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밀양시

[스크랩] 밀양...영원사지

임병기(선과) 2008. 6. 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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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답사 못지않게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 맛보기도 답사의 중요한 동선에 포함 시킨다. 나는 자란 환경 탓인지 미식가, 식도락가는 고사하고 마당쇠 식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길을 나서며 문득 폐사지에서 자장면을 주문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깜짝 이벤트를 염두에 두었는데, 무슨 면소재지에 중국집도 없단 말인가?

 

 

 

망해도 철저하게 망한 영원사지.

차라리 석불상, 부도비도 땅속에 묻혀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폐사지는  흔적, 자취만 남았어도  화장으로 덕지덕지한 절집보다 여유롭고, 한가로우며, 나만의 불전을 세울 수 있는 그런 답사처건만 영원사절터에서는 그런 감흥의 이입이 애초에 스며들지 않는다.

 

신동국여지승람에 자씨산 영원사에 선조루가 있다고 했으니 아랫마을 할머니들의 친구가 되었을 미륵불을 모신 전각이 있었겠지만, 행정구역상 '서원리'는 사림의 거유 점필재 김종직을 모시는 서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학비리, 행정 명칭이야 서원리든 말든 동네 사람들에게는 절골, 탑골로 전해지는 것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얼굴은 뭉개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갔어도 할머니 어머니에게는 후세에 우리를 구원할 미륵불이며, 현세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해주는 지고지순의 신앙처인 까닭이다.

 

 

대추밭 한가운데 손바닥만한 공터에 강제구금된 부도, 부도탑비(?). 네분 석불이 계셨다. 

 

밀양읍지에 이제현이 비문을 지었다고 전해오는 몸돌을 잃은 부도탑비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힘이 있어 보이고 여의주를 물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을  새겨 두었으며 이수에는 희미하지만 제액이 보인다.

 

중대석,상대석이 만행길 나선 부도는 팔각 평면에 기단과 지붕돌만이 남아 있다. 기단은 안상이 보이고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또한 지붕돌에는 기와골과 막새기와까지 표현하였다. 

 

모여 있어 더 서러운 네분 부처님. 어떤이에게는 얼굴표정을 감추어도 이심전심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온화한 미소, 따뜻한 눈웃음이 전해온다는데...

미혹한, 건방진 나는 짜증만 난다. 아무리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지만 정면이라도 탁트인 공간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버려진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욱 긴 세월 아닌가?

 


영원사에도 대추알 처럼 많은 숨겨지고 왜곡된 사연이 없지 않겠지만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적한 시골 절집에 어울리지 않은 솜씨의 부도,부도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선사의 제자로 알려진 보감국사 혼구 스님이다.

 

강진 무위사에서 계를 받고, 승과에 급제하였지만 운문사에 주석하시던 일연스님을 찾아가 제자가 되신 스님이다. 오늘날 전해오는 삼국유사에 많은 부분을 보충한 인물이며 충렬왕과, 충선왕 재위시 국사를 지냈으며 1322년 칠곡 송림사에서 영면하시었다.

 

이런 사료로 부도, 부도탑비는 지방 장인의 작품이 아니라 왕실소속 장인의 작품임을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또한 영원사는 고려말 번창한 사찰이었으며 일연선사가 장흥 가지산문 보림사 맥을 이은 선승인 점을 고려, 영원사는 선종 사찰이었음을 추측 가능하다.

 

부도 공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여주 신륵사 자초 무학의 스승 나옹선사 부도. 금산사 방등계단과 함께 석종형 부도의 시원으로 자리매김하는 부도다.

고려말 양주 회암사지 중창불사를 마친후 회향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자, 나라에서 산문을 닫고 나옹선사를 회암사에서  밀양 영원사로 유배(?) 보내게 된다. 유배길에 여주 신륵사 근처에서 자연사인지 타살인지 입적한다.

 

만약, 나옹화상이 영원사에 무사히 도착  주석하다 입적하였다면 왕사인 무학이 영원사를 중창하지는 않았을까? 이때까지도 비록 첩첩산중이었지만 영원사는 조석으로 부처님 전에 향을 공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장면이 없었지만, 아니 자리할 틈도 없었겠지만 님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대추나무 아래서 성찬을 즐기며,  어느님의 판소리 한 대목이 울려퍼지는 폐사지에서 나지막히 보감국사 혼구 스님의 열반송을 읊조려 본다.

 

"가시나무 숲에 태어나 험한 시대를 살아왔네.

오늘 가는 길 과연 어디인가?

흰 구름 끊긴 곳이 청산인데

떠나는 사람 다시 그 청산밖에 있네."

 

2006.10.1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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