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밀양시

[스크랩] 밀양...영남루. 천진궁

임병기(선과) 2008. 6. 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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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님들  아침 일찍 출발한 답사로 피곤이 밀려오는 모습이다. 늦은 점심으로 식후 졸음이 더해가는 까닭에 모두들 영남루에 드러 눕는다. 그 와중에 나는 파랑새님에게 기치료를 받는 호사를 누렸다.

 

새로운 답사기 보다 예전(2003.11월)에 기록해둔 답사기를 옮겨 놓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돌계단을 오르니 남강을 굽어보며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가 당당하게 서있다. 본디는 영남사라는 절터 자리었지만 화재와 중수를 거듭한 후 조선후대에는 관아의 객사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여러 책에서 영남루의 건축적 맛과 멋, 익랑인 능파각, 침류각, 침류각에서 이어지는 월랑 처마곡선의  아름다움을 언급했기에 아니 내게는 더 이상의 표현할 능력이 없기에 횡설수설 영남루에 대해서 딴지를 걸어보자면......

우선, 영남루는 객사건물인데 -객사란 한양의 벼슬아치들이 지방출장을 와서 머물던 곳으로 중앙에 주관을 중심으로 양쪽에 부속건물인 익랑(헌)이 딸린 건물로 주관은 익헌보다 지붕을 높게하여 왕의 상징인 궐패를 모시고 한달에 두어 차례 궁궐을 향해 배례를 하던 건물- 영남루는 침류각은 한참 아래에(지형을 고려한 탓 이지만), 능파각의 지붕높이는 같게 조성되어 있고, 객사의 익랑에는 별도의 전각이름을 붙이지 않는데도 버젓이 현판을 달아 놓았으며, 또한, 익헌의 전각에도(어느 문장에서 따온 구절인지 모르지만) 불교적 냄새가 짙다.

 



뭐 고을원님이 종교를 두루 받아들이는 덕이 있는 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석남사 개울에 걸친 침계류와 비슷한 어감의 침류각은 물론 도교에서 신선의 발걸음을 의미하는 능파각이 왠지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궁궐건축에서 한정되는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건축물에도 위계가 있다.
즉,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으로 전이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인데, 주관인데도 불구하고 영남루(樓)이고 익랑이 각閣이니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는가?

 

뭐 사연이 있겠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던지!!
사연이 없으면 어때,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격식의 파괴라고 여기면 만사형통인데...
어찌되었던 관기를 불러 놓고 풍악소리 높이며 놀기 좋은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영남루 경내에 있는 건물로 원래 이곳은 요선관이 있던 자리이다. 효종 3년(1652)에 지었으며 공진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조 15년(1739)에 불탄 것을 영조 25년(1749)에 다시 지었으며, 헌종 10년(1844)에 크게 수리하였다. 1952년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단군 및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재위 918∼943)의 위패를 모시면서 대덕전이라 하였으나 1957년에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목조로 된 기와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기단은 낮은 2기단으로 앞면에만 문이 있고, 나머지 3면은 벽으로 되어있다.

최근에 원래의 문틀에 2중의 문을 덧대어 달았는데, 기법이 미숙하여 기둥의 높이를 전통적 비례에 비해 높게 보이도록 만들었다."...문화재청

 

2006.10.1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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