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울주군

[스크랩] 언양 / 가지산 석남사

임병기(선과) 2008. 6. 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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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 초입부터 싱그런 신록의 풋내음과 송홧가루에 취해 목월의
윤사월을 더듬어 보지만 문설주,눈먼 처녀,외딴집... 몇 개의 단어만 아른아른 거린다

가지산 석남사
참으로 다녀 가고픈 절집이 아니었던가?

비구니 참선 도량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 까지 논란이 많은 도의선사의 부도가
보고 싶었기에 가슴 설레이며 기분 나쁘게 포장된 솔밭길을 들어서니
계곡물 소리가 아득하게, 어지롭게 때론 가깝게 들리며 귀에 가득하다.

이런 나의 심성을 연암이 환생하여 열하일기를 다시 쓴다면
아마 잡놈의 스키!!! 라고 말하리라.

침계루(枕溪樓)
계곡을 베게 삼아 조성된 누대.
이곳에서 법을 알고, 경을 파고, 참선 정진이 가능할까?
차라리 목침 베고, 죽부인 껴안고, 와선삼매나 즐기면 왔다!!! 일텐데...

역시 덜 떨어진 화상다운 발상에 씨익 웃음 지으며 누를 올라서니
3층 석탑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있다.

왼지 대웅전과는 조화롭지 않는 느낌 지울 수 없다.
도의선사가 진신사리를 모시고 세운 탑이었으나 임란시 멸실된 것을
1973년에 복원하였다는 안내문에 고개가 갸웃 거렷지만 기왕이면
1층 탑신 괴임돌을 2단 또는 1단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홀로 3단이다.

하긴 찍어낸 기와로 치장한 대웅전 지붕도 번들번들 개기름 같지만,
대웅전 기단부의 계단 소맷돌의 용 두 마리에 건방지고 사악한 맘 던져버리고 ,
산중에 잡귀가 그렇게도 많은지 어칸, 협칸, 문은 온통 솟을문양 이다.

옆문을 들어서니 항마촉지 수인의 본존불이 닫집도 없는 연화좌대에,
우물반자 닫집 삼아 앉아서는 "어이 화상아!! 나는 볼 것 없고
후불탱이나 보고 가거라 너 아니? 겸재가 회갑인 나이에 그린 작품이야"라고
말한 듯 하지만 불행히도 내겐 즐길 만한 안목이 없음을 죄스러 하며
삼배 후 잠시 눈감고 입정에 들려고 했지만 전각 밖의 소란스러움에
저 처자들 꼬라지나 봐야 겠다며 꼰 다리를 풀었다.

어미이 눈 앞에 펼쳐진 넘 좋은 그림에 난 대웅전 기둥에 기대서서
소리 없이 한참이나 지켜 보았다.

텅빈 뜰에 운력을 마친 젊디 젊은 비구니 들이 삼삼오오
석등을 벗 삼아 밀집 모자 옆에 끼고 호미 자루 던져 버리고,
온갖 자세를 잡고. 웃음 머금은 채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어찌 조동탁은 저 여승의 머리를 보고 "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고..." 라는
아름다운 시어를 생각 할 수 있었는지 이놈은 송춘희가 부른
"인적 없는 수덕사의 밤은 깊은데.... 아아아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라는
전국민의 애창곡 수덕사의 여승만 떠오르는데......

조사당은 은행의 금고인양 큰 자물통으로 안팍을 단절 시켜버렸기에 목탁소리,
나무아미 타불을 따라 극락전 문을 빼꼼이 들여다보니
여승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염불에 몰입하고 있다.

에이 이왕 들킨 몸 팔작지붕, 겹처마, 다포식인 극락전에 들어가 낭낭한
염불 소리 들어며 유리 상자에 갖힌 미타 삼존 알현하고 천장을 올려 보았더니
두 마리의 용이 들보 위에 목을 걸치고 긴 콧수염을 날리고 있다.

비구니 도량 이어 선지 정갈하기 그지없는 절집 뜰은 밟기조차 두렵다
요사채 뒷편에 작은 뜰을 일구고 박을 심고서는 대나무로 가로세로로 엮어
지붕 위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가을날 보름달이 휘영청 비치는 날에 온다면
아스라한 유년의 고향집 정취를 맛보리라

觀水洗心
맑은 물처럼 마음 비우고
흐르는 물처럼 세상사 따르니
큰 바다 물처럼 내마음 넉넉하리....

흘깃 읽어보고 종각에 올랐다
(올라가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있기에 팻말에 올라가지 않고 계단을 밟고... ㅋㅋㅋ)

상대에 괴상한 모습만 아니라면 상대에 물린 방형의 젖가슴(乳廓), 검푸르고,
뽕긋한 9개의 젖꼭지(乳頭), 음통, 한 마리의 포뢰, 비천상, 2곳의 당좌.
하대의 당초운문이 뚜렷한 철저하게 신라 범종을 흉내낸 최근의 범종이다,
500년 후쯤 우리의 후손들은 이시대의 특징을 무엇이라 할 것인가?

참선방인 정수원에는 들리지 못하고 높은 계단 위에서 작지만 아담한
3층 석탑을 내려다보고 안내문을 읽고 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왼지 대웅전 앞의 석탑이 대웅전에 비해 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탑이 본디 대웅전 뜰의 탑이란다.

기이하게도 신라 말의 탑이면서도 탑신 괴임돌은 1층*4, 2-3층*3개이다,
괴임돌로만 보자면 통일 전의 탑 양식이지만, 하기단에 안상이 음각된 것을
제외하고는 우주, 탱주도 없어 오히려 고려의 탑으로도 여겨지지만,
전문가들이 신라 말의 탑이라고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석남사는 도의선사가 창건 하였다지만 구산선문의 일반적 특징인
철조여래불, 이형의 석탑도 없을 뿐더러 반개혁 세력인 선종 사찰이 도의선사 시절에
경주 근교에 자리 잡기에는 다소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도의선사 부도를 가렸더니 불사중이어서 길이 끊겼다,

우회하여 담벼락을 넘고 가고팠지만 차라리 스님께 부탁을 하려고 댓돌 위에
하얀 고무신 가지런히 놓여진 요사채에 "스님"하고 불렀다.

나의 얘기를 듣고 난 스님이 "처사님! 오늘은 인연이 아닌 모양입니다".
"처사님! 그냥 믿으세요"라며 나의 맘을 꿰뚫고 계신다.
최근 들어 갑자기 부도의 주인공 확인차 답사객이 많은 듯 했다.

그래 내가 적덕을 짓고, 공덕을 일군 후 찾아 뵈어야 겠다.
시건방지게 살아온 일상 반성도 하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인연도 맺겠지....
진공선사가 조성한 도의선사의 분사리 부도라고
최완수님은 이미 인연을 쌓았거늘......

2002.5월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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