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옥천군

[스크랩] 옥천...청마리 탑신제당, 솟대

임병기(선과) 2008. 6. 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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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이면인데 석탄리에서 청마리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누구나 한 번 쯤 들렸을 경부고속도 금강휴게소 밑을 지나 굽이굽이 금강과 어깨동무하며 달려야 한다. 한참 후 비포장 도로에서 길을 물으니 청마리를 지나쳐 왔다.

 

 

고향가는 길. 초행길이지만 아주 눈에 익은 한국인의 정서와 어울리는 전경이다. 데쟈뷰라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강물에서 목욕하고, 소를 몰고 산으로 향하는 우리네 모습이 눈앞에 전개될 듯하다.

 

 

"신당은 마한시대부터 마을경계 표시로 수문신과 풍수상의 액막이로서의 구실을 하여 왔으며, 마을의 풍년과 동네의 평안을 비는 신앙성표로서 믿어왔다. 형태는 원탑(조산탑), 짐대(솟대), 장승, 산신당 등 4개 형태의 복합 민속 신앙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는 매년 음력 정초에 날을 잡아 생기복덕 (生氣福德)한 제주(祭主)를 선출하여 제를 올리는데 탑신제, 짐대제, 장승제, 용왕제를 매년 음력 보름날 탑과 짐대 장승의 순으로 제를 올린다. 그리고 장승과 솟대는 윤달이 드는 정월에 새로 세운다."

 

 

작은 믿음이고 소망이다. 산천비보 성격이 강한 조산탑이지만. 척박한 환경 손바닥만한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농투쟁이의 의지처였다. 나하나 잘되자고 빌고빈 신앙이 아니었다. 우리를 생각하고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자연에 순종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다.


 

오래전 폐교된 초등학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조산탑. 악동들의 재잘거림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다. 이제는 모두들 떠나고 친구라고는 솟대위 오리만 남았다.

 

 

 짐대. 솟대의 조성목적은 이승과 저승의 매개체,마을의 안녕을 비는 수호신, 행주형 형국의 돛대,화기가 강한 지세의 비보,제액초복,풍농,다산,미륵신앙 등 다양하다.

 

또한,  솟대도 다른 마을 신앙물 처럼 마을 어귀에 세워지는데 마을 어귀의 솟대는 동민들에게는 성과 속, 청정과 부정의 경계로 인식되어짐을 알 수 있다.

 

청마리 솟대에는 숯과 황토로 용을 산징한 그림을 장대에 새긴다고 한다.  물을 관장하는 용은  역시 농경사회의 부산물이다.

 

 

이곳에 전래 되어 오는 장승과 솟대를 만들 나무를 운반하면서 불렀다는 노래를 옮겨보면...

모셔가세 모셔가세
모든 악귀 물리치실
추악대(推惡臺)를 모셔가세

모셔가세 모셔가세
천하대장군 모셔가세
우리마을 지켜 주실
천하대장군 모셔가세

모셔가세 모셔가세
지하대장군 모셔가세
우리마을 지켜 주실
지하대장군 모셔가세

영산신령 주신 선물
조산(造山)들로 모셔가세


 

조산, 솟대로도 부족하여 장승까지 모셨다. 힘든 생을 잊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조상들은 나무와 돌에도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래서 장승 솟대를 세울 목적으로 나무를 베어오더라도 산신께 먼저 고하였다.

 

산소에 무덤을 쓸때도 제일먼저 산신에게 고하는 것도 통과의례인 것이다. 우리민속, 생활에 널리 자리집은 통과의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다.

 

청마리 장승에 대해서 돌베개 답사 길잡이에도 잘못 기술되어 있다. 즉,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있다고 했지만 위에서 보듯이 지하 대장군이다. 내가 우리 민속에 관심을 가졌을 때 분명 장승은 남자만 있다고 배웠는데 그런 사례를 찾기가 어려웠었다.

 

청마리 장승은 분명 천하,지하 모두 대장군 즉 남성이다. 그런 원형을 발견한 것이 옥천 나홀로 답사의 가장 큰 보람이다. 따라서 요즘의 장승은 한마디로 여권 신장의 결과로 민속이 변화한 것이다.

2007.02.10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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