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령군

[스크랩] 의령 / 의병장 곽재우(2)...정암진, 충익사, 묘소

임병기(선과) 2008. 6. 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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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장군은 초야에 묻혀 지내다 1592년 선조 25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에서 가장 먼저 4월 22일 의병을 일으켜 왜병과 전투를 치룬 전장터가 바로 정암나루다.

 

정암나루의 솥바위

 

임진년 5월말 안국사의 중, 왜장 에케이가 이끄는 2만명 왜군이 배를 타고 남강을 건너 의령으로 침공 하자 장군은 적군의 이동로를 간파하여 감시초병을 배치 1,000여명 의병으로 일시에 공격,소탕한 승전지 정암나루다.

정암정

 

정암정은 정암나루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장군은 붉은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수천의 의병을 지휘하며 기강, 현풍,창녕, 영산,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워 왜병이 곡창인 호남 진출을 차단하는 한편, 낙동강 등지에서 적의 군사품 수송을 저지 하였다.

 

임란 이듬해 장군은 성주 목사, 진주 목사, 경상도 우방어사를 지냈고, 난후에는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경상도 우방어사 로서 현풍 석문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발발하지 창녕 화왕산성으로 들어가 대치하자 왜장 가토기요마사는 일주일 대치후 철수 했다.  장군은 사후 병조 판서 겸 지의금 부사에 추증되었다.


충익사

 

정부는 1978년 이곳에 충익사 사당을 마련 곽재우 장군과 17명 장령 및 무명 의병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4월 22일 추모제를 올린다, 충익사 내에는 장군의 전적도 5폭, 장검,친필 유지, 유적지 사진이 전시된 기념관, 기념탑, 충의각이 있다.


충의각

 

팔작다포계 전각 충의각은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상여모양을 본뜬 건물로 현판은 김종필 전 총리 글씨이며 너무도 화려하여 장엄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내부에는 장군과 17명 의병장에게 사후 내려진 관직을 적은 패가 봉안 되어있으니, 병조판서 곽재우, 병조참판 윤탁,이조참의 박사제,  오운, 병조참의 이운장, 병조참의 배맹신, 좌승지 심대승, 정연, 좌참찬 권란, 정질, 허언심, 노순,좌승지 강언룡, 허자대,병조참판 심기일, 이조참의 안기종, 좌승지 조사남,형조판서 주몽룡 장군이 그 분 들이다.


충익사 경내 모과나무

 

도기념물 83호로 안내문에 의하면 충익사 모과나무의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8.5m, 둘레는 3m이고 수성마을을 보호하던 당산목이었으나 1978년 옮겨왔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곽재우 장군 묘소

 

달성군 구지면 소재 장군의 묘소다. 이곳은 장군의 증조로부터 5대에 걸친 선영으로 "예장을 하지말라는" 유언에 따라 봉분없이 평장을 하였으며, 개망초 흐드러진 묘에는 장식 없는 작은 묘비만 서있어 찾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충익공 곽재우 장군을 모신 서원은 달성군 유가면에 있는 예연서원으로 1675년 우의정 허목의 청에 따라 1677년 숙종 임금이 제문과 함께 사액하였다.

 

2006.06.24

 

*충익사 관리사무소 팜프렛을 참조하였습니다.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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