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할 때가 몇년 전이었던가?
청도 각북을 다녀오는 길에 조길방 가옥을 들렸었다. 물론 지금처럼 포장은 커녕 차량 교행 마져 불가했고, 금방이라도 산사태가 날 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불순한 일기에 찾은 객의 귀향을 염려한 동네 주민이 바삐 돌아가라는 말씀에 서둘러 돌아 왔었다.
조길방 가옥 안채 /출처...다음 |
조선중기 난을 피해 산골로 피난을 온 함안 조씨 집안의 가옥으로 안채 종도리 상량문에 의하면 정조 8년(1784년)에 건립되었으니,200년이 넘은 산골의 초가이다. 안채를 중심으로 사진 오른쪽이 방 2칸,1칸 헛 칸의 사랑채, 왼쪽의 아랫채는 곳간,방,방앗간으로 되어있다.
이가옥에서 가장 흥미로운 서향한 안채는 개울에 인접한 산골 지형을 고려 흐튼돌 막쌓기한 기단이 다소 높아 보이며, 장독대, 부엌,방,2칸 마루,방의 가장 기본적인 민가 형태이나 좌측 방 벽에 채광,통풍 용도로 여겨지는 작은 여닫이 문, 두칸 마루를 가르는 원형의 싸리 기둥이 퍽 이채롭다.
언젠가 지방 방송국 아침 프로에서 어느 분이 천원지방 사상에 근거, 조선초기 궁궐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원형의 기둥으로 미루어, 양반가 집안이었다고 설명을 하시는 것을 보았지만....
그림이 좋은들, 정자가 멋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길방 가옥 앞집에는 동동주가 익어 가건만 잔 주고받을 님은 커녕, 놈도 없으니...
2005.06.25
사진을 보니 학창시절 공부했던 김유정의 산골나그네 생각나시죠?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세요.세상에서 가장 멋졌던 국어샘도 떠올리시며......
=====================================================================================
산골나그네 / 김유정
밤이 깊어도 술군은 역시 들지 않는다. 메주 뜨는 냄새와 같이 퀴퀴한 냄새로 방안은 쾨쾨하다. 웃간에서는 쥐들이 찍찍거린다. 홀어미는 쪽떨어진 화로를 끼고 앉아서 쓸쓸한 대로 곰곰 생각에 젖는다. 가뜩이나 침침한 반짝 등불이 빛을 잃는다. 헌 버선짝으로 구멍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등잔 밑으로 반짇고리를 끌어당기며 시름없이 바늘을 집어든다.
시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 뒤 울타리에서 부수수하고 떨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 건 물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 퐁 퐁! 쪼록 풍!
바깥에서 신발 소리가 자작자작 들린다. 귀가 번쩍 띄어 그는 방문을 가볍게 열어 젖힌다. 머리를 내밀며,
"덕돌이냐?"
하고 반겼으나 잠잠하다. 앞뜰 건너편 수수평을 감돌아 싸늘한 바람이 낙엽을 훌뿌리며 얼굴에 부딪힌다. 용마루가 쌩쌩 운다. 모진 바람 소리에 놀라서 멀리서 밤개가 요란히 짖는다.
"쥔어른 계서유?"
몸을 돌리어 바느질거리를 다시 들려 할 제 이번에는 짜장 인기가 난다. 황급하게,
"누구유?"
하고 일어서며 문을 열어 보았다.
"왜 그리유?"
처음 보는 아낙네가 마루 끝에 와 섰다. 달빛에 비끼어 검붉은 얼굴이 해쓱하다. 추운 모양이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둘렀던 왜수건을 벗어 들고는 다른 손으로 흩어진 머리칼을 씨담아 올리며 수줍은 듯이 주뻣주뻣한다.
"저어, 하룻밤만 드새고 가게 해주세유."
남정네도 아닌데 이 밤중에 웬일인가, 맨발에 짚신짝으로. 그야 아무렇든....
"어서 들어와 불 쬐게유."
나그네는 주춤주춤 방안으로 들어와서 화로 곁에 도사려 앉는다. 낡은 치맛자락 위로 뼈지려는 속살을 아무리자 허리를 지그시 튼다. 그리고는 묵묵하다. 주인은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밥을 좀 주려느냐고 물어 보아도 잠자코 있다.
그러나 먹던 대궁을 주어모아 짠지쪽하고 갖다주니 감지덕지 받는다.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심없이 잠깐 동안에 밥그릇의 밑바닥을 긁는다. 밥숱갈을 놓기가 무섭게 주인은 이야기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미주알고주알 물어 보니 이야기는 지수가 없다. 자기로도 너무 지쳐 물은 듯싶은 만치 대구 추근거렸다. 나그네는 싫단 기색도 없이 좋단 기색도 별로 없이 시나브로 대꾸 하였다. 남편 없고 몸 붙일 곳 없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고 난 뒤,
"이리저리 얻어먹고 단게유"
하고 턱을 가슴에 묻는다.
첫닭이 홰를 칠 때 그제야 마을갔던 덕돌이가 돌아온다. 문을 열어 감사나운 머리를 디밀려다 낯선 아낙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렇게 주춤한다. 열린 문으로 억센 바람이 몰아 들며 방안이 캄캄하다. 주인은 문앞으로 걸어와 서며 덕돌이의 등을 뚜덕거린다. 젊은 여자 자는 방에서 떠꺼머리 총각을 재우는 건 상서롭지 못한 일이었다.
"얘 덕돌아, 오늘은 마을 가 자고 아침에 온."
가을할 때가 지났으니 돈냥이나 좋이 퍼질 때도 되었다. 그 돈들이 어디로 몰키는지 이 술집에서는 좀체 돈맛을 못본다. 술을 판대야 한 초롱에 오륙십 전 떨어진다. 그 한초롱을 잘 판대도 사날씩이나 걸리는 걸 요새 같아선 그 잘량한 술꾼까지 씨가 말랐다. 어쩌다 전일에 펴놓았던 외상갑도 갖다 줄 줄을 모른다. 홀어미는 열벙거지가 나서 이른 아침부터 돈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다리 품을 들인 보람도 없었다. 낼 사람이 즐겨야 할 텐데 우물쭈물하며 한단 소리가 좀 두고 보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안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날이 양식은 달리고 지점집에서 집행을 하느니 뭘하느니 독촉이 어지간히 않음에랴....
"저도 인젠 떠나겠세유"
그가 조반 나들이옷을 바꾸어 입고 나서서 니그네도 따라 일어선다. 그의 손을 잔상히 붙잡으며 주인은,
"고달플 테니 며칠 더 쉬어 가게유"하였으나,
"가야지유, 너머 오래 신세를......"
