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후 다시 찾았습니다.
서원면 동촌리 마을회관 앞 넓은 포도 비닐하우스 안에 계십니다.
여기저기 하우스 실내를 기웃거리는 저에게 순을 치던 아주머니가 반가운 목소리로 안으로 들어와서 보고 가라고 합니다.
2009년 글
"유란자방님은 동선에도 없었던 동천동 미륵으로 안내했다. 넓은 들판 비닐하우스 가운데에 서 있었다. 안성 지방 다른 미륵처럼 한 쌍으로 모셨다. 본래에는 지금보다 높은 기단 위에 조성된 듯했다. 작은 미륵은 머리가 멸실되었고 피곤한 듯 어깨를 숫미륵에게 기대고 있다. 미륵이지만 장승처럼 마을을 수호하는 비보책으로 조성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다.
마음씨 고운 유란자방님은 하루종일 땀 흘리는 '일하는 미륵'으로 부른다고 하였다. 모를 찌고 심고 김을 매고 거름을 뿌리고 그런 미륵이라고 했다. 농사일이란 부지런 하여야만 풍년을 기대할 수 있다. 쌀 미(米)를 파자하면 八十八. 즉 우리 입에 밥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손길이 팔십여덟번 가야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힘든 농경일을 함께 하는 미륵이라는 발상이 참으로 아름다운 생각이고 복 받을 일이다.
시건방지고 나쁜 습성이 배인 나의 시각으로는 넓은 들판에서 일하는 소작농을 감시하는 지주집에서 파견한 마름으로 보인다. 새참이 오면 제일 먼저 자리하여 입맛을 다시고, 소작농의 위크포인트나 조사하여 나의 부를 챙기는 일에 능수능란한 그런 악덕 마름말이다. 이러니 어찌 복을 바라겠는가?
ㅎㅎ 이야기가 오끼나와로 빠져버렸구려!!!!!!!!"
안성지역에서 눈에 익은 미륵입니다.
처음부터 여기에 모신 지는 불분명하지만 민초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형체 구분은 힘들지만
오른쪽 미륵의 얼굴부분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왼쪽 미륵은 크기로 미루어 할머니미륵처럼 느껴집니다
오른쪽 미륵
할아버지 미륵?
뜨꺼운 열기를 식히려는 듯 머리 위에 얹은 겹겹으로 접은 작은 보자기가 정겨웁기 그지없습니다.
이마 위에 선과 길쭉한 머리로 판단하면 본래 삿갓을 썼던게 분명해 보입니다.
얼굴 이하는 훼손이 심하여 구분되지 않습니다.
할머니 미륵
할아버지 미륵보다 키가 작으며 판석형입니다.
목 위는 망실되었고 의문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뒷모습
할머니 미륵의 목 부분이 분명합니다
스쳐간 민초들
자식 점지해 달라고 빌고 빌었던
전쟁에 차출된 아들의 무사 귀환을 고대했던
정월 대보름이면 풍농, 무병장수, 사악한 기운 퇴치를 기원하며 함께 달불놀이를 했던
그 무수한 마을 전설을 지켜보았던 어르신입니다.
마을 미륵은.
왜?
심한 생채기에도 정겨웁다는 느낌이 들까요?
인생 말년에 병든 아내를 지키는 퇴직한 우리네 아버지 모습 때문은 아닐는지
(그런데, 왜 2009년 글에는 악덕 마름으로 표현했을까?)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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