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화순군

[스크랩] 누구의 무덤일까? / 화순 고인돌 공원

임병기(선과) 2008. 6. 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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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였던 동선을 벗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답사의 매력중에
하나이지만, 그런 구미가 당기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은데, 운주사 가는 길목에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고인돌 공원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6년전 남도에서 고인돌군을 처음 답사했고,창녕,대구등 영남지방은 물론, 고창,강화도에서 남방식,
북방식,개석식 고인돌을 두루 섭렵했지만 규모, 무엇보다도 발굴시기가 가장 늦다는 화순의 고인돌
공원을 보고픈 욕심이었기에 동행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말고삐를 당겼다.
6년전 순천 고인돌 공원에서 느꼈던  흥분을 억누르며,화순군청 자료를 옮겨보면...
"화순지역에는 사적 제410호인 화순 고인돌유적을 중심으로 한 반경 5km 주변일대에 50개군 400
여기의 고인돌이 밀집분포하고 있다. 화순군에는 160개군에 1,323기가 분포하고 있다. 전남 내륙
지역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으며 또 많은 분포수를 보인다. 이의 분포는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숫자
이다. 즉 전북 고창지역이 약 1200여기, 인천 강화가 80여기인 점과 비교해 볼 때 단위면적에서의 
밀집도가 가장 높다."
 화순에는 100톤 이상의 커다란 기반식 고인돌 수십기가 존재한다. 크게는 280여톤 규모의 국내 최대 
규모(무게)의 상석이 있다. 춘양면 대신리에 있는 길이 7.3m, 폭 5.0m, 두께 4.0m의 고인돌은 280
여톤에 이르며, 도곡면 효산리에는 길이 5.3m, 폭 3.6m, 두께 3.0m로 약 100톤 이상의 고인돌이 있다. 
도곡면 대곡리에는 길이 7.1m, 폭 3.0m와 도암 도장리에 길이 6.1m, 폭 5.2m, 두께 3.9m인 고인돌군
이 있다. 이와 같은 규모는 전북 고창군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지만 화순 보다는 약간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화순의 고인돌군이 더욱 흥미를 배가시키는 것은 고인돌을 만든 암석 채석장이 옆에 있다는 것이다.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덮개돌이다. 이 덮개돌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암반에서 
떼어내야 한다. 춘양면 대신리,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 유적지에서는 고인돌의 덮개돌을 채석하는 
장소가 고인돌군 위 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
 채석장에서 채석하다 만 석재 등이 남아 있어 고인돌의 상석 채석과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채석
장 아래에 지석이 고인 기반식 고인돌, 석실이 노출된 고인돌, 덮개돌이 없는 석실 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고인돌을 조성했다는 것은 지배세력의 우두머리가 있었음을 의미하고,다시말해 계급사회가 형성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토템의 대상이었던 것도 사실이겠지만 인구가 많지 않은 청동기 시대에 대형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한 권력과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집단 공동체 취락이 있었
다는 것이다.
수렵,채취 생활에서 벗어나 정착생활을 하게된 청동기 시대의 인류는 씨를 뿌려 수확을 거두는 경작
생활을 하게 되나 늘 일정량의 부족분,잉여분의 추수로 인근의 부족들과 전쟁을 하게되었고, 농사
도구로 활용하였던 철제무기들은 부족의 안위와 영역의 경계,확충을 위해 무기 제조에 주안점을 
둔 까닭에 막강 권력이 탄생하였을 것이다.
신라하대의 부도의 탄생 배경처럼, 청동기 시대의 권력을 누렸던 족장 사후에도 기득권의 세력들은 
그들 집단결속을 공고히 하고 세세만년 영화를 누리기위해 권력의 상징으로 대형 고인돌을, 기층
민의 불만를 불식하기위해 작은 크기의 고인돌도 조성한 것이라고 본다면 어불성설일까?
실제로 화순의 고인돌에서는 부장풍습과 축조연대가 확인되었다.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의 발굴로 화순에서는 시신이 안치된 무덤방이 확인되었고 각종 석기와 붉은
간토기, 민무늬토기편 등이 발견되었고 대곡리 적석목관묘에서는 국보 제143호인 처동검, 팔주령, 
청동거울 등 청동기 일괄유물 출토되어 고인돌 다음 시기에도 중요한 지역임을 증명하였다. 
또한 화순 대신리 고인돌에서는 고인돌의 축조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였다. 대신리 고인돌
에서 나온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가 기원전 2500±80년(27호, 중심연대 555년, 보정연대 720∼390년)
으로 측정되었다. 이는 2500년경에 고인돌이 축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채석장 아래에서 출토
된 아가리부분에 삼각문과 점열문이 있는 토기는 전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기원전
 9∼10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유물이다. 이로 보면 화순 고인돌은 약 3000년 무렵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능주에서 운주사 답사길 길목에 자리했기에 꼭 권하고 싶은 화순의 고인돌군은 비교적 최근
(1996년)에 발견된 데다 개발이 안된 지역이어서 주변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약 10km에 걸친 
계곡의 산기슭을 따라 띄엄띄엄 군집되어 있고 산기슭의 소나무 숲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다른 지역
의 유적보다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움막집도 여러채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과 동행하면 더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0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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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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