"그런 염려는 말구"라고 누르며 집 지켜 주는 셈치고 방에 누웠으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백두고개를 넘어서 안말로 들어가 해동갑으로 헤매었다. 헤실수로 간 곳도 있기야 하지만 맑았다. 해가 지고 어두울 녁에야 그는 흘부들해서 돌아왔다. 좁쌀 닷 되밖에는 못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돈 낼 생각은커녕 이러면 다시 술 안 먹겠다고 도리어 얼러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만도 다행이다. 아주 못받으니보다는 끼니때 가지였다. 그는 좁쌀을 씻고 나그네는 솥에 불을 지피어 부랴부랴 밥을 짓고 일변 상을 보았다.
밥들을 먹고 나서 앉아으려니깐 갑자기 술군이 몰려든다. 이거 웬일인가. 처음에는 하나가 오더니 다음에는 세 사람, 또 두 사람. 모두 젊은 축들이다. 그러나 각각들 먹일 방이 없으므로 주인은 좀 망설이다가 그 연유를 말하엿으나 뭐 한 동리 사람인데 어떠냐, 한테서 먹게 해달라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였다. 이제야 운이 트나 보다. 양푼에 막걸리를 딸쿠어 나그네에게 주어 솥에 넣고 좀 속히 데워 달라 하였다. 자기는 치마꼬리를 휘둘러가며 잽싸게 안주를 장만한다. 짠지, 동치미, 고추장, 특별 안주로 삶은 밤도 놓았다. 사촌동생이 맛보라고 며칠 전에 갖다 준 것을 애껴 둔 것이었다.
방안은 떠들썩하다. 벽을 두드리며 아리랑 찾는 놈에, 건으로 너털웃음을 치는 놈, 혹은 수군숙덕하는 놈, 가지각색이다. 주인은 술상을 받쳐들고 들어가니 짜기나 한 듯이 일제히 자리를 바로 잡는다. 그 중에 얼굴 넓적한 하이칼라 머리가 야리가 나서 상을 받으며 주인 귀에다 입을 비켜 대인다.
"아주머니, 젊은 갈보 사왔다지유? 좀 보여 주게유"
영문 모를 소문도 다 듣는다.
"갈보라니 웬 갈보?" 하고 어리삥삥하다 생각을 하니 턱없는 소리는 아니다. 눈치있게 부엌으로 내려가서 보강지앞에 웅크리고 앉았는 나그네의 머리를 은근히 끌어앉았다.
자, 저패들이 새댁을 갈보로 횡보고 찾아온 맧이다. 물론 새댁편으론 망칙스러운 일이겠지만 달포나 손님의 그림자가 드물던 우리집으로 보면 재수의 빗발이다. 술국을 잡는다고 어디가 떨어지는 게 아니요, 욕이 아니니 나를 보아 오늘만 좀 팔아 주기 바란다, 이런 의미를 곰살궂게 간곡히 말하였다. 나그네의 낯은 별반 변함이 없다. 늘 한모양으로 예사로이 승낙하였다.
술이 온몸에 들고 나서야 뒷술이 잔풀이가 난다. 한 잔에 5전, 그저 마시긴 아깝다. 얼간한 상투백이가 계집의 손목을 탁 잡아 앞으로 끌어당기며,
"권주가 좀 해. 이건 뀌어 온 보릿자룬가."
"권주가? 뭐야유?"
"권주가? 아 갈보가 권주가도 모르나. 으하하하"하고는 무안에 취하여 폭 숙인 계집 뺨에다 꺼칠꺼칠한 턱을 문질러 본다. 소리를 암만 시켜도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만 기울일 뿐 소리는 못하나 보다. 그러나 노래 못하는 꽃도 좋다. 계집은 영 내리는 대로 이 무릎 저 무릎으로 옮아 앉으며 턱밑에다 술잔을 받쳐올린다.
술들이 담뿍 취하였다. 두 사람은 곯아져서 코를 곤다. 계집이 칼라머리 무릎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올릴 때 코웃음을 흥 치더니 그 무지소러운 손이 계집의 아래 뱃 가죽을 사양없이 움켜잡았다. 별안간 <아야>하고 퍼들껑하더니 계집의 몸뚱아리가 공중으로 도로 뛰어오르다 떨어진다.
"이자식아, 너만 돈 내고 먹었니?"
한 사람 세두고 앉았던 상투가 콧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맨발 벗은 계집의 두 발을 양 손에 붙잡고 가랭이를 쩍 벌려 무릎 위로 지르르 끌어올린다. 계집은 앙탈을 한다. 눈시울에 눈물이 엉기더니 불현 듯이 쪼록 쏟아진다. 방안에서 왱마가리 소리가 끓어오른다.
"저 잡놈 좀 보게, 으하하하."
술은 연실 데워서 들여가면서도 주인은 불안하여 마음을 졸였다. 겨우 마음을 놓은 것은 훨씬 밝아서다.
참새들이 소란히 지저귄다. 지직바닥이 부스럼 자죽보다 질배 없다. 술, 짠지족, 가래침, 담뱃재 뭣해 너저분하다. 우선 한길치에 자리를 잡고 게배를 대보았다. 마수거리가 85전, 외상이 2원 각수다. 현금 85전, 두 손에 들고 앉아 세이고 또 세어 보고...... 뜰에서는 나그네의 혀로 끌어올리는 인사
"안녕히 가십시게유"
"입이나 좀 맞치고 뽀! 뽀! 뽀!"
"나두."
찌르쿵! 찌르쿵! 찔거러쿵!
"방아머리가 무겁지유?...... 고만 까불을까."
"들 익었세유 더 찧야지유"
"그런데 얘는 어쩐 일이야......"
덕돌이를 읍엘 보냈는데 날이 저물어도 여태 오지 않는다. 흩어진 좁쌀을 확에 쓸어 넣으며 홀어미는 퍽으나 애를 태운다. 요새 날씨가 차지니까 늑대, 호랑이가 차차 마을로 찾아 내린다. 밤길에 고개 같은 데서 만나면 끽 소리도 못하고 욕을 당한다.
그네가 방아를 괴놓고 내려와서 키로 확의 좁쌀을 담아 올린다. 주인은 그 머리를 쓰담고 자기의 행주치마를 벗어서 그 위에 씌워 준다. 계집의 나이 열 아홉이면 활짝 필때이건만 버케된 머리칼이며 야윈 얼굴이며 벌써부터 외양이 시들어 간다. 아마 고생을 짓한 탓이리라.
날씬한 허리를 재빨리 놀려 가며 일이 끊일 새 없이 다구지게 덤벼드는 그를 볼 때 주인은 지극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일변 측은도 하였다. 뭣하면 딸과 같이 자기 곁에서 길래 살아주었으면 상팔자일 듯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 소 한 바리와 바꾼대도 이것만은 안 내놓으리라고 생각도 하였다.
