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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장성군

장성...수산리 오층석탑

by 임병기(선과)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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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담장 너머 까치발로 인연 지었던 탑.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1216

 

지금은 담장을 허물어 출입이 가능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오성진곤비에 따르면 비보탑으로 진월면에서 옮겨온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층 기단의 오층탑

옛답사기에는 갑석 이하는 매몰되었다고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페이스북 친구인 기호철 선생에 의하면 수산리 탑은 취서사지에서 옮겨 왔으며, 하층 기단은  경수 기양연 공 기념비(耕叟奇亮衍公紀念碑) 대좌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취서사지에 남아 있는 석탑 하층기단

https://12977705.tistory.com/8725535

 

기단부

상층기단 갑석, 중석은 매몰되었는지, 분실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위 사진처럼 하대석은 매몰된 것이 아니라 사지에 남아 있습니다.

 

탑신부

초층 탑신석은 높고 상층 탑신석은 체감률이 큽니다.

전층 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전각 반전이 급격한 옥개석의 낙수면 물매는 급하며, 각형 1단 탑신 굄, 1~3층 옥개석 층급은 4단, 4~5층은 3단입니다.

 

2009년 당시에는 노반만 남아 있었는데, 구례 화엄사 삼층석탑을 닮은 보주를 후보하였습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매우 급합니다.

 

오성진곤비 (鰲城鎭坤碑)

1880년 세운 비석

석탑 조성 경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비와 탑을 세운 이유는 1600년 진원현과 장성현이 합쳐진 뒤 읍민들의 생활이 빈곤하게 되자 그 이유를 알아본 결과 옛읍 성산터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인데 산은 숲이 성하나 물은 곧게 달아나 수구(水口)가 무너진 때문이라 하여 이를 비보(裨補)하고자 곤방(坤方)에 탑을 세우고 소를 먹이가 많은 광산군 쪽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조산(造山)을 쌓고 소 먹이를 넣어 둔 적초루(積草樓)를 세웠다고 한다.(국립문화재연구소)

 

수산리 오층석탑은 모든 자료에 석탑은 진원면 진원리 탑선이골에서 옮겨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호철 선생은 서삼면 취서사지에 있었던 탑이라고 하며, 취서사지에는 석탑 하층기단을 비롯 석등 부재 등이 남아 있습니다. 검증과 조사를 통하여 자료가 통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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