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구미시

[스크랩] 초가을 낙동강 자락...구미 / 금오서원

임병기(선과) 2008. 6. 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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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상주 답사 이후 동행할 기회가 없었던 상감마마와의 답사도 늘 그렇듯이 전날 밤 갈래? 
갑시더! 간단한 통화로 이루어 졌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오고 영남 인물의 반은 선산에서 나온다는 말은 풍수지리사 들은 
금오산 때문이라 즐겨 말한다.
즉 선산에서 바라보는 금오산이 문필봉 같아서 학자가 많이 탄생하며, 인동에서는 노적봉처럼 
보여 부자가 배출되며, 성주 땅에서는 여자의 신체의 일부로 보여 절세가인이 많이 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금오산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큰 인물이 난다는 무덤자리가 있다고 하여 술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지만 구미대교를 건너기 전에 바라보는 금오산 정상에는 철탑이 산세를 억누르고 있어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에 간 것도 철탑의 위치 때문이라고 호사가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으니 이래저래 
금오산과 구미, 선산과는 불가분의 연인가 보다.
금오서원 역시 고려 말 3은의 한분이고 영남사림의 종조 야은 길재 선생을 추존하는 서원으로 야은의 
또 다른 호인 금오산인에서 유래되었으며 영남의 다른 서원처럼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金烏書院 외삼문인 읍청루 누하는 이상하게 좌우의 문이 없어 동입서출의 참배예절은 물론이고 닫혀 있어 출입마져 곤란하여 발길 돌려 서원관리 하시는 분의 집을 통하여 협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 집 마당에는 아마 전사청인 듯한 건물도 보였지만 집 마당에서 보이는 강당 합각의 大자 글씨가 이채롭다. 동재, 서재의 현판도 없지만 좌우대칭구조가 일반적인 룰을 벗어나 서재의 한칸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도식적 유형에 젖어 있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감이 깨우쳐준다. 강당인 정학당도 이래저래 답사의 묘미를 맛 볼 수 있어 기분 좋다. 즉 강당에 오른 계단이 서재 쪽에는 없어 좌측으로 올랐다 좌측으로 내려와야 한다. 가운데는 신도이기에... 뿐만 아니라 사당 앞에 심어지는 배롱나무가 강당 앞에 심어져 있으며 놀랍게도 측면 5칸의 좌우 방문 위에 일건재, 시민재 현판이 있어 동재 서재의 없어진 현판과 대비가 되지만 어리석은 나는 부끄럼 없이 스쳐만 지나간다. 서원건축에 강학 즉 공부하는 공간에는 유교의 단순, 절제를 상징하여 단청을 하지 않고 제향공간인 묘(사당)에는 장엄을 의미하여 단청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강당인 정학당 두리기둥과 부재에 검은 타르(?)를 입힌 것은 비와 해충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자는 의미겠지만 나의 군시절에 통신병들이 얼차려를 받기위해 폐유를 바른 기둥에 올라가서 맴맴하면서 매미의 흉내를 내는 모습이 떠올라 강당 마루 위에 걸린 짖궂은 학동을 경계하는 칠조(七條)의 현판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합각마루의 子자 글씨에 답답한 심사 가누며 상현묘로 갔지만 여기서도 강당 앞에 있어야할 멸실된 정료대가 자리하고 있어 이놈의 맘이 편치 않고 무지의 자유로움을 외치고 다니던 나의 머리를 짓누른다. 일년에 두어번 개방되는 사당이 개방되어 있어 잔뜩 기대했지만 야은, 점필재, 신당, 송당,여헌의 위패는 보이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서원 전형의 전학후묘의 구조지만 꼬인 실타래는 풀지 못하고 협문을 벗어나면서 채소를 다듬고 계시는 할머님께 “할머니 혹 저기 보이는 大자와 건너편의 子자의 의미를 아세요” 여쭈었더니 “내가 뭐 답답해 그걸 알겠노” 하신다. 옳은 말씀이다. 묻는 내가 잘못이지... 하지만 안동 학봉종택의 순진무구한 처녀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던 광풍재월의 단박한 해석에 주눅이 들었던 기억과 대비되어 쓴 웃음 지으며 탁 터인 서원 앞 낙동강 변의 가을에 잠시 취해 시름을 달래본다. 2003.09.20

사진 상감마마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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