아들만 데리고 홀어미의 생활은 무던히 호젓하였다. 그런데다 동리에서는 속 모르는 소리까지 한다. 떠꺼머리 총각을 그냥 늙힐 테냐고. 그러나 형세가 부치므로 감히 엄두도 못내다가 겨우 올봄에서야 다붙어 서둘게 되었다. 의외로 일은 손쉽게 되었다. 이러저러 언론이 돌더니 남촌산에 사는 어느 집 둘째 딸과 혼약하였다. 일부러 홀어미는 40리 길이나 걸어서 색시의 손등을 문질러 보고는,
"참 애기 잘도 생겹세!"
좋아서 사둔에게 칭찬을 뇌곤 뇌곤 하였다.
그런데 없는 살림에 빚을 내어 가며 혼수를 다 꼬매놓은 뒤였다. 혼인날을 불과 이틀 격해 놓고 일이 고만 빗났다. 처음에야 그런 말이 없더니 난데없는 선채금 30원을 가져 오란다. 남의 돈 3원과 집의 돈 5원으로 거추군에게 품삯 노비 주고 혼수하고 단지 2원......잔치에 쓸 것밖에 안남고 보니 30원이란 입내도 못낼 소리다. 그 밤, 그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넋잃은 팔을 던져 가며 통밤을 세웠던 것이다.
"어머님! 진지 잡수세유"
새댁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끔직이 귀여우리라. 이것이 단 하나의 그의 소원이었다.
"다리 아프지유? 너머 일만 시켜서......"
주인은 저녁 좁쌀을 쓸어 넣다가 방아다리에 깝신대는 나그네를 걸삼스럽게 쳐다본다. 방아가 무거워서 껍적이며 잘으르지 않는다. 가냘픈 몸이라 상혈이 되어 두 볼이 새빨갛게 색색거린다. 치마도 차마려니와 명지저고리는 어찌 삭았는지 어깨께가 손바닥만하게 척 나갔다. 그러나 덕돌이가 왜포 다섯 자를 바꿔 오거든 첫대 사발화통된 속곳부터 해입히고 차차 할 수 밖엔 없다.
"같이 찝시다유"
주인도 남저지 방아다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찌껑 위에 놓인 나그네의 손을 눈치 안채게 슬며시 쥐어 보았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요만한 며느리만 얻어도 좋으련만! 나그네와 눈이 고만 마주치자 그는 열적어서 시선을 돌렸다.
"퍽도 쓸쓸하지유?"
하며 손으로 울 밖을 가리킨다. 첫밤 같은 석양판이다. 색동저고리를 떨쳐입고 산들은 거반진 방아 소리를 은은히 전한다. 찔그러쿵! 찌러쿵!
그는 나그네를 금덩이같이 위하였다. 없는 대로 자기의 옷가지도 서로서로 별러 입었다. 그리고 잘 때에는 딸과 진배없이 이불 속에서 품에 꼭 품고 재우곤 하였다. 하지만 자기의 은근한 속심은 차마 입에 드러내어 말도 못 건넸다. 잘 들어주면이어니와 뭣하게 안다면 피차의 낯이 뜨뜻한 일이었다.
그러자 맘먹지 않았던 우연한 일로 인하여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그네가 온 지 나흘 되던 날이었다. 거문관이 산기슭에 있는 영길네가 벼방아를 좀 와서 찧어 달라고 한다. 나그네는 줄밤을 새우므로 낮에나 푸근히 자라고 두고 그는 홀로 집을 나섰다.
머리에 겨를 뽀얗게 쓰고 맥이 풀려서 집에 돌아온 것은 이럭저럭 으스레하였다. 늙은 다리를 끌고 뜰앞으로 향하다가 그는 주춤하였다. 나그네 홀로 자는 방에 덕돌이가 들어갈 리 만무한데 정녕코 그놈일 게다. 마루 끝에 자그마한 나그네의 짚세기가 놓인 그 옆으로 질목채 벗은 왕달 짚세기가 왁살스럽게 놓였다. 그리고 방에서는 수군수군 낮은 말소리가 흘러져 나왔다. 그는 무심코 닫은 방문께로 귀를 귀울였다.
"그럼 와 그러는 게유? 우리집이 굶을까봐 그리시유?"
"......"
"어머니도 사람은 좋아유...... 올해 잘만 하면 내년에는 소 한 바리 사놀 게구, 농사만 해두 한 해에 쌀 넉 섬, 조 엿 섬, 그만 하면 고만이지유...... 내가 싫은 게유?"
"......"
"사내가 죽었으니 아무튼 얻을 게지유?"
옷 터지는 소리, 부시럭거린다.
"아이! 아이! 아이! 참 이거 노세유"
쥐죽은 듯이 감감하다. 허공에 아롱거리는 낙엽을 이윽히 바라보며 그는 빙그레한다. 신발 끄는 소리를 죽이고 뜰 밖으로 다시 돌쳐섰다.
저녁상을 물린 후 시치미를 딱 떼고 나그네의 기색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젊은 아낙네가 홀몸으로 돌아다닌데두 고상일게유. 또 어차피 사내는......"
여기서부터 사리에 맞도록 이말 저말을 주섬주섬 꺼내오다가 나의 며느리가 되어 줌이 어떻겠느냐고 꽉 토파를 지었다. 치마를 흡싸고 앉아 갸웃이 듣고 있던 나그네는 치마끈을 깨물며 이마를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두 볼이 빨개진다. 젊은 계집이 나 시집 가겠소 하고 누가 나서랴. 이만하면 합의한 거나 틀림없을 것이다.
혼수는 전에 해둔 것이 있으니 한시름 잊었다. 그대로 이앙이나 고쳐서 입히면 고만이다. 돈 2원은 은비녀, 은가락지 사다가 각별히 색시에게 선물 내리고...... 일은 밀수록 낭패가 많다. 급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 온 아낙네들은 국수 그릇을 얼른 받아서 후룩후룩 들여마시며 시악시 잘났다고 추었다.
주인은 즐거움에 너무 겨워서 축배를 흔근히 들었다. 여간 경사가 아니다. 뭇사람을 삐집고 안팎으로 드나들며 분부하기에 손이 돌지 않는다.
"얘 메누라! 국수 한 그릇 더 가져온."
어째 말이 좀 어색하구먼...... 다시 한 번,
"메누라, 얘야! 얼른 가져와"
30을 바라보자 동곳을 찔러 보니 제물에 멋이 질려 비드름하다. 덕돌이는 첫날을 치르고 부썩부썩 기운이 난다. 남이 두 단을 털 제면 그의 벼단은 석 단째 풀쳐나간다. 연방 손바닥에 침을 뱉어 붙이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끅! 끅! 끅! 찍어라, 굴려라, 끅! 끅!"
