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스크랩] 영천 / 거동사...기다림 그 긴세월

임병기(선과) 2008. 6. 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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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으로 가는 길을 접고 보현산 천문대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보현리 초입에 거동사 입간판이 보인다. 신라 의상대사 창건설을 떠올리지 않아도 불교 색채의 보현산 자락이니 대찰 하나는 있음직하지 않은가? 우리의 옛가람이 그러하듯 어느시절 폐사되기 전까지는 거동사 공양준비 시 흘러내리는 쌀뜨물이 10리 밖 영천댐까지 흘러내렸으며,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수행 정진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노스님이 부도를 암장한 후 신도의 발걸음이 끊겨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스님의 과욕으로 폐사가 되었다는 전설에 비해 신선한 전설이지만 인근에 용화, 원각, 삼귀 등의 지명으로 보아 대찰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초행길이건만 분명 어디선가 보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데쟈뷰 현상을 참으로 많이 경험한 까닭이 우리네 절집이 주는 느낌보다는 진입로의 편안함, 아늑함, 바람소리, 물소리에 기인한다고 믿고 싶다.

 

거동사 진입 계단

 

진입 공간을 통과하면 언덕 너머에 제법 넓은 주차공간이 확보 되어있다. 돌아 나와 쌓은이의 정성이 배여 밟고 오르기가 여간 미안하지 않은 돌계단이 보인다. 두개의 돌기둥을 지나면 좌우로 가을걷이가 끝난 텅빈 텃밭이 눈을 머물게 한다.

 

가람이 융성했을 때는 분명 요사, 전각, 당우가 자리했을 터인데, 차라리 만추에 들렸더라면 보살님의 정갈함이 가득한 가을 채소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으로 잿빛 폐사지의 느낌은 받지 않았을텐데...

 

거동사 순둥이

 

몇계단을 지나지 않아 조용한 산사에 잡놈의 인기척을 느낀 멍멍이가 나를 향해 뛰어 내려오며 악따꾸니를 부린다. 천성이 개를 무서워 하는 탓으로 꼼짝없이 서있는 내게 완주 화암사의 득도한 멍멍이 처럼 냄새를 맡는다.

 

자세히 보니 앞다리가 하나 없는 몸인데, 노보살님의 부름으로 짓기를 멈추고 나를 대웅전 중정으로 안내한다.  약초 재배하던 분의 실수로 다리를 잃은 순둥이는 한번 다녀간 신도에게는 절대 짓지 않는다고 하니 득도한게 분명하다

거동사 대웅전 계단

 

대웅전 기단

 

"대웅전의 기단은 가구식으로 구성된 옛방식이나 갑석이 모두 없어졌고"(영천시 홈), 기단 모서리 기둥, 면석만 보인다.

거동사 대웅전

 

거동사 대웅전은 유형문화재로 정,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 어칸은 4분합, 협칸은 3분합 꽃창살 창호이며 "건물은 다포계양식(多包系樣式)에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공포는 내·외 3출목(三出目)으로구성되었다. 전면 공포의 구조는 두공(頭工) 부터 연초각(蓮草刻)하였 고 초제공(草諸工), 2제공 역시 초각하였으며 살미(山彌) 끝은 수두형(獸頭形)으로 조각하였다.


이렇듯 전면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나 후면은 장식적인 요소가 없이 간결하게 되었다. 전면 분합문(分閤門)도 문살을 초각장식하였고 단청(丹靑)의 색조는 장중하다. 조선시대 초기 이후 후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영천시청 홈

 

붉은색 일색의 탱화, 고주를 높게하여 불단을 법당 중앙으로 배치하고 뒷공간을 확보했으며 뒷면에도 문을 두어 규모면에서는 뒤지지만 송림사 대웅전을 연상케 한다. 불단의 부처님은 자애로움과는 거리가 있으며, 불단위에는 보개, 우물천장, 단청은 퇴색 되었다.

 

봄날 푸르름이 가득하고 , 여름날에는 객에게 청량한 쉼터을 제공하며, 가을에는 표주박이라도 주렁주렁 달려 있을 법한 중정의 철제 터널은 겨울 산사의 적막함보다 더 처연해 보인다.

 

거동사 산신각

 

보현리에서 거동사에 이르는 진입로는 밋밋하지만, 그런 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 들어오면서 바라보이는 거동사 뒷편의 울창하고 푸르는 소나무 숲이며, 그 숲의 속살을 슬며시 노출시킨 산신각이 흩어진 부재들이 가득한 요사 옆으로 멀리 올려 보인다. 심미안과 미적 감각, 문장력이 무뎌 저 산신각을 찬미할 문장하나 완성할 수 없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답사시에는 뵙지 못했는데 최근에 전설속의 부도가 발견되어 거동사에 다시 모셔졌다고 한다. 신도들의 발걸음이 다시 인산인해를 이룰지 모르지만, 부도를 묻은  노스님이 염원했던 '기다림 그 긴세월'이 도래했으면......

 

2006.01.2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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