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달산 남쪽 자락의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가 창건하여 1400여년의 불맥을 이어오고 있다. 진입로 계곡을 아우르고 서있는 울울한 소나무 숲도 아득히 먼 김룡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벗 삼아, 고색의 향기가 그윽한 숲길을 향하면 멀리 김룡사의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이 나온다.
이처럼 멋진 절집에 창건 설화가 여럿 전해오지만 그중 하나를 주목해보자.
"옛날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운봉사 아래 숨어 살았다. 날마다 지극한 심정으로 불전에 엎드려 참회와 속죄를 하던 중 어느 날 용추의 용녀와 인연을 맺고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용'으로 용모와 지혜가 특별히 뛰어났다. 아들이 태어난 뒤부터 가운도 크게 일어나 김씨를 김장자라 부르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을 이름도 김룡리로 바꾸고 절 이름도 운봉사에서 김룡사라 했다고 한다."
김룡사는 산세와 역사에 걸맞게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한일합방 후에는 31본산 중의 하나로 45개의 말사를 관장해 왔고 도제교육기관인 경흥강원(慶興講院)에서는 근대 불교사에 많은 인재배출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초대총장이었던 권상로 대종사를 비롯해 성철, 서암, 서옹 등 많은 선지식들이 주석했다. 특히 성철 큰스님께서 팔공산 성전암에서 10년 동안 동구불출을 하신 후 1965년 이곳으로 돌아와 대중들에게 처음 설법을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보장문. 솟을문으로 민가 대문처럼 보인다. 대문에는 아금강, 흄금강이 웃통을 벗고 맞장 붙을 자세로 불심검문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아 금강문의 다른 이름이다.
우물. 김룡사는 풍수에서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와우형국의 명당이라 한다. 와우 형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누워서 되새김질하는 입을 최고의 자리로 치며, 다음이 젖에 해당한다. 바로 젖소의 젖에 해당하는 곳이 우물이니 사시사철 마를 날이 없으리라.
하지만 김룡사 와우형국에서는 기가 응결된 곳이 명부전 자리이며 그로 인해 서옹, 성철, 서암 스님이 득도하였으며 계곡 가장자리서부터 담을 둘렀던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소가 달아나지 못하게 하려는 풍수비보라고 여러 자료에 보인다.
내이야기를 보태면 소가 달아나지 못하게 위해서는 소 입 앞에 해당하는 부분에 먹이가 될만한 숲을 조성하거나, 고삐를 묶을 기둥이 필요해 기둥을 대신 탑을 세우기도 했다.
경북 청도의 떡절(옛님의 숨결 방 답사기 참조)은 개가 달아나지 않도록 개의 입에 해당하는 터에 인위적으로 떡절을 창건하여 개가 도망가지 못하게 한 비보 사찰이며, 경북 성주의 동방사지 탑도 일부 풍수들은 성주 형국이 와우형이라 소의 고삐를 묶는 상징으로 설명한다.
보장문을 거쳐 석조 사천왕이 시립한 구역에 자리한 범종각 아니 봉명루다. 편액의 깊은 의미를 감히 헤아릴 수야 없지만 짝 잃은 숫봉(鳳)이 암봉(凰)을 얼마나 애절하게 찾겠는가?
밤이 일찍 찾아오는 겨울 저녁 예불이나 별빛이 가득 산사에 내려앉은 여름 새벽 도량석 때 숫봉황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다.
노주석.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 왜색풍이라는 선입견 때문이겠지만 실상은 서로 조성연대가 다르며 한 기만 일제강점기에 세웠다.
김룡사 대웅전. 산지 가람 대웅전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병풍처럼 소나무가 감싸 포근하고 아늑하며 바람도 피해 갈 듯하고 밤이면 별빛이 중정에 와르르 쏫아 내릴 것 같은 분위기다.
높지만 거부감 없이 맞아주는 2단의 석축 위에 다소곳한 자태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후벽위로 도열한 공포도 눈요기며, 괘불을 보지 못 했지만 괘불대는 정겹기만 하다. 사랑에 빠졌나 보다.
측벽의 용은 360도 전방위로 방어 태세이나, 실실 웃음만 나온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증상이 깊었다.
한 점 버릴 것 없다. 불사로 남은 옛 암수기와는 이렇게 멋지게 환생했다. 멋지지 않은가? 사랑에 사랑에 깊게 아주 깊게 빠졌나 보다.
풍경 그리고 화룡점정.김용사 대웅전과 사랑의 마침표련가?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불을 안치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 왼쪽에는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전면 창살은 정자살무늬다. 극락에도 꿀이 필요할까?
금륜전. 금륜불정치광여래에서 유래한 칠성각의 다른 이름으로 상주 남장사도 금륜전 현판이다. 이또한 지역적 특성인가?
"근래에 와서도 김룡사에는 이적을 보이는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대웅전 오른쪽 뒤 금륜전 앞뜰에는 수령 100여년이 된 백일홍 한 그루 있는데, 이 나무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백일홍 나무 아랫부분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1m 남짓이고 꼭대기 부근에 자리를 잡은 소나무는 30㎝ 가량으로 스님들 말로는 성철 스님이 입적한 뒤에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달빛에 물들고 별빛으로 포장된 신화는 신화로서 아름답다.
나한 12분을 봉안하고 있는 응진전. 창살이 절집 같지 않다. 배롱이 만개할 즈음이면 환상적 장면이 연출될 듯하다.
절집과 거리를 두고 위치한 세장한 삼층석탑이다. 참으로 무성의한 석공의 작품 같다. 종교적 참배 대상으로 보이는가? 앞에서 언급했던 풍수 지리의 비보 목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층의 탑신에는 인물상 1구가 새겨져 있다. 이분은 왜 이자리에 계시는지 아실텐데...
이부처님도 정체 불명이다. 새로 조성된 연화대좌 위에 세워져 있는 불상으로 육계가 특이하게 삼각형이며 얼굴은 둥글다. 양손은 가슴과 배 앞에 두고, 희미하게 약합으로 보이는 지물을 손에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로 대접 받지만 내눈엔 조선시대 민불로 보인다.
명부전으로 내려 오는 길. 300(?)년 된 해우소. 화장실이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 하리라.
김용사 기가 응축된 터 명부전. 어느님은 그 옆전각에 살고 싶다고 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 할 것이니 횡설수설 끝
2007.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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