동무의 품앗이 일이다. 거무투룩한 젊은 농군 댓이 볏단을 번차례로 집어든다. 열에 뜬 사람같이 식식거리며 세차게 벼 알을 절구통배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얘! 장가들고 한턱 안 내니?"
"일색이드라. 단단히 먹자. 닭이냐? 술이냐? 국수냐?"
"웬 국수는? 너는 국수만 아느냐?"
저희끼리 찧고 까분다. 그들은 일을 놓으며 옷깃으로 땀을 씻는다. 골바람이 벼깔치를 부옇게 풍긴다. 옆산에서 푸드득하고 꿩이 날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갈퀴질을 하던 얼굴 넓적이가 갈퀴를 놓고 씽급하더니 달겨든다. 장난군이다. 여러 사람의 힘을 빌어 덕돌이 입에다 헌 짚신짝을 물린다. 버들껑거린다. 다시 양 귀를 두 손에 잔뜩 훔켜잡고 끌고 와서는 털어놓은 벼무더기 위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동서남북으로 큰 절을 시킨다.
"야아! 야아! 아!"
"아니다, 아니야. 장갈 갔으면 산신령에게 이러하다 말이 있어야지. 괜스레 산신령이 노하면 눈깔망난이(호랑이) 내려보낸다."
뭇 웃음이 터져오른다. 새신랑의 옷이 이게 뭐냐. 볼기짝에 구멍이 다 뚫리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덕돌이는 상투의 먼대기를 털고 나서 곰방대를 피워 물고는 싱그레 웃어 치운다. 좋은 옷은 집에 두었다. 인조견 조끼, 저고리, 새하얀 옥당목 겹바지, 그러나 애끼는 것이다. 일할 때엔 헌옷을 입고 집에 돌아와 쉬일 참에나 입는다. 잘때에도 모조리 벗어서 더럽지 않게 착착 개어 머리맡 위에 놓고 자곤 한다. 의복이 남루하면 인상이 추하다. 모처럼 얻은 귀여운 안해니 행여나 마음이 돌아앉을까 미리미리 사려두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야말로 29년 만에 누런이 쪼각에다 이제서야 소금을 발라 본 것도 이 까닭이었다.
덕돌이가 볏단을 다시 집어올릴 제 그 이웃에 사는 돌쇠가 옆으로 와서 품을 안는다.
"얘 덕돌아! 너 내일 우리 조마댕이 좀 해 줄래?"
"뭐 어째?"
하고 소리를 뻑 지르고는 그는 눈귀가 실룩하였다.
"누구보고 해라야? 응? 이자식 까놀라."
어제까지는 턱없이 지냈단대도 오늘의 상투를 못 보는가!
바로 그날이었다. 웃간에서 혼자 새우잠을 자고 있던 홀어미는 놀라서 눈이 번쩍 띄었다. 만뢰 잠잠한 밤중이었다.
"어머니 그거 달아났세유. 내 옷두 없고......"
"응?" 하고 반마디 소리를 치며 얼떨김에 그는 캄캄한 방안을 더듬어 아랫간으로 넘어섰다. 황망히 등잔에 불을 대리며,
"그래 어디로 갔단 말이냐?"
영산이 나서 묻는다. 아들은 벌거벗은 채로 이불로 앞을 가리고 앉아서 징징거린다. 옆자리에는 빈 베개뿐 사람은 간 곳이 없다. 들어본즉 온종일 일하기에 피곤하여 아들은 자리에 들자 고만 세상을 잊었다. 하기야 그때 안해도 옷을 벗고 한자리에 누워서 맞붙어 잤던 것이다. 그는 보통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새침하니 드러누워서 천장만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다가 별안간 오줌이 마렵기에 요강을 좀 집어 달래려고 보니 뜻밖에 품안이 허룩하다.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다. 그제서는 어림짐작으로 우선 머리맡에 위해 놓았던 옷을 더듬어 보았다. 딴은 없다. 필연 잠든 틈을 타서 살며시 옷을 입고 자기의 옷이며 버선까지 들고 내뺐음이 분명하리라.
"도적년!"
모자는 광솔불을 켜들고 나섰다. 부엌과 잿간을 뒤졌다. 그러고 뜰앞 수풀 속도 낱낱이 찾아봤으나 흔적도 없다.
"그래도 방안을 다시 한 번 찾아보자."
홀어미는 구태여 며느리를 도적년으로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거반 울상이 되어 허벙저벙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을 가라앉혀 들쳐 보니 아니나 다르랴, 며느리 베개 밑에서 은비녀가 나온다. 달아날 계집 같으면 이 비싼 은비녀를 그냥 두고 갈 리 없다. 두말없이 무슨 병폐가 생겼다. 홀어미는 아들을 데리고 덜미를 잡히는 듯 문 밖으로 찾아 나섰다.
마을에서 산길로 빠져나는 어귀에 우거진 숲 사이로 비스듬히 언덕길이 놓였다. 바로 그 밑에 석벽을 끼고 깊고 푸른 웅덩이가 묻히고 넓은 그 물이 겹겹 산을 에돌아 약 10리를 흘러내리면 신연강 중턱을 뚫는다. 시새에 반쯤 파묻히어 번들대는 큰 바위는 내를 싸고 양쪽으로 질펀하다.
꼬부랑길은 그 틈바귀로 뻗었다. 좀체 걷지 못할 자갈길이다. 내를 몇 번 건너고 험상궂은 산들을 비켜서 한 5마장 넘어야 겨우 길다운 길을 만난다. 그러고 거기서 좀더 간곳에 냇가에 외지게 잃어진 오막살이 한 간을 볼 수 있다. 물방아간이다. 그러나 이제는 밥을 찾아 흘러가는 뜬몸들의 하룻밤 숙소로 변하였다. 벽이 확 나가고 네기둥뿐인 그 속에 힘을 잃은 물방아는 을씨년궂게 모로 누웠다. 거지도 고옆의 홑이불 위에 거적을 덧쓰고 누웠다. 거푸진 신음이다. 으! 으! 으흥! 서까래 사이로 달빛은 쌀쌀히 흘러든다. 가끔 마른 잎을 뿌리며......
"여보 자우? 일어나게유 얼핀."
계집의 음성이 나자 그는 꾸물거리고 일어앉는다. 그러고 너털대는 홑적삼 깃을 여며잡고는 덜덜 떤다.
"인제 고만 떠날 테야? 쿨룩......"
말라빠진 얼굴로 계집을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물었다. 10분 가량 지냈다.
거지는 호사하였다. 달빛에 번쩍거리는 겹옷을 입고서 지팡이를 끌며 물방앗간을 등졌다. 골골하는 그를 부축하여 계집은 뒤에 따른다. 술집 며느리다.
