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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구 매일신문]자녀와 떠나는 답사여행(終)...선산 도리사

임병기(선과) 2008. 6. 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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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떠나는 답사여행> 선산 도리사
신라는 법흥왕 14년(서기 527년) 이차돈 순교 후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다. 국가 안녕과 왕실의 영화를 기원한 호국불교로서 신라불교는 정치, 종교, 사상, 문화, 미술, 건축, 문학, 국민의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서라벌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이보다 한 세기 전 눌지왕 재위 기간 중 고구려에서 묵호자(아도 화상) 스님이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 아도화상은 일선현(선산) 모례(毛禮)의 집에 머물며 포교를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직사각형 석재를 정(井)자 모양으로 짜고 밑바닥에 나무판자를 깐 우물 모례가정(毛禮家井)을 비롯하여 자취를 남겼다.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도화상은 공주의 질병 치료차 서라벌에 진출하였으나 기득권 세력과 호족의 시기와 질투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다시 일선현으로 돌아와 모례장자의 집에서 농사와 소를 치며 생활하였다.

◇ 겨울에 복사꽃 만발 '도리사' 명명
훗날 모례의 시주로 절을 창건한 아도화상이 겨울에 서라벌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는데 절이 세워진 태조산 밑에 때 아닌 복사꽃이 만개하여 눈이 부셔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도리사(桃李寺)로 이름지었고 도리사는 신라 최초 가람으로 자리잡았다.

경내에 눈길을 끄는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으로 전해오며 오래 전부터 '화엄석탑'으로 불려지지만 뚜렷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군위 삼존석불 앞 석탑처럼 이런 유형의 탑은 유례가 없다. 남쪽 면에 문짝이 음각된 단층기단은 서로 다른 판석을 세로로 세우고 장방형 판석을 가로로 덮었다. 이층, 삼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 삼층 몸돌은 마치 석탑 상륜부 가장 아랫부분인 노반석처럼 보인다.

극락전에 모셔진 조선시대에 조성된 여래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큰 목조 아미타 여래좌상은 머리는 낮은 나발(곱슬 머리), 작은 육계(보통 부처 머리 위에 혹과 같이 살<肉>이 올라온 것이나 머리뼈가 튀어나온 것으로 지혜를 상징)를 갖추었다. 최근에 금빛으로 개금불사한 여래좌상은 양팔에 걸친 통견의는 양무릎을 덮었다. 가슴아래 긴치마 모양의 군의(裙衣)는 띠 매듭 대신 앙연문상(仰蓮文狀)의 옷자락을 새긴 것은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 자연석 위에 만든 좌선대 전해져
도리사 중창기(1807년), 법당 중수기(1876년)로 미루어 조선후대에 중창된 극락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크지 않은 전각이다. 용마루에 전각에 비해 너무 큰 치미(전각`문루 등 전통건축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상징적인 장식물)를 장식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날렵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공포(목조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과 벽으로 전달시켜주는 조립 부분)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으며 추녀에는 버팀기둥을 받쳤다.

삼층석탑을 두른 낮은 담장으로 난 작은 문을 나가면 솔밭에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을 음기한 1655년(효종 6년)에 건립된 탑이 보인다. 자연석에 용이 조각된 아도화상 사적비와 도리사에 논밭을 보시한 사람과 규모를 기록한 숙종 38년(1712)에 세운 불량답(佛糧畓) 시주질비다.

비석 앞 자연석 위를 네모로 반듯하게 자리를 만든 바위는 아도화상이 앉아 좌선하던 좌선대로 전해오고 있다.
극락전 뒤뜰에는 1977년 사찰 경내로 옮기던중 진신사리가 발견된 종모양의 석종형 세존 사리탑이 있다.

◇ 사리함 발견 1천 년 사적 되찾아
사리탑은 네모퉁이에 사자상을 새긴 지대석 위에 종 모양보다는 항아리 모습의 탑신이며 연꽃봉우리형 보주가 얹혀졌다. 사리탑 안에서는 사천왕상, 보살상이 조각된 것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고루 갖춘 진신사리를 담은 금동 육각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국보 208호로 지정된 사리함의 발견으로 도리사는 잊혀졌던 1천 년 사적을 되찾았으며, 발견된 부처 몸에서 나온 사리는 백색의 타원형 투명체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사리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알려져 있다.

도리사에서는 부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인 적멸보궁을 건립하고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신라 전형의 팔각원당형 진신사리탑을 세움으로써 도리사가 신라 최초 가람임을 널리 알리고, 불교 성지로 자리하게 되었다.

임병기(답사카페 cafe.daum.net/moonhawje 운영)


작성일: 2006년 10월 11일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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