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스크랩] 강릉 / 수문리 당간지주, 대창리 당간지주, 무진사지

임병기(선과) 2008. 6. 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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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힘들게 찾은 당간지주, 시내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언젠가 머무름을 즐길 공간도 마련되겠지...

 

 

수문리 당간지주


두 지주의 높이는 3.4m이며 서로 1m 사이를 두고 동서로 마주 서 있다. 두 지주에는 아무 것도 새기지 않았으며, 바깥면의 양쪽 모서리를 깎아서 간결하고 소박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지주 정상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곡선으로 깎아내려 유려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깃대를 고정시키는 구멍은 없으며, 정상의 안쪽에는 'ㄷ'자형 홈을 마련하여 깃대를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재 기단부(基壇部)는 땅속에 묻혀서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전체적인 양식이 통일신라 하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지주 앞면에는, 넘어져 있던 것을 1817년(순조 17)에 다시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강릉시청 홈

 

대창리 당간지주


두 지주의 높이는 5.1m이며 서로 1m 사이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 서 있다. 지주에는 아무 것도 새기지 않았으며, 바깥면의 양쪽 모서리를 깎아서 간결하고 소박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지주 정상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곡선으로 깎아내려 유려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깃대를 고정시키는 구멍은 없으며, 정상의 안쪽에는 ''자형 홈을 마련하여 깃대를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현재 기단부(基壇部)는 땅속에 묻혀서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전체적인 양식이 통일신라 하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근에서 돌부처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 탑재(石塔材) 등이 출토되어 강릉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용지사(龍池寺), 무진사(無盡寺)라고 하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강릉시청 홈



강릉 옥천동 석탑재/문화재청

 

석탑의 일부분으로, 1940년 신라의 옛 사찰인 무진사터로 전하는 곳에서 발견되어 관음사 경내로 옮겼다가,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이들은 모두 2개인데 하나는 위층 기단(基壇)의 일부로 여겨지고, 다른 하나는 탑신(塔身)의 1층 몸돌 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단으로 보이는 석재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칸을 만든 후 각 칸마다 8부신상(八部神像: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한다는 여덟무리)을 조각해 놓았고, 탑신의 1층 몸돌로 보이는 석재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어 각 면에 불상을 새겨 놓았다.



강릉 석불 입상/문화재청


강릉시 옥천동에 있던 것을 1992년 오죽헌 시립박물관으로 이전한 높이 1.78m의 석불상이다. 대좌(臺座)와 불신은 다른 돌로 만들었으며, 머리와 몸통은 2조각 나 있던 것을 보수하였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은 마멸이 심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타원형의 얼굴에 코는 길쭉하며, 눈은 가늘게 찢어졌고, 입은 비교적 불륨있게 표현하였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옷주름이 평판적으로 처리되었으며, 가슴에는 3가닥의 속옷 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해서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아래로 향하고 있으나 파손되었다.

원만한 얼굴 표정은 신라 불상의 얼굴을 연상시키지만 어깨가 지나치게 좁은 점, 평판적인 옷주름, 연꽃무늬 대좌 형식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06.03.14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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