"옷이 너무 커, 좀 적었으면……."
"잔말 말고 어여 갑시다 펄쩍……."
계집은 부리나케 그를 재촉한다. 그리고 연해 돌아다보길 잊지 않았다.
그들은 강길로 향한다. 개울을 건너 불거져 내린 산모통이를 막 꼽뜨리려 할 제다. 멀리 뒤에서 사람 욱이는 소리가 끊일 듯 날 듯 간신히 들려 온다. 바람에 먹히어 말 소리는 모르겠으나 재없이 덕돌이의 목성임은 넉히 짐작할 수 있다.
"아 얼른 좀 오게유."
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히 잡아끈다. 병든 몸이라 이끌리는 대로 뒤뚝거리며 거지도 으슥한 산 저 편으로 같이 사라진다. 수은빛 같은 물방울을 품으며 물결은 산벽에 부닥뜨린다. 어디선지 지정치 못할 늑대 소리는 이 산 저 산서 와글와글 굴러내린다.
소나기 / 김유정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 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하는 듯 살매 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산 밖으로 농군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 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
매응! 매매움!
춘호는 자기 집 --- 올 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들은 묵삭은 오막살이 집 --- 방문턱에 걸터앉아서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는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날 밤이나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사에 고리삭은 그의 얼굴은 더욱 해쓱하였다.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졸라 보았다. 그러나 위협하는 어조로,
"이봐, 그래 어떻게 돈 이 원만 안 해줄 테여?"
아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갓 잡아온 새댁 모양으로 씻는 감자나 씻을 뿐 잠자코 있었다. 되나 안 되나 좌우간 이렇다 말이 없으니 춘호는 울화가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타곳에서 떠돌아 온 몸이라 자기를 믿고 장리를 주는 사람도 없고 또는 그 알량한 집을 팔려 해도 단 이삼 원의 작자도 내닫지 않으므로 앞뒤가 꼭 막혔다. 마는 그래도 아내는 나이 젊고 얼굴 똑똑하겠다, 돈 이 원쯤이야 어떻게 라도 될 수 있겠기에 묻는 것인데 들은 체도 안 하니 괘씸한 듯싶었다.
그는 배를 튀기며 다시 한 번,
"돈 좀 안 해줄 테여?"
하고 소리를 뻑 질렀다.
그러나 대꾸는 역시 없었다.
춘호는 노기 충천하여 불현듯 문지방을 떠다밀며 벌떡 일어섰다. 눈을 홉뜨고 벽에 기대인 지게 막대기를 손에 잡자 아내의 옆으로 바람같이 달려들었다.
"이년아, 기집 좋다는 게 뭐여. 남편의 근심도 덜어 주어야지, 끼고 자자는 기집이여?"
지게 막대는 아내의 연한 허리를 모질게 후렸다. 까부라지는 비명은 모지락스레 찌그러진 울타리를 벗어 나간다. 잼처 지게 막대는 앉은 채 꼬꾸라진 아내의 발뒤축을 얼러 볼기를 내리갈겼다.
"이년아,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조르는 게여?"
범같이 호통을 치며 남편이 지게 막대를 공중으로 다시 들어올리며 모질음을 쓸 때 아내는,
"에구머니!"
하고 외마디를 질렀다. 연하여 몸을 뒤치자 거반 엎어진 듯이 싸리문 밖으로 내달렸다. 얼굴에 눈물이 흐른 채 황그리는 걸음으로 문 앞의 언덕을 내리어 개울을 건너고 맞은쪽에 뚫린 콩밭 길로 들어섰다.
"너, 네가 날 피하면 어딜 갈 테여?"
발길을 막는 듯한 의미 있는 호령에 달아나던 아내는 다리가 멈칫하였다. 그는 고래를 돌리어 문안에 아직도 지게 막대를 들고 섰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어른에게 죄진 어린애같이 입만 종깃종깃하다가 남편이 뛰어나올까 겁이 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쇠돌 엄마 집에 좀 다녀 올게유."
쭈뼛쭈뼛 변명을 하고는 가던 길을 다시 횅하게 내걸었다. 아내라고 요새 이 돈 이 원이 금시로 필요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마는 그의 자격으로나 노동으로나 돈 이 원이란 감히 땅뜀도 못 해 볼 형편이었다. 벌이래야 하잘것없는 것 ---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남에게 뒤질까 영산이 올라 산으로 빼는 것이다.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달고 거한 산중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도라지, 더덕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깊은 산 속으로 우중충한 돌 틈바귀로 잔약한 몸으로 맨발에 짚신 짝을 끌며 강파른 산등을 타고 젖먹던 힘까지 녹아 내리는 듯 진땀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아랫도리를 단 외겹으로 두른 낡은 치맛자락은 다리로, 허리로 척척 엉기어 걸음을 방해하였다. 땀에 붙은 종아리는 거친 숲에 긁혀 매여 그 쓰라림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무거운 흙내는 숨이 탁탁 막히도록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삶에 발버둥치는 순진한 그의 머리는 아무 불평도 일지 않았다.
가물에 콩나기로 어쩌다 도라지 순이라도 어지러운 숲속에 하나 둘 뾰족이 뻗어 오른 것을 보면 그는 그래도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띠었다. 때로는 바위도 기어올랐다. 정히 못 기어오를 그런 험한 곳이면 칡덩굴에 매어 달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땟국에 절은 무렵 적삼은 벗어서 허리춤에다 꾹 찌르고는 호랑이 숲이라 이름난 강원도 산골에 매어 달려 기를 쓰고 허비적거린다. 골바람은 지날 적이라 알몸을 두른 치맛자락을 공중으로 날린다. 그제마다 검붉은 볼기짝을 사양 없이 내보이는 칡덩굴이 그를 본다면, 배를 움켜쥐어도 다 못 볼 것이다. 마는 다행히 그윽한 산골이라 그 꼴을 비웃는 놈은 뻐꾸기뿐이었다.
이리하여 해동 갑으로 해갈을 하고 나면 캐어 모은 도라지, 더덕은 얼러 사발 가웃, 혹은 두어 사발 남짓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리로 내려와 주막거리에 가서 그걸 내주고 보리쌀과 사발 바꿈을 하였다. 그러나 요즘엔 그나마도 철이 겨워 소풀이 없다. 그 대신 남의 보리 방아를 온종일 찧어 주고 보리밥 그릇이나 얻어다 가는 집으로 돌아와 농토를 못 얻어 뻔뻔히 노는 남편과 같이 나누는 것이 그날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니 돈 이 원은커녕 당장 목을 딴대도 피도 나올지가 의문이었다.
