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군위군

[스크랩] 군위 / 기층,양반문화...위성리 약사여래불, 마애삼존불

임병기(선과) 2008. 6. 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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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에서 소보면 소재지, 군위읍 방향으로 되돌아 나오면 경북대사과연구소내에 위성리 들판을 내려보며 약사여래불이 자리하고 있다. 주형광배, 광배의 덩굴문, 불꽃문, 방형의 얼굴,통견,나발,두손을 가슴에 곱게 두고 보주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불리어지고 있다.

 

무릎의 타원형의 주름은 통일신라 하대에 보이지만, 안내문에는 신라 불상 영향을 받은 고려초의 불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근의 법주사 오층탑의 조성시기와 일치한데, 관련성은 없을까?

 

                                                          소보 위성리 약사여래불

 

하지만 내눈엔 약사여래불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석불 옆 왕버들(?)나무 때문이다. 마치 석불을 보호하려는 듯 감싸고 있으며, 닫집같은 느낌도 들지 않은가? 이러한 노거수와 불교유적,석불의 상생 현장은 부안 내소사, 성주 법수사지의 당간지주와 당산은 물론 우리 이웃에 널리 산재하고 있다.

 

약사여래불은 고단한 기층민중에게는 미륵불이었고, 기자신앙, 벽사의 대상이었으며, 당산목과 어울렁더울렁 어깨동무하며, 촌로의 희망, 며느리들에게는 스트레스 해소의 공간이었다. 이런 현상을 다시보고프면 신록이 우거진 여름날에 오면은 쉽게 발견할 수 있겠지만 연구소라는 공간적 제약이 아쉽다.

 

큰길에서 약사여래불로 향하는 '돌부처 길'을 만든다면 인근 촌로들의 휴식공간, 정월대보름에는 당산제라도 열릴텐데..., 약사여래불에서 멀리를 조망하니 들판 가운데에 입석이 보인다. 사과연구소를 나와 텅빈 겨울 들판을  형태와 용도를 확인하기 위해 입석으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을 아름다운 동행으로 여겼다면 착각인가?

 

                                                            소보 위성리 마애삼존불

 

어느님에게 들은 마애삼존불의 소재지는 쉽지 않을 듯했는데 사과연구소에서 소보로 약 500m 정도 나오면 우측 바위에 있었다. 길에서 보면 좌측 협시불의 두광만 흐릿하게 보여 놓치기 쉬울 것이나, 천부적인(?) 감각의 내눈에는 보이더라.

 

하지만 가까이 가서도 긴가민가했으나 군위군수가 세운 작은 경고문을 읽고서 확신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었다. 본존불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으나 우측협시불의 가슴부근에 손으로 정병을 들고 있는 특이한 수인의 형태로, 본존불은 아미타, 좌우협시불은 관세음, 대세지보살로 여겨지나 어떤 자료에서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를 슬프게하는 것은 삼존불 하단부에 새겨진 위패였다. ** 성씨의 위패는 조금전 만나고 온 기층민중들의 마음과 대비되어 씁쓸하기 한이 없다. 마을의 공동 신앙으로 모신 약사여래불과는 달리, 자기자신, 자기조상만 극락왕생 염원,자기집안만 잘 되라고, 저렇게 바위에 새겨 놓았을 것이 분명했으리라. 하긴 이세상에서 지은 죄업을 씻고 가야했겠지만...

 

2005.12.2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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