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스크랩] 영천 / 옥간정, 모고헌, 횡계서원

임병기(선과) 2008. 6. 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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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면 소재지로 횡계리 도로변에 오간정과, 모고헌은 자리하고 있다. 개울을 건너가서 보면 풍광과 여유로움이 한눈에 들어오겠지만 게으런 중생 문닫힌 옥간정 담너머로 기웃기웃, 모고헌은 다행이도 우회하여 들어 갈 수 있었다.

 

이제 부끄러움과 겁을 상실하고 마구잡이로 올리는 내사진에 영천시 홈의 글을 가져오니 훗날 여정에 참고하길 바란다.

 

옥간정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270호 (92.7.18)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재 지 :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439-3번지
- 형 식: 정면3칸,측면4칸, 홑처마
- 소 유 자 : 정극,정철검

이 건물은 조선 숙종때 성리학자인 훈수(塤受 ) 정만양(鄭萬陽)(1664~1732)선생과 지수 정규양 (鄭葵陽)선생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숙종42년(1716)에 세운 정자이다.

두 선생은 이 곳에서 학문을 연구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영의정 조현명, 형조참의 정중기, 승지 정간 등 많은 명현, 석학들을 배출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 수차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사양하고 일생동안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4칸반의 ‘ㄱ’자형 누각 건물로 창호구성 방법등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정만양(鄭萬陽 1664~1730), 정규양(鄭葵陽 1667~1732)
정만양의 자는 개춘(皆春), 호는 훈수, 정규양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 관향은 영일이며 호수 정세아(鄭世雅)의 5세손으로 훈수선생은 안동 임하 천전리 외가에서 지수선생은 영천읍 대전동에서 태어났다. 육유재(六有齋)와 태고와(太古窩, 뒤에 모고와로 고침)를 짓고, 정각사에 살던 스님이 어린 향나무(자단치경 : 紫檀稚莖) 두 그루를 줌으로 태고와와 대전에 심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형제간의 우애를 표상하는 많은 저술도 ‘훈지록’이라 했고 자손의 이름도 ‘훈지’ 두글자의 변과 머리를 따서 짓도록 유명(遺命)하여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1716년에 옥간정(玉磵亭)이 지어졌고, 1720년 2월부터 옥간정에서 삭강(朔講)을 시작 100여명에 이르는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 : 참의) 풍원 부원군 조현명(豊原 府院君 趙顯命 : 영의정) 명고 정간(승지) 등 당대의 명현을 길러 냈었다.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전력하여 훈지록을 비롯하여 100여권의 저서를 남기고 있다.

횡계서당

모고헌과 향나무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271호 (92.7.18)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재 지 :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457-3번지
- 소 유 자 : 정극,정철검

이 건물은 조선 숙종시 성리학자인 지수 정규양 (鄭葵陽)(1667~1732)선생이 숙종 27년(1701) 대전동
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집을 짓고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영조 6년(1730)문인들이 개축하여 모고헌이라 하였다.

선생은 형인 훈수 정만양(鄭萬陽) 선생과 이곳에서 옥간정을 왕래하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뜻으로 훈(塤)과"지"로서 호(號)를 삼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2칸,측면 2칸,팔작지붕으로 사면에 툇간을 돌린 정방형 평면을 하고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2006.01.2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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