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행랑채
기록을 들추어보니 답사 목적으로 가장 최근에 방문한 것이 2003.6월 햇수로 5년이 지났다. 그런저런 이유로 다녀갔지만 더위가 정점에 이른 오늘 또다시 상주 양진당을 찾았다.
낙동강과 접한 낙동면에 위치한 양진당은 검간 조정 선생이 지은 민가 안채이다. 조정(1555∼1636)선생의 자는 안중(安仲)이요 호는 검간(黔澗)으로 본관은 풍양이다. 조선시대 선조 · 인조 때의 학자로 한강 정구. 서애 류성룡.김성일의 제자이며 학봉은 선생의 처삼촌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양진당 집터도 학봉이 잡아주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인조 때의 학자이며 관료인 조정(1555∼1636)이 임진왜란 당시에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손수 적은 일기이다. 조정은 김성일과 정구의 문인이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였고, 선조 29년(1596)에 도체찰사였던 이원익의 막하로 들어가 활약하였다. 선조 36년(1599)에는 사마시에, 2년 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 사헌부감찰, 대구판관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가 죽은 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양진당은 배산 임수를 갖춘 전형적인 양택 입지조건을 갖춘 경사진 지형에 좌향하였으며, 정면은 9칸이다. 원래는 사랑채가 있어 口字型이었으나 지금은 행랑채를 복원하여 口자형 이며 지붕은 맞배 지붕이다.
양진당 안채
정면 9칸의 안채는 다소곳한 주거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호방한 사랑채 분위기다. 더구나. 고상형 형태를 취하면서 온돌을 깐 특이한 구조다. 흔히 온돌과 마루를 우리 고유의 주거문화로 인식하지만, 온돌은 추운 북방식. 마루는 비가 많고 습한 남방의 주거 형태로 두가지 문화의 접경이 우리 나라이다. 이런 고상형 구조는 습한 기후와, 강우량, 강물의 범람 등 자연환경과 기후를 고려한 효과적인 선택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강물의 범람으로 사랑채가 무너졌다고 한다.
계단
고상형 구조로 인해 출입 계단을 별도로 좌우에 설치하였다.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퇴주 아래는 방형이며 위는 두리기둥이다. 도편수의 미적 감각인지, 우리고유의 천원지방을 고려했는지 알 수 없어도 탐승객에는 이채로운 모습이다.
계단
사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하여 안마당에서 경사로를 조성하는 경우는 우리고택에서 종종 볼 수 있지만 이런 유형은 유일무이한 구조로 보인다.
툇마루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 느낄 수 없는 장엄미가 풍기지만 안채 공간에 특별한 의미부여보다는 고상형 구조로 인한 조형으로 판단되며, 머름을 높여 툇마루로부터 방으로 출입을 은근히 금하고 있는 구성이다.
겹집 구조 온돌방
남부지방의 日자형 홑집 구조와 달리 전후에 방이 놓인 田자형 겹집구조를 갖추었다. 일반적으로 추운 북부지방에서 방온 극대화 구조로 채택된 구조이지만 선산 해평고택에서도 보여 남방 한계선을 가늠치 못하겠다.
측면
복원 공사 중이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퇴락할텐데...
후원
왜? 사랑채가 있어야 할 곳에 행랑채를 복원했는지 모르겠다. 부지 확보의 어려움으로 그랬을까? 차라리 그대로 두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풍양 조씨 교육원으로 활용하는 공간인데 행랑채에서 안채를 바로 바라보는 구조가 얄굿지 않을까?
후원 담 너머 회화나무는 올해도 변함 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
2007.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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