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안성시

[스크랩] 안성...대농리 미륵, 죽리 석조여래

임병기(선과) 2008. 6. 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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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입구에서 촌로에게 미륵불 위치를 여쭈었더니 "우리 미륵님은 소원을 꼭 들어주니 정성을 다해 뵙고 가시란다"  참으로 흐뭇하지 않은가? 미륵이 사는 동네 주민들이 바로 미륵불이다. 지금은 찾는  사람 드물어 외롭고 적적할지 모르지만 최근까지도 민속신앙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마을과 떨어져 홀로 계시는 모습이 애처로와 주민들이 마을로 모실려고 했으나 그자리에서 마을을 지키시려고 땅속에 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주민의 마음도 곱고 당신앙처로서 미륵의 신격화도 거슬리지 않는 전설이다.

 

 

우리네 시골 마을은 남향,배산임수,후고전저의 입지적 고려는 물론 자연재해, 벽사,비보 등의 이중 삼중의 바리케이트로 마을민의 안녕과 복을 염원하고 있다. 미륵불이 기자, 벽사 역활을 다하지만 동수라는 숲을 조성하여 사악한 기운 접근, 바람의 피해를 차단하고 있다.



하반신이 땅속에 매몰된  대농리 미륵은이 균형감이 있어 보인다.  이마을에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 모습처럼  푸근하고 원만하며 넉넉하다.

 벙거지모자, 긴 귀, 두 손에 보병으로 인해  관음보살, 또는 약사여래불로 보이지만 민초들에게는 미륵일 뿐이다. 그걸 따진 놈들은 배부른 놈들이니까!!!

 

미륵이 하생하는 날 불쑥 땅속에서 솟아 오르겠지?

 

길을 잘못 들어 마을 뒤로 들어 갔다.  석조여래 입상은 죽리 외평마을 동구 당산나무와 수백년을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이로미루어 식자들은 석조여래입상이라고 부르겠지만 역시 미륵불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고려중기 큰 장마나 전염병 등 마을에 우환을 방멸키 위해 조성된 불상이라"이라고 한다. 당신앙과 부합되는 이야기다.  저부조로 전면을  조각하였고, 선정인 수인에 연봉우리를 들고 있다. 대부분 선정인은 좌불인데 죽리석불은 입상이다.

 

전설과 달리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측되지만  이제는 자꾸 측은하고, 외로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우려일까? 먼 훗날 아주 먼훗날까지 동네 주민의 친구, 보호자로 남아 있어야 할텐데......

 

2003.03.13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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