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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구 매일신문]자녀와 떠나는 답사여행(9)...12 정려각

임병기(선과) 2008. 6. 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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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떠나는 답사여행> 현풍 곽씨 12정려각
대구 달성군 현풍면 지리 못골에 가면 현풍곽씨 12정려각이란 건물이 있다. 현풍곽씨 집안에 내려진 정려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다. 정려(旌閭)는 충신이나 효자·열녀들을 표창하는 조선시대 제도이며, 정려각은 표창을 받은 마을 입구에 세운 집을 말한다. 현풍곽씨 집안의 정려는 무려 12개나 된다. 한 가문에 이렇게 많은 정려가 내려진 경우는 전국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 왜란 때 나라 위해 목숨 바쳐
이곳에 가면 솔례(率禮)라는 자연부락 표시석이 예사롭지 않다. 정려각 출입문에는 삼강문 현판이 걸려있다. 삼강(三綱) 오륜(五倫)은 유교 도덕의 기본으로 신하가 임금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지어미가 지아비에게 지켜야 할 도리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이른다.

현풍 곽씨 12정려각은 엄밀하게 말하면 충신 한 분, 효자 아홉 분, 열녀 여섯 분의 16정려각이다. 정려를 모신 각이 12려(閭)이어서 12정려각이라 할 뿐 실제로 정려는 16개이며 12정려각에는 려(閭)마다 현판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때 안음 현감이던 솔례 출신 곽준은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주위 권유를 뿌리치고 아들 곽이상, 곽이후, 사위 류문호와 함께 장렬히 전사한다. 비보를 접한 맏며느리 거창 신씨와 딸 현풍 곽씨도 자결하였으니, 나라를 향한 도리 충(忠), 부모를 위해 목숨을 바친 효(孝) 남편을 따라 목숨을 던진 열(烈)의 도리를 다하여 한 가족이 선조 31년(1598년)에 정려를 받았다.

사효자각은 망우당 곽재우의 사촌 곽재훈 아들 4 형제 곽결, 곽청, 곽형, 곽호는 임진왜란 때 병환중인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굴에서 피난하던 중 왜병에게 죽은 사형제를 기린 정려이며, 양효자려는 곽주의 아들 곽의창, 유창을 기린 것이다. 곽경성려(閭)는 부친 병환이 위중하자 혹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호수에 들어가 가물치를 잡아 병환을 치유한 효자려(閭)다.

광주 이씨려는 임진왜란 때 왜병으로부터 순결을 지키기 위해 투신 익사한 곽재기 부인의 려(閭)이며, 밀양 박씨려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죽음으로써 남편을 보호한 곽홍원 부인의 려이며,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이 대신 죽기를 원했으나 남편이 죽게 되자 식음을 끊고 죽은 안동 권씨려이다.

◇ 조선여인의 치열한 삶과 희생
효열부 전의 이씨려(閭)는 남편이 죽자 따라죽으려고 했으나 시부의 만류로 그만두고 시부가 운명한 후 자결한 곽내용 부인의 려이다. 시신을 염습하는 과정에서 이불 밑에서 발견된 전의 이씨가 남긴 절명사는 지은이가 알려진, 많지않은 조선시대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규방가사이다.

그 문학적 가치도 크지만 자신을 두고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으며, 다음 세상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남편을 따르겠다는 내용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정려의 역사성, 정신적 의의, 가치관은 오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가문의 영광에 가려진 여인네들의 치열했을 삶과 희생이 머리 속을 맴돈다.

솔례마을에는 이시애의 난 때 공을 세워 원공대신에 오른 곽안방 선생을 배향하는 이양서원이 있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입향조 곽안방 선생은 세종때에 해남현감, 익산군수를 역임하고 봉열대부에 올랐다.

선생은 세조 9년(1463) 청백리(조선 시대에 이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사간원의 수직(首職)들이 추천하여 뽑던 청렴한 벼슬아치)로 선정되었으며, 해남현감을 마치고 귀임할 때에 하인이 자물쇠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선생께서 놀라 "이것도 나라의 공적인 물건인데, 크고 작은 것을 따질 수 있겠느냐? 나를 더럽힘이 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 파격적 구조, 이양서원 인상적
솔례마을에는 이양서원도 있다. 이양서원은 곽안방`곽지운`곽규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숙종 33년(1707) 세운 서원으로, 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다가 근래에 면모를 갖추었다. 외삼문 읍청루는 솟을 문 위에 사다리를 통해서 올라갈 수 있는 다락이 있으며, 동서재도 좌우 대칭을 벗어나 느슨한 배치다.

서원은 강학공간 강당이 앞에 제향공간 사당이 뒤에 위치하는 이른바 전학후묘(前學後廟)가 전형이다. 지형적 제한에 따른 선택인지 알 수 없지만 이양서원의 배치는 강학 공간 경무당과 사당 청백사가 거의 일(一)字에 가까운 파격적 설정이다.

또한, 영남지방 서원 강당의 일반적 유형인 정면 3칸 마루, 좌우 1칸 방을 벗어나 좌우에 눈썹지붕(벽 또는 지붕 끝에 달아낸 폭이 좁은 지붕)를 달고 방을 낸 유례가 없는 형식이다.

임병기(답사카페 cafe.daum.net/moonhawje 운영)

<찾아가는 길>
구마고속도로 창녕·마산 방면 현풍IC에서 내려 1093번 도로를 타고 가다 구지 방향 18번 도로를 타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부정류장에서 구지행 시외버스를 타고, 대동정류장 하차한다. 문의 : 053)611-446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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