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답사중에 난처한 경우의 하나가 문이 닫혀있을 때다. 매산종택에서 솟을문은 열려 있었으나 중문이 닫혀 안채를 못 보았으니 답사기를 기술한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더구나 흔치 않은 머릿방-안방-아랫방의 안채 공간을 눈에 담고 싶었었는데...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三梅)리 의 매산고택은 선원리 함계정사에서 후학을 지도했던 함계 정석달 선생의 장남인 매산 정중기 선생이 전염병인 마마의 창궐을 피해 입향한 동네로 선생의 고택은 선생의 호에서 유래됨을 알 수 있다.
18세기초 매산 선생이 상량을 하여 그의 둘째 아들인 정일감 선생이 완공했으며, 마을 풍수는 "뒷산은 매화가지, 집은 매화의 꽃술, 앞산은 매화를 찾아드는 나비에 비유"(답사 여행의 길잡이)되는 형국이다.
사랑채 누마루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 1685∼1767)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 본관은 연일이다. 임고면 선원동에서 출생하였다. 조선조 영조때의 학자요, 문관으로 벼슬은 정언(正言), 지평(持平), 형조참의를 거쳤다. 도학(道學)과 예도(禮度)에 밝아 한치의 그릇됨이 없음을 보고 영조대왕도 깊이 탄복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고 훌륭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운명하기 직전에 퇴계문집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 다음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자리를 바로 정한 다음 고요히 눈을 감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천시 입고면 삼매2동에는 그가 선원동에서 옮겨오면서 지은 매산고택(梅山古宅)이 중요민속자료(제24호)로 지정되어 내려오고 있다."...영천시청 홈
매산고택 사랑채,작은사랑채(?)
원형과 현재 고택은 차이가 있겠지만 매산고택은 기단부가 높아보인다. 물론 자연재해, 곤충, 입지조건을 고려 조성했더라도 법도를 지키면서 사대부가의 위엄을 세울려는 의도로 막돌 허튼쌓기로 기단을 단장하지 않았을까?
안동을 비롯 경북북부지방 고택 답사를 한 사람은 매산고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겠지만 전형적인 ㅁ자 형이다. 평야지대,남부지방에서는 一자형이 우세하며 산간지방에서는 ㅁ자 배치가 많은데 영천에서도 임고면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면 수긍이 된다.
사랑채 누마루는 두리 기둥을, 나머지 기둥은 방형인 것도 남녀유별의 법도를 고려 했을 것이며, 작은 사랑채에 이어진 툇마루, 사랑채 3면을 에워싼 툇마루, 활주도 눈을 즐겁게하지만, 난간은 기다림의 공간이며 미학이라는 어느님의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매산 고택의 난간은 시각적 만족이 우선시된 공간 같다.
사당
솟을 문 정면으로 정침 동쪽에 자리한 사당이다. 사당을 동쪽에 두는 이유는 주자가례에도 언급되었다고 들었지만 민속적 해석은 어두운 곳의 사악한 기운이 동쪽의 양의 기운으로 벽사, 퇴출된다는 믿음이다. 민화, 민속에서 대나무는 벽사의 의미, 풍수에서는 비보가 강하지만 매산고택 뒷편 대나무는 매난국죽 사군자의 상징성은 아닐까?
산수정 덤벙주초
바위에 걸친 듯한 산수정의 기둥이다. 자연 암반을 가공없이 주초로 삼고 길게 기둥을 세웠으며 측면에는 S자형의 활주가 이채롭다.
산수정
산수정은 매산 정중기 선생이 강학, 휴식을 즐겼던 정자로 가운데에 마루 양쪽에 온돌방이 있는 3칸 누각으로 정면쪽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툇마루에서는 종택이 있는 매화골이 한눈에 들어 온다.
안채를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매산 고택이라, 여로에 사과꽃이 만발하는 봄날이나, 빠알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만추에 다시 올 것을 다짐해 본다.
200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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