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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평도호부 관아

임병기(선과) 2024. 9. 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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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

부평부사를 비롯한 관리들의 선정비군

부평도호부 관아

부평초등학교 교정 모퉁이에 있는 옛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부평도호부관아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 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관아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 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부평부 읍지》에 의하면 부평도호부 내에는 동헌 외에 객사·동서 삼문·근민당(近民堂)·좌우 익랑·사령청·향청·포도청·훈무당·부창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아 규모는 인천도호부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는 부평이 고려시대 이래로 내려온 웅부(雄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근래까지도 동헌·객사·근민당·내아(內衙) 등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헐어버리고 현존 건물만 학교 운동장 한 모퉁이로 이전하였다. 이전 당시에는 1m 높이의 석축 위에 지은 “ㄱ”자형 집이었는데, 1968년 다시 옮기면서 석축과 날개를 떼어버리고 “一자” 건물로 바뀌어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도리집이 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 건물은 예전 형태로 보아 동헌이나 현감의 살림채였던 내아로 추측한다

욕은지(浴恩池)

돌을 쌓아 만든 연못으로 크기는 가로 18m, 세로 16m이다. 가운데에 둘레 7m의 돌산을 만들어 풀과 나무를 심고, 다리를 만들어 남쪽과 연결하였다.  세벌대의 장대석과 고막이, 네모꼴 초석, 그리고 긴장대석을 이용하여 쌓은 네모꼴 연못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생부인 장헌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1년에 한 차례씩 전배하였다. 1789에는 먼저 김포 장릉을 전배하고 현륭원(사도세자의 원)을 참배하였다. 이때 정조는 부평에 들러 부사를 인견하며 활을 쏘고 이곳 욕은지에서 손을 씻었다 한다.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조선 고종 24년(1887)에 새로이 고쳐 지으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浴恩池

光緖 丁亥. 1887년 축했다는 내용으로 추정됩니다.

어사대(御射臺)

정조 21년(1797년) 부평도호부를 방문했을 때 정조 임금이 활을 쏜 장소 표지석

고종 24년(1887)에 수리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명문

光緖 丁亥 重修로 추정됩니다.

부평도호부 관아터에 자리한 부평초등학교

두 그루 은행나무가 옛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2024.08.07

 

*본문 내용은 국가유산청, 현장 안내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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