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산(卵山)
황룡면 맥호리 105번지
산이 계란을 닮은 형국에서 유래되었을까요?

난산비(卵山碑)
하서 김인후 선생이 제자(?)인 인종(仁宗)이 승하한 7월 1일 난산에 올라 북망 통곡한 곳이 통곡단(통곡단(痛哭壇)이며, 그 사실을 새긴 비가 난산비입니다.
하서 김인후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9D%B8%ED%9B%84

난산지비(卵山之碑) 전면. 전남 문화유산자료
" 호패형의 일반형 석비로 전면 상단에 전서로 횡서로 ‘난산지비(卵山之碑)’, 첫 줄에 종서로 ‘난산비(卵山碑)’라 제하고, 이어 찬자(윤행임)와 서자(이익회)를 쓰고 비문을 적고 있다. 비문은 비의 제목을 포함하여 모두 31행(전 10행, 좌 5행, 후 10행, 우 6행), 1행 26자이다. 비문은 석재 윤행임(1762∼1801)이 짓고, 이익회(1767∼1843)가 글씨를 썼다."(국가유산청)
윤행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34160&cid=63765&categoryId=63765
이익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44218&cid=63765&categoryId=63765
현장 안내문에는 당시에는 비를 세우지 못하고 1843년 아들 교리 윤정현이 추기(追記)하고 광주 목사 조철영이 비를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좌측면

후면

우측면
맨 마지막 글씨
황명 영력 사계묘 윤정현 근식(皇明 永曆 四癸卯 尹定鉉 謹識)
조선 헌종 9년(1843)에 윤정현(1793∼1874)이 추기(追記)하고 세웠습니다..
윤정현은 난산비의 원비문을 지은 윤행임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황명 영력 사계묘(皇明 永曆 四癸卯). 1843년

홍문관 교리 윤정현 근식(尹定鉉 謹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567

통곡단으로 가는 길

통곡단
하서 선생이 인종 기일에 북망 통곡하였다는 곡
단을 쌓고 자리르 마련하였습니다.

통곡단 좌대
석탑 기단 갑석인지?
확인하러 달려왔지만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필암 서원은 예전에 답사하였지만, 오늘 지척에 있는 묘소를 놓쳤습니다.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이제 일상 다반사가 되었으니
유소사(有所事)... 하서 선생이 인종을 그리며 쓴 시
임의 나이 삼십을 바라볼 때, 내 나이 서른하고 여섯이었소.
신혼의 단꿈이 채 깨기도 전에, 시위 떠난 화살처럼 떠나간 님아.
내 마음 돌이라서 구르지 않네.
세상사 흐른 물처럼 잊히련만, 젊은 시절 해로할 임 여의고 나니, 눈 어둡고 이 빠지고 머리가 희었소.
슬픔 속에 사니 봄가을 몇 번이던가, 아직도 죽지 못해 살아 있다오.
필암서원(2009년)
https://12977705.tistory.com/8722941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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