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스크랩] 강릉 / 칠사당, 객사문

임병기(선과) 2008. 6. 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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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사당

ㅎㅎ 또? 나에게?

어김없이 문이 닫혔다. 전생의 업보인지 꼭 들리고픈 장소는 나를 거부한다.

길이 멀어 쉬 올 수 없는데...

칠사당 내부

 

 인도 패드 변압기(?)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는 종화님을 흉내내어 한 컷 잡았다.

담 너머 보이는 기둥 아래 하얀부분은 습기 방지목적의 소금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7가지 공무(호적·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풍속)를 보았던 관청건물이다.
처음 세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뒤, 영조 2년(1726)에 크게 확장하였다.

 

고종 3년(1866)에는 진위대의 청사로 쓰였으나, 불에 타 없어지고 부사 조명하가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부터 1958년까지 군수나 시장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ㄱ자형 구조로 앞면 왼쪽에 본 건물보다 높은 누마루를 연결하였다. 누마루 연결부분에는 다락방을 두었고 본 건물 왼쪽 1칸에는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두고 온돌방과 툇마루를 좌우에 두어 대청마루와 연결시켰다.

칠사당은 전체적으로 뒤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문화재청

객사문 임영관

 

에혀 공사 중이다. 저기 보이는 임영관 현판은 공민왕 글씨며, 객사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문화재청

 

2006.03.14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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