만약 돈 이 원을 돌린다면 아는 집에서 보리라도 꾸어 파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온 동리의 아낙네들이 치맛바람에 팔자 고쳤다고 쑥덕거리며 은근히 시새우는 쇠돌 엄마가 아니고는 노는 벌이를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는 자기 꼴 주제에 눌려서 호사로운 쇠돌 엄마에게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쇠돌 엄마도 처음에야 자기와 같이 천한 농부의 계집이련만 어쩌다 하늘이 도와 동리의 부자 양반 이 주사와 은근히 배가 맞아 금방석에 뒹구는 팔자가 되었다. 그리고 쇠돌 아버지도 이게 웬 땡이냔 듯이 아내를 내어 논 채 눈을 살짝 감아 버리고 이 주사에게서 나는 옷이나 입고, 주는 쌀이나 먹고 연년이 신통치 못한 자기 농사에는 한 손을 빼고는 히짜를 뽑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말인즉, 춘호 처가 쇠돌 엄마에게 죽어도 아니 가려는 그 속 까닭은 정작 여기 있었다.
바로 지난 늦은 봄, 달이 뚫어지게 밝은 어느 밤이었다. 춘호가 보름 계추를 보러 산모퉁이로 나간 것이 이슥하여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인제 자고 어려나 생각하고는 막 드러누워 잠이 들려니까 웬 난데없는 황소 같은 놈이 뛰어들었다. 허둥지둥 춘호 처를 마구 깔다가 놀라서 으악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난 일이 있었다. 어수룩한 시골 일이라 별반 풍설도 아니나고 쓱싹되었으나 며칠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동리 부자 이 주사의 소행임을 비로소 눈치 채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춘호 처는 쇠돌 엄마와 직접 관계는 없단 대도 그를 대하면 공연스레 얼굴이 뜨뜻하여지고 몹시 어색하였다. 죄나 진 듯이…….
그리고 더욱 쇠돌 엄마가,
"새댁, 나는 속옷이 세 개구, 버선이 네 벌이구 행"하며, 아주 좋다고 핸들 대는 꼴을 보면 혹시 자기에게 한 점을 두고서 비아냥거리는 거나 아닌가 하는 옥생각으로 무안해서 고개도 못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기도 좀만 잘했다면 지금쯤은 쇠돌 엄마처럼 호강을 할 수 있었을 그런 갸륵한 기회를 깝살려 버린 자기 행동에 대한 후회와 애탄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괴롭히는 그 쓰라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러한 욕을 보더라도 나날이 심해 가는 남편의 무지한 배보다는 그래도 좀 헐할 게다. 오늘은 한맘 먹고 쇠돌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춘호 처는 이번 걸음이 헛발이나 안 칠까 일념으로 심화를 하며 수양버들이 쭉 늘여 박힌 논두렁길로 들어섰다.
그는 시골 아낙네로는 용모가 배우 반반하였다. 좀 야윈 듯한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소위 동리의 문자대로 외입깨나 하염직한 얼굴이었으되 푸레한 의복이며 퀴퀴한 냄새는 거지를 볼 지른다. 그는 왼손 바른손으로 겨끔내기로 치맛귀경이 되고 만다. 먼데서 개 짖는 소리가 앞뒷산을 한적하게 울린다. 빗방울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차차 굵어지며 무더기로 퍼부어 내린다.
춘호 처는 길가에 늘어진 밤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그으며 쇠돌 엄마집을 멀리 바라보았다. 북쪽 산기슭 높직한 울타리로 삥 둘려 두르고 앉았는 오목하고 맵시 있는 집이 그 집이었다. 그런데 싸리문이 꼭 닫힌 것을 보면 아마 쇠돌 엄마가 농군청에 저녁 제누리를 나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쇠돌 엄마 오기를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빗방울은 뚝뚝 떨어지며 그의 뺨을 흘러 젖가슴으로 스며든다. 바람은 지날 적마다 냉기와 함께 굵은 빗발을 몸에 들이친다. 비에 쪼르륵 젖은 치마가 몸에 찰싹 감기어 허리로, 궁둥이로, 다리로, 살의 윤곽이 그대로 비쳐 올랐다.
무던히 기다렸으나 쇠돌 엄마는 오지 않았다. 하도 진력이 나서 하품을 하여가며 정신없이 서 있노라니 왼편 언덕에서 사람 오는 발자취 소리가 들린다. 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날쌔게 나무 틈으로 몸을 숨겼다. 동이 배를 가진 이 주사가 지우산을 받쳐 쓰고는 쇠돌네 집으로 향하여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비록 키는 작달막하나 숱 좋은 수염이든지 온 동리는 털어야 단 하나뿐인 탕건이든지, 썩 풍채 좋은 오십 전후의 양반이다.
그는 싸리문 앞으로 가더니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문을 떠다밀고는 속으로 버젓이 들어가 버린다.
이것을 보니 춘호 처는 다시금 속이 편치 않았다. 자기는 개돼지같이 무시로, 매만 맞고 돌아 치는 천덕꾼이다. 안팎으로 겹귀염을 받으며 간들대는 쇠돌 엄마와 사람된 치수가 두드러지게 다름 그는 알 수 있었다. 쇠돌 엄마의 호강을 너무나 부럽게 우러러보는 반동으로 자기도 잘했다면 하는 턱없는 희망과 후회가 전보다 몇 갑절 쓰린 맛으로 그의 가슴을 찌푸뜨렸다.
쇠돌네 집을 하염없이 건너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굴러 내린다. 언덕에서 쓸려 내리는 사탯물이 발등까지 개흙으로 덮으며 소리쳐 흐른다. 빗물에 폭 젖은 몸뚱어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가벼웁게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당황한 시선으로 사방을 경계하여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손을 돌리어 그 집을 쏘아보며 속으로 궁리하여 보았다. 안에는 확실히 이 주사뿐일 게다. 그때까지 걸렸던 싸리문이라든지 또는 울타리에 널은 빨래를 여태 안 걷어들이는 것을 보면 어떤 맹세를 두고라도 분명히 이 주사 외에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놓고 비를 맞아 가며 그 집으로 달려들었다. 봉당으로 선뜻 뛰어오르며,
"쇠돌 엄마 기슈?"하고, 인기를 내보았다.
물론 당자의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그 음성이 나자 안방에서 이 주사가 번개같이 머리를 내밀었다. 자기 딴은 꿈 밖이란 듯,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더니 옷 위로 불거진 춘호 처의 젖가슴, 아랫배, 넓적다리로 발등까지 슬쩍 음흉히 훑어보고는 거나한 낯으로 빙그레한다. 그리고 자기도 봉당으로 주춤주춤 나오며,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 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렸으면……"하고 매우 일이 딱한 듯이 어름어름한다.
"이 비에 어딜 갔에유?"
"지금 요 밖에 좀 나갔지, 그러나 곧 올걸……."
"있는 줄 알고 왔는디……."
