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순천시

[스크랩] 순천 / 순천왜성

임병기(선과) 2008. 6. 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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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영구암(향일암)으로 가자!
도중 진남루에 가서 탱탱한 기둥, 본래 객사인 진남루의 궐패의 흔적, 익랑도
갈켜줄테니 가자고 하여도 도무지 반응이 없고 입이 대책 없이 튀어나오더니
급기야 마눌부터 불평이 봇물처럼 터진다.


남들은 휴가면 콘도에 자리 잡고 가까운 곳 구경하며 남편이 해주는 밥에 왕비
처럼 지내다 온다는 데 자기 좋아하는 곳만 우리를 끌고 다니는 당신이란 사람
(거의 놈으로 들렸다)은 도대체 뭐냐!!!!!!!!!


딸뇬도 합세하여 다시는 아빠한테 안 속는다는 둥 아버지의 권위를 여지없이
망가터리며 하극상의 풍조가 난무하며 궁지로 몰아붙이지만 그래도 나의 사랑
세자는 동궁자리의 안위 때문인지 말을 아낀다.


별 수 없지 않은가?
왕비와 공주가 합세한다면 내명부의 기세가 어디 보통의 파워인가?
꼬리를 내리고 그라만 우째고? 라며 눈치를 살폈더니 제발 조용한데 가서 좀
쉬잔다.
그려라고 답했지만 그 와중에도 내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다.


여수로 오는 도중에 보았던 순천왜성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찾는 사람 없을 테고, 성이니 전망 쥑일 것이며,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그야말로
일석이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는 곳 아닌가?


혼자서 실실 쪼개며 달구지에 채찍을 가했더니 그제사 눈치를 채고 어디가고
있냐며 다그친다.
멀리 여천공단이 보이며, 눈앞에는 율촌공단이 언제 입주할지 모르는 기업체를
기다리는 곳에 위치한 순천왜성은 일부만 복원되었다지만 왜성의 특징의 하나인
망루의 주추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유식한 것처럼 보일려고 애비는 듣건 말건 이빨을 깠지만,


소나무 그늘아래서 자리를 깔고 사흘을 굶은 사람처럼 겁나게 준비해온 음식을
즐기는 가족들에게 나의 설명은 왜성을 스치는 해풍에 실려 흔적 없이 사라진다.


"순천왜성은 정유재란(1597년) 당시 왜군 선봉장 우끼다 히데이에와 도오 다까도라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이다.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이끈 1만 4천여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조.명연합군과 두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남해안 26왜성 중 유일하게 한곳만 남아 99년2월
지방기념물 제 171호로 지정되었다.


순천왜성은 수륙요충지로서 성곽 규모가 36,480평, 외성2,502m,내성으로342m로 외곽성(토석성) 3개,
본성(석성) 3첩, 성문 12개로 축조된성 곽으로 조.명 연합군이 축조한 검단산성 쪽의
육지부를 파서 바닷물이 차도록 섬처럼 만들고, 연결다리가 물에 뜨게 하여 예교(曳橋),
왜교성(倭橋城)이라 하며 일인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다.


임진란 패인이 전라남도 의병과 수군의 용전에 있었다고 보고 전라도를 철저히 공략키 위해
풍신수길의 야심에 따라 전라도 각처에 진을 구축해 공세를 강화하였으나, 무술년(1598년) 8월
그가 급사후 왜성에 주둔해 있던 참략 최정예 부대인 소서행장 왜군과 조.명 수륙연합군
사이에 2개월에 걸친 최후 최대의 격전을 펼친 곳이다.


순천시가지에서 여수쪽으로 6km 쯤 가다가 왼쪽으로 6km를 가면 200여호가 사는
신성리 마을과 이충무공을 배향한 충무사가 있고 남쪽 200m 지점 광양만에 접한 나즈막한
송림에 위치한 왜성은 유정.권율이 이끄는 육군 3만 6천, 진린,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 1만 5천 병력이 왜성을 비롯 노루섬, 장도 등을 오가며 왜군을 격멸했고 이충무공이
27일간을 머물면서 전사 하루 전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첩을 거둔 유서깊은 전적지이다."


2003.08.1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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