발, 보주가 남아 있다.
지증국사 적조탑비
탑비는 하동 쌍계사 진감국사비, 보령 성주사 낭혜화상비, 경주 숭복사비와 더불어 최치원의 사산비문의 하나이며 글씨를 쓰고 새긴 분도 분황사의 혜공스님이 83세 때라고 하니 학문과 불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비문에는 초기 선종의 도입과정,구산선문 개창조가 설명되어 있으며 희양산문은 다른 산문과 달리 북종선의 맥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깊은 설명을 피하는 것이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디테일한 내용과 관련 자료를 더 알고 싶은 분은 답사자료실 방 '228'을 참조하기 바란다.
당으로 부터 들어온 초기 귀부의 당당함에서 벗어나 용의 형상이 뚜렷하다. 등에는 육각문에 꽃을 새겼다.
비좌도 화려하며 측면에는 합장한 보살상이 무릎을 꿇고 있다.
사실 봉암사에는 지증대사비와 비슷한 부도와부도비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정진대사가 그 주인공이지만 사찰순례단의 일정 때문에 들릴 수 없었다. 아니 순례단 핑계는 게으름을 정당화 할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수하게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또한 하수들의 매력 아닌가?
개산조가 북종선의 선승임에도 100년도 지나지 않아 입적한 정진대사는 남종선의 선승이라 흥미롭지만 미답사의 아쉬움을 자위하기 위해 돌아오는 버스에서 유현에게 넌지시 동의를 구했더니 속내를 알아차리고 희미한 표정으로 찐한 웃음을 짓더라.
" 연곡사에서는 북부도를 답사후 동부도를 보아야 하듯이 봉암사에서도 지증대사부도비를 보고나서는 정진대사 부도는 의미없을거다 그치???"
마애불 가는 산길
침류교?를 나와 백운대를 향해 산길을 오른다. 그런데 참으로 궁금하다. 동리산 태안사, 석남사 등 계곡에 놓인 전각, 다리에 왜 배개 침(枕)자가 많이 들어갔을까? 건방지게도 물위에 베개 없이 누워 잠자는 만화 주인공의 스승으로 그려진 긴 수염의 도사가 떠오는 까닭은 무엇인지? 선종의 화두와 관련이 있을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해본다.
여느 산길보다 조심스럽다. 선승들의 포행길을 버린다는 생각도 잠시뿐 흐르는 계곡물과 산죽의 속삭임에 오감은 행복에 허물어진다. 아무도 보이지 않은 산길,부도비에서부터 동행한 님은 들꽃 이름을 반복해서 질문하며 나의 무지를 즐기며 아는자의 위세(?)를 만끽하고 있다.
나는 다짐을,이를 악물고 다짐한다. 두고보자!! 내 기어코... 그참 절집 순례와서 이래도 되는가? 그날 배운 들꽃중 긴 설명과 더불어 고부갈등을 서글프게 간직한 며느리밥풀이 떠오른다. 며느리배꼽,고마리, 미꾸리낚시와 비슷한 며느리밑씻개 꽃은 있는데 시어머니 이름이 들어간 꽃은 없음으로 미루어 꽃이름은 분명 시누이가 명명함이 분명하지 않을까?
백운대
최치원 글의 진위여부는 백해무익한 한가한 중생들의 구업
백운대 마애보살좌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근처 바위에 새겨진 관음보살 명문으로 인해 명명되었는지 공식적 명칭은 '백운대 마애보살 좌상' 이지만 누가보아도 여래임을 알 수 있다. 순례후 그림과 더불어 간단히 설명하면서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민머리 보살도 보지 못 했고 연꽃을 지물로 든 여래도 보지 못했다(이건 착각이었다. 선산 도개중학교내 궁기리 석불에서도 연꽃을 든 불상을 보았다)고 했더니 '청한'님이 쪽지를 보내와서 가섭을 바라보는 염화시중의 석존이 아닐까라고 했다.
나 역시 당연히 여래로 생각했지만 그렇게 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었다. 답사기를 올릴때 확실히 알아보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못 하겠다. 다만 지증대사비문에도 염화시중 문구(" 임금께서 상쾌한 듯 흔연히 계합(契合)하고 말씀하시기를, “부처가 연꽃을 들어 뜻을 나타냈거니와....)가 보여 흥미를 북돋았다.
이 마애불과 관련 문화재청, 문경시청 홈에는 짧게 설명만 되어있다.
"이 불상과 관련하여 희산구법(曦山舊法)에 백운대미륵비명(白雲臺彌勒碑銘)이 실려 있는데, 거기서는 이 「석면미륵상(石面彌勒像)」이 환적의천선사(幻寂義天禪師)의 원불(願佛)이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존명(尊名)이 미륵(彌勒)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염화시중(拈花示衆).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다.
비우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채울려고 하는 삶 아닌가? 나는 오늘 봉암사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비우고 가는지...
봉암사 물소리...전순영
한 마리 새가 내려 앉았다
2007.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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