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울주군

울산...망해사지 부도

임병기(선과) 2010. 9. 11. 14:37
300x250
300x250

 

 

 

글:2003.07.17

수정:2010.07.31

사진:2010.07.26

참고자료:망해사 홈페이지.문화재청.문화유산총람

 

 

 

신라 제 49대 헌강대왕 때는 서울(경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풍악과 노래소리는 길거리에 가득하였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와 나라는 퍽 태평하였다. 때에 대왕은 오늘날의 울산 세죽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동해용왕의 소행이라 하는 일관의 조언에 따라, 왕은 그의 측근들에게 명령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게 하니 그 명령과 함께 구름과 안개가 걷히어 졌으므로, 이 땅의 이름을 개운포라 하였다.

 

img5.gif

 

왕은 서울에 돌아오자 이 영축산 경승지를 선정하여 용을 위해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망해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그 때에 절을 세우라는 왕명이 있자 그것을 기뻐한 동해 용왕은 그의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했고,  그 중 한 아들은 왕을 따라 서울에 들어와서 정사를 도왔는데 그 이름을 처용이라 하여, 처용이 나온 바위를 처용암이라 하였다. 지금도 개운포 해중에는 이 바위가 남아있다.

 

img6.gif

 

이러한 연기가 있는 고찰이었는데 언제 어떻게 하여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으로 추정), 옛 터만 전해오던 것을 1957년에 전 주지이신 김영암 화상이 중건하고, 황무의 터에 버려졌던 유적등도 찾아내고 정리하여 망해사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틀을 잡았다.  


현재 망해사에는 보물 제 173 호로 지정된 2기의 부도가 있으며, 이 밖에도 1960년 이후 발견 된 각종 기와, 그릇조각등도 보관되어 있다. 망해사에서 출토된 기왓장 가운데에는 '가정(嘉靖) 23년갑진'(조선 중종 39년,1544년) 이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도 발견되어서 이 때에 중건 불사가 이루어 졌었음을 추측케 한다. 이 기와 조각에 새겨진 내용은 망해사의 창건 후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위의 자료는 망해사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망해사 옆에 위치한 통일신하 하대 팔각원당형 부도 2기와 조선시대 석종형부도 1기. 이부도는 다른 사찰에서는 유례가 없는 한 쌍의 부도로 탑으로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신라(新羅) 헌강왕(憲康王)(875∼886, 재위) 때 건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래는 동·서로 건립된 동일형식(同一形式)의 2개의 부도였으나, 동쪽 부도는 일찌기 도괴(倒壞)되어 지상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60년 11월에 재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석탑부재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

 

동부도. 동서부도가는  팔 각 원당형으로 각 부의 조각기법이나 규모면에서도 우리처럼 아마츄어 눈에는 거의 동일한 양상으로 보인다.  
 

 

탑신을 받치는 기단은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다. 하대석은 8각으로 구성하고, 그 위로 복련 조각한 돌을 올렸으며, 중대석은 높은 8각의 단 위에 다시 낮은 3단이 층을 이뤄 받치고 있다. 상대석은은 옆면에 16잎의 연꽃잎을 이중으로 조각하였다.

 

 

탑신은 각 면마다 창을 새겼고 모서리에는 양우주를 두었으며, 4면에는 문비를 달았다. 지붕돌은 처마와 추녀가 수평으로 넓으며, 각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들이 있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동부도 

 

서부도. 동부도와 거의 동일한 유형의 부도이다.

 

 

안상이 뚜렷하고 복련에는 귀꽃이 피어 있다.

 

 탑신과 옥개

 서부도

 

동서뷰도는 팔각원당의 기본형을 계승하고 석재결구와 조각수법에서 다소 형식화된 섬약한 일면을 나타내고 있으나,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은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된 부도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에는 울산팔영이 실려있다. 고려말에 울산군수로 좌천되어 온 정포(鄭  )와 학자인 이곡(李穀)이 울산의 풍경을 읊은 여덟 편씩의 시가 그것이다.

 

 망해대

 

바다에 떠 간다는 옛 말 있더니
내 이제사 큰 바다를 바라보누나.
바람이 고요하면 거울처럼 빛나는데
한결같이 푸른 색깔로 하늘에 닿는구나.
저편 외딴 섬에 누가 찾아갔는가
외로운 돛단배, 바삐 돛을 내리누나.
일본이 이방(異邦)임을 비로소 알겠는데
삼만리 밖에라도 농상(農桑)만은 꼭 같겠지.

 

 

개운포 (開雲浦)

 

아름다운 풍경에 신선들 자주 노닐었고
구름 걷히니 세상길도 트였어라.
신라때 두 신선옹 어렴풋이 떠 오르니
그 옛날 보았던 그림 속 모습이런가.
달빛 아래 춤출제 소매자락 펄럭이고
머리에 꽂은 꽃은 흐드러지게 붉었었지.
처용 유적 찾으려 해도 끝없이 묘연하니
반 쯤 부푼 돛배 타고 돌아서야 하겠네.

 

2010.07.26 

 

300x250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