춘호 처는 이렇게 혼잣말로 낙심하며 섭섭한 낯으로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돌아갈 듯이 봉당 아래로 내려섰다.
이 주사를 쳐다보며 물차는 제비같이 산드러지게,
"그럼 요담에 오겠애유, 안녕히 계시유"하고 작별 인사를 올린다.
"지금 곧 온 댔는데, 좀 기다리지……."
"담에 또 오지유."
"아닐세, 좀 기다리게. 여보게, 여보게, 이봐!"
춘호 처가 간다는 바람에 이 주사는 체면도 모르고 기가 올랐다. 허둥거리며 재간껏 만류하였으나 암만해도 안 될 듯싶다. 춘호 처가 여기엘 찾아 온 것도 큰 기적이려니와 뇌성 벽력에蝡 구석진 곳이겠다. 이렇게 솔깃한 기회는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는 눈이 뒤집히어 입에 물었던 장죽을 쭉 뽑아 방안으로 치뜨리고는 계집의 허리를 뒤로 다짜고짜 끌어안아서 봉당 위로 끌어 올렸다.
계집은 몹시 놀라며,
"왜 이러시유, 이거 놓세유"하고 몸을 뿌리치려는 앙탈을 한다.
"아니 잠깐만."
이 주사는 그래도 놓지 않으며 허겁스러운 눈짓으로 계집을 달래 인다.
흘러내리는 고의춤을 왼손으로 연신 치우키며 바른 팔로는 계집을 잔뜩 움켜잡고는 엄두를 못 내어 쩔쩔매다가 간신히 방안으로 끙끙 몰아 넣었다. 안으로 문고리는 재빠르게 채이었다.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추 잎에 부딪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는 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하여 갔다.
얼마쯤 지난 뒤였다. 이만하면 길이 들었으려니 안심하고 이 주사는 날숨을 후우, 하고 돌린다. 실없이 고마운 비 때문에 발악도 못 치고 앙살도 못 피우고 무릎 앞에 고분고분 늘어져 있는 계집을 대견히 바라보며 빙긋이 얼러 보았다. 계집은 온몸에 진땀이 쭉 흐르는 것이 꽤 더운 모양이다. 벽에 걸린 쇠돌 어미의 적삼을 꺼내어 계집의 몸을 말쑥하게 훌닦기 시작한다. 발끝서부터 얼굴까지 -----.
"너, 열 아홉이지?"하고 이 주사는 취한 얼굴로 얼간히 물어 보았다.
"니에"하고, 메떨어진 대답.
계집은 이 주사의 손에 눌리어 일어나도 못 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다.
이 주사는 계집의 몸을 다 씻고 나서 한숨을 내뿜으며 담배 한 대를 턱 피워 물었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없으매,
"원 그래서야 어떻게 산단 말이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는 거냐? 그러다 혹시 맞아 죽으면 정장 하나 해볼 곳 없는 거야. 허니, 네 명이 아까우면 덮어놓고 민적을 가르는 게 낫겠지?"하고 계집의 신변을 위하여 염려를 마지않다가 번뜻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너 참, 아이 낳았다 죽었다더구나?"
"니예."
"어디 난 듯이나 싶으냐?"
계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지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외면하였다.
이 주사도 그까짓 것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웬 녀석의 냄새인지 무생채 썩는 듯한 시크무레한 악취가 불시로 코청을 찌르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야 그런 줄은 도통 몰랐더니 알고 보니까 좋이 역하였다. 그는 빨고 있는 담배통으로 계집의 배곱께를 똑똑히 가리키며,
"얘, 이 살의 배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씻는단 말이야?"하고, 모처럼의 기분을 상한 것이 앵하단 듯이 꺼림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계집은 참다 참다 이내 무안에 못 이기어 일어나 치마를 입으려 하니 그는 역정을 벌컥 내었다. 옷을 빼앗아 구석으로 동댕이를 치고는 다시 그 자리에 끌어 앉혔다. 그리고 자기 딸이나 책하듯이 아주 대범하게 꾸짖었다.
"왜 그리 계집이 달망대니? 좀 듬직하지 못하구……."
춘호 처가 그 집을 나선 것은 들어간 지 약 한 시간 만이었다.
비가 여전히 쭉쭉 내린다. 그는 진땀을 있는 대로 흠뻑 쏟고 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천행으로 오늘 일은 성공이었다.
그는 몸을 솟치며 생긋하였다. 그런 모욕과 수치는 난생 처음 당하는 봉변으로, 지랄 중에도 몹쓸 지랄이었으나 성공은 성공이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욱이 돈 이 원을 줄게니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으로 넌지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맙고 벅찬 짐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다만 애키는 것은 자기의 행실이 만약 남편에게 발각되는 나절에는 대매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는 일변 기뻐하며 일변 애를 태우며 자기 집을 항하여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가분가분 내려 달렸다.
춘호는 아직도 분이 못 풀리어 쀼루퉁하니 홀로 앉았다.
그는 자기의 고행인 인제를 등진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해를 이어 흉작에 농작물은 말 못 되고 따라 빚쟁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는 날로 심하였다.
마침내 하릴없이 집 세간살이를 그대로 내버리고 알몸으로 밤도주하였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는다고 나이 어린 아내의 손목을 끌고 이 산 저 산으로 넘어 표랑하였다. 그러나 우정 찾아 들은 곳이 고작 이 마을이나, 산 속은 역시 일반이다. 어느 산골엘 가 호미를 잡아 보아도 정은 조그만치도 안 붙었고, 거기에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이 품을 벌려 그를 맞을 뿐이었다. 터무니없다 하여 농토를 안 준다, 일 구멍이 없으매 품을 못 판다, 밥이 없다. 결국에 그는 피폐하여 가는 농민 사리를 감도는 엉뚱한 투기심에 몸이 달떴다.
요사이 며칠 동안을 두고 요 너머 뒷산 속에는 밤마다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기미를 알았다. 그는 자기도 한몫 보려고 끼룩거렸으나 좀체로 밑천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 원! 수나 좋아서 이 이 원이 조화만 잘 한다면 금시 발복이 못 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삼사십 원 따서 동리의 빚이나 대충 가리고 옷 한 벌 지어 입고는 진저리 나는 이 산골을 떠나려는 것이 그의 배포였다. 서울로 올라가 아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고, 둘이서 다구지게 벌으면 안락한 생활을 할 수가 있을 텐데, 이런 산 구석에서 굶어 죽을 맛이야 없었다. 그래서 젊은 아내에게 돈 좀 해오라니까 요리 매낀 조리 매낀 피하고 곁들어 주지 않으니 그 소행이 여간 괘씸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집으로 달려들자 미처 입도 벌리기 전에 남편은 이를 악물고 주먹 뺨을 냅다 붙인다.
