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206

대구...경상감영 깃발꽂이 벅수

구남여중 2,009년 제가 처음으로 포스팅 후 많은 답사 매니아들이 답사한 곳입니다. 구남여중 석조부재 blog.daum.net/12977705/8722790 대구...구남여중 석탑.석조물 참 오랫만에 처음으로 찾았다. 처음인데 오랫만? 우연하게 알게 된 분에게 모교에 탑이 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었다. 정확히는 불상이 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연락처도 모르니... 옥개� blog.daum.net 석탑 기단갑석 석등대좌 비좌 석등 삼층석탑 예전 안내문에는 고려탑으로 설명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탑으로 추정 석사자 예전에는 교사 입구에 있었는데 옮겨 왔습니다. 깃발꽂이 벅수 오늘은 벅수를 보기위해서 왔습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문석인으로 생각했었는데 네이브에서 아래 포스팅을 보고 경상감영에 있었던 깃발꽂이..

대구...당정 마을 수구맥이

팔공산 당정마을 송정마을 이웃 동리입니다. 동수 마을 입구 마을 숲입니다. 마을을 외호 하는 벅수는 보이지 않으나, 수구맥이 석축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전통 취락구조에서 물길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도록 비보책으로 마을 숲. 작은 둑, 웅덩이를 조성한 사례는 보았지만, 마치 산성 석축과 암거처럼 쌓은 수구맥이는 처음 접합니다. 수구맥이(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2428 수구맥이 석축(마을 안) 여성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비보책이란 문구가 이채롭습니다. 자손뿐만 아니라 산골 마을의 다산과 풍농을 함축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소구리터 마침 오래전 수구맥이 석축을 당국에 제보하였으며, 이장일을 하셨던 분의 짧은 설명으로 소구..

대구...대림송원 석불입상

대림송원에는 석탑. 여러 기의 문석인, 기타 석조부재가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송원 장식 용도뿐만 아니라 구입, 거래도 한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시물 중 제 눈에 들어온 상입니다. 사장님은 육계, 합장인으로 미루어 민불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민불로 칭했는데, 근자에 벅수에 비중을 싣는 편입니다. 벅수든 민불이든 제자리를 떠나 돌아올 기약 없는 만행 길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2020.08.11

대구... 대림송원 삼층석탑

두어 달 전? 김환대님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 탑은 벌써 인지하고 있었으며, 복제품으로 생각하고 들리지 않았었는데, 이상녕님과 김환대님이 탑신부는 진품 같다고 하여 오늘 찾았습니다. 송원 사장님을 뵈었더니 기단부는 복원하였으며, 탑신부는 진품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단부 탑신석 양우주 모각 옥개석 전층 5단 층급받침, 현수곡선은 보이지 않습니다. 2층 옥개석과 3층 탑신석이 일석이며 3층 옥개석과 상륜부도 한 돌입니다. 상륜부 구성이 정형은 아닙니다. 노반과 복발일까요? 진품? 제 판단은 오해 소지가 있어 유보합니다. 2020.08.11

대구...임휴사 부도(승탑)

임휴사(臨休寺) 제가 1989년부터 찾는 상인동 달비골에 위치한 절집입니다. 당시에는 한적한 들길을 지나 들릴 수 있는 작은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그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며 임휴사도 두 번의 화재로 전소되어 3번째 복원하였습니다. "임휴사는 일찍이 신라 말엽인 921년(경명왕 5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불법을 수행하여 크게 선풍을 진작하고 귀국한 영조대사(靈照大師:870-947)가 창건한 이래 서기 1811년(순조 11년)에 무주선사(無住禪師)가 중창하였으며 1930년에 포산화상(苞山和尙)이 3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휴사(臨休寺)라는 사명(寺名)은 후삼국시대에 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던 팔공산 지역에서 고려를 세운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일대 격전을 치른 곳으로 동수대전(棟藪..

대구...영양 화천동 석불좌상

영양 화천동 석불좌상 국립대구박물관 위치 예천 오비봉 태실 석함을 찾아와서 뵈었습니다. 언제부터 모셨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님이십니다. 영양 화천동 우리가 익히 아는 화천동 삼층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에는 삼층석탑 외의 불상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화천동 석탑과 동시대인 9세기 중후반 불상으로 생각됩니다. 불두는 망실 훼손된 불상을 복원한 흔적이 무릎. 가슴, 팔에 남아 있습니다. 삼도가 뚜렷하며 우견편단의 법의, 옷자락은 무릎을 덮고, 두 다리 사이로 부채꼴로 흘러내렸습니다. 복부 부근과 등의 습의 자락은 근자에 새긴 것처럼 선명합니다.. 수인은 항마촉지이며. 하반신은 높아 안정감이 있습니다. 광배 홈 등에는 광배홈이 남아있습니다. 옛님 옛님은 화수분입니다. 2020..

대구...예천 오미봉 태함

국립 대구박물관 그렇게 자주 들렸으면서도 이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북 예천군 용문문 상금곡리 금당실마을 뒤 오미봉 태실味峯胎室 이 본래 위치입니다. 1,980년대 마을뒤 예비군 방호시설 작업 중에 발견되었으며, 2,010년 현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태지석이 발견되지 않았고, 태항아리 등은 망실되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2020.05.06

대구...태동 최계(台洞 崔誡) 묘소

팔공산 수태골 답사중에 묘표석을 보고 찾았습니다. 태동 선생은 우리가 익히 인지하고 있는 대구 둔산동 옻골 입향조인 대암 최동집 선생의 아버지 입니다. 최계(崔誡 ; 1567∼1622)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훈(士訓), 호는 태동(台洞). 내금위 종옥(宗沃)의 아들이다. 1591년(선조24) 무과에 급제하여 만경현령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에는 대북파의 전횡이 심하여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선영 아래에 집을 짓고 은거하였다. 동생 인(認), 조카 동보(東輔)와 함께 `최씨삼충(崔氏三忠)` 으로 불렸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대구 평천사(平川祠)에 제향되었다."(유교넷) 묘비(신.구). 근자에 조성한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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