"너 이년, 매만 살살 피하고 어디 가 자빠졌다 왔니?"
볼치 한 대를 얻어맞고 아내는 오기가 걸리어 벙벙하였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리어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 겁을 하여 살려 달라고 두 손으로 빌며 개신 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 낼, 돈, 되유"하며 돈이 변통됨을 삼가 아뢰는 그의 음성은 절반이 울음이었다. 남편이 반신반의하며 눈을 찡긋하다가,
"낼?"하고 목청을 돋았다.
"네, 낼 된다유."
"꼭 되여?"
"네, 낼 된다유."
남편은 시골 물정에 능통하니 만치 난데없이 돈 이 원이 어디서 저렇게 되는 것까지는 추궁해 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적이 안심한 얼굴로 방문턱에 걸터앉으며 담뱃대에 불을 그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도 마음을 놓고 감자를 삶으러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니 남편이 겉으로 걸어오며 측은한 듯이 말리었다.
"병나, 방에 들어가 어여 옷이나 말리여, 감자는 내 삶을게."
먹물같이 짙은 밤이 내리었다. 비는 더욱 소리를 치며 앙상한 그들의 방벽을 앞뒤로 울린다. 천장에서 비는 새지 않으나 집 지은 지가 오래되어 고래가 물러앉다시피 된 방이라 도배를 못 한 방바닥에는 물이 스며들어 귀축축하다. 거기다 거적 두 잎만 덩그렇게 깔아 놓은 것이 그들의 침소였다. 석유 불은 없어 캄캄한 바로 지옥이다. 벼룩 이는 사방에서 마냥 스물거린다.
그러나 등걸 잠에 익달한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누워 줄기차게 퍼붓는 밤 빗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가난으로 인하여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모르고 나날이 매질로 불평과 원한 중에서 복대기는 그들도 이 밤에는 불시고 화목하였다. 단지 남편의 품에 들은 돈 이 원을 꿈꾸어 보고도,
"언제 서울 갈라유?"
남편의 왼팔을 베고 누웠던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응석 비슷이 물어 보았다. 그는 남편에게 서울의 화려한 거리며, 후한 인심에 대하여 여러 번 들은 바 있어 일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몽상은 하여 보았으나 실지 구경은 못 하였다. 얼른 이 고생을 벗어나 살기 좋은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곧 가게 되겠지, 빚만 좀 갚아도 가뜬하련만."
"빚은 낭종 줴더라도 얼핀 갑세다유."
"염려 없어. 이 달 안으로 꼭 가게 될 거니까."
남편은 썩 쾌히 승낙하였다. 딴은 그는 동리에서 일컬어 주는 질꾼으로 투전장의 가보쯤은 시루에서 콩나물 뽑듯하는 능수였다. 내일 밤 이 원을 가지고 벼락같이 노름판에 달려가서 있는 돈이란 깡그리 모집어 올 생각을 하니 그는 은근히 기뻤다. 그리고 교묘한 자기의 손재간을 홀로 뽐내었다.
"이번이 서울 첨이지?"하매, 그는 서울 바람 봄 한 번 쐬었다고 큰 체를 하며 팔로 아내의 머리를 흔들어 물어 보았다. 성미가 워낙 겁겁한지라 지금부터 서울 갈 준비를 착착 하고 싶었다. 그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둠 구석에서 釡 자라 먹은 아내를 데리고 가면 서울 사람에게 놀림도 받을 게고 거리끼는 일이 많을 듯싶었다. 그래서 서울 가면 꼭 지켜야 할 필수 조건을 아내에게 일일이 설명치 않을 수 없었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 사람에게 '꼬라리'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를 '하십니까'로 '하게유'를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하고 볼 눈은 또릿또릿이 볼지라----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모깃소리로 "네, 네"를 하였다.
남편은 두어 시간 가량을 샐 틈 없이 꼼꼼하게 주의를 다져 놓고는 서울의 풍습이며 생활 방침 등을 자기의 의견대로, 그럴싸하게 이야기하여 오다가 말끝이 어느덧 화장술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 여자가 서울에 가서 안잠을 잘 자 주면 몇 후에는 집까지 얻어 갖는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소문을 일찍 들은 바 있어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마다 기름도 바르고, 분도 바르고, 버선도 신고 해소 쥔 마음에 썩 들어야……."
한참 신바람이 올라 주워섬기다가 옆에서 쌔근쌔근 소리가 들리므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는 이미 곯아져 잠이 깊었다.
"이런 망할 거, 남 말하는데 자빠져 잔담.,"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며 바른 팔을 들어 이마 위로 흐트러진 아내의 머리칼을 뒤로 쓰담아 넘긴다. 세상에 귀한 것은 자기 아내! 명색이 남편이며 이날까지 옷 한 벌 변변히 못 해 입히고 고생만 짓시킨 그 죄가 너무나 큰 듯 가슴이 뻐근하였다. 그는 왁살스러운 팔로 아내의 허리를 꼭 껴안아 자기의 앞으로 바특이 끌어당겼다.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치고 점심때에는 생기로운 볕까지 들었다. 쿨렁쿨렁 눈물 나는 소리는 요란히 들린다. 시내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의 고함이며, 농부들의 희희낙락한 미나리도 기운차게 들린다. 비는 춘호의 근심도 씻어 간 듯 오늘은 그에게도 즐거운 빛이 보였다.
"저녁 제누리 때 되었을 걸, 얼른 빗고 가 봐 ----."
그는 갈증이 나서 아내를 대고 재촉하였다.
"아직 멀었어유."
"뭘!"
아내는 남편의 말대로 벌써부터 머리를 빗고 앉았으나 원래 달포나 아니 가리어 엉클은 머리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는 호랑이 같은 남편과 오랜만에 정다운 정을 바꾸어 보니 근래에 볼 수 없는 화색이 얼굴에 떠돌았다.
어느 때에는 매적하게 생글생글 웃어도 보았다.
아내가 꼼지락하는 것이 보기에 퍽으나 갑갑하였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래 빗을 쑥 뽑아 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 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 가며 머리에다 번지르하게 발라 놓았다. 그래 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 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질러 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 놓았던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 봐!"하다가
"바루 곧 와, 응?"하고 남편은 그 이 원을 고이 받고자 손색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대구광역시 > 달성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현풍 / 비슬산 용봉 석불 (0) | 2008.06.06 |
---|---|
[스크랩] 대구 현풍 / 석빙고 (0) | 2008.06.06 |
[스크랩] 대구 가창 / 남지장사...28년 전의 추억 (0) | 2008.06.06 |
[스크랩] 대구 가창 / 녹동 서원,모명재...김충선, 두사충을 아시나요? (0) | 2008.06.06 |
[스크랩] 달성, 하빈 / 삼가헌, 하엽정 (0) | 2008.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