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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함안군

함안...대산리 석조삼존상

by 임병기(선과) 2022.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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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大寺)

사명과 관련하여 기존 조사자료는 본 사지를 大寺址로 추정하고 있다. 大寺는 여지도서, 범우고, 경상도읍지 등에서 확인되나 당시 이미 폐사된 상태로 여항산 남쪽의 향교 밭 일원을 사지로 언급하고 있어 위치 상 차이가 있다. 본 사지가 위치한 동지산과 관련하여 1587년 한강 정구가 편찬한 함주지에  北寺라는 사찰이 동지산 남쪽에, 석미륵 4구와 육층탑이 있다고 하여 본 사지 위치와 사지 내에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과 석조보살입상, 석탑재와 내용상 일치하므로 원 사명이 ‘북사‘일 가능성이 높다(문화재청. 한국의 사지)

 

2019년 사진, 글은 그 이전 모신문사에 연재했던  내용으로 오류가 발견되지만 수정하지 않고 가져왔습니다.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4499

 

큰절이 있었던 마을 앞 보호각에 있습니다.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미 인연을 지었겠지만, 오늘은 불빛에 비친 디테일을 살펴보기 위하여 찾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유리건판(1917년 촬영)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이 현재 배치와 다르며, 대좌는 매몰된 상태입니다.

 

 

돌담장, 초가, 성황목의 금줄

1917년 당시에는 동제가 열리는 당산, 성황당이었습니다.

정겨움, 그리움...

 

무수석불(無首石佛)...노산 이은상(1938년)
내가 중학생 때에 내 고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함안이란 곳으로 여행 간 일이 있었다. 아무런 식견도 없고 아무런 비판도 없이 그저 놀다가만 온 것이로되 지금껏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대산리의 석불(石佛)이다. 거기 있는 석불은 입상이체(立像二體)와 좌상일체(坐像一體)였는데 그중에서도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좌상이다. 그때에 내 지식은 석불의 문화적 의의를 알 길도 없었거니와 조각자의 경탄할 수법 등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도 전현 백지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때부터 지금껏 내가 그 석불을 잊어버리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그 석불이 머리 없는 석불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하건대 동무들은 모두 다 손가락질을 하며 허리를 붙들고 웃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웃었다. 그러나 나는 웃은 것만 아니라 무엇인지 가련한 생각조차 가슴속에 서렸다. 그 뒤로 나는 지금껏 그 머리 없는 돌부처를 보는 듯이 생각한 적이 많았다.

나는 오늘 아침 우연히 또 한 번 그 석불을 생각하고 그 머리 없는 돌부처와 다를 것 없는 나 및 나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생각 없이 사는 자이매 머리 없고 몸뚱이만 있는 그 가련하고 가소로운 대산리의 석불과 다를 것이 무엇이랴.
그러나 대산리의 머리 없는 석불은 오늘 와서 국보로 보존함을 입고 위함을 받지만, 나와 나 같은 사람들은 쓸 곳에 없다. 차라리 옛사람의 손에 의해 돌부처로 태어났던 것만 못했구나.

 

아미타 여래

아미타 정인, 편단 우견, 삼도의 흔적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아미타정인 불상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362

 

광배

두광은 잘려나갔습니다.

 

광배

신광 내연에는 당초문, 외연은 잘려나가 본 모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대세지보살로 추정

 

대좌

지대석 물매와 내림마루가 불빛에 선명합니다

두 발은 상대석과 일석이며 보살상은 상대석에 끼워서 세웠습니다.

 

불빛에

대의 매듭과 승각기 매듭, 두 무릎의 옷주름이 선명합니다

 

관음보살

정병을 든 관음보살입니다.

대세지보살과 수인과 지물만 다르게 보입니다

 

대좌

 

석조 관음보살 입상

三屈姿勢가 맞나요?

팔찌, 영락 장식이 희미합니다.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보호각 속의 보살상 이전의 보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탑 부재

3단 층급받침, 풍탁공

보호각 보살입상과 동시대 작품처럼 생각됩니다.

 

함안박물관 야외전시장 석조물

석등 옥개석, 석탑 옥개석, 기단석, 석등 하대석

2003년 개관 때 대산리에서 옮겨 갔습니다.

 

열정

즐거움 이겠지요.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글을 다시 되뇌어 봅니다.

나는 오늘 아침 우연히 또 한 번 그 석불을 생각하고 그 머리 없는 돌부처와 다를 것 없는 나 및 나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생각 없이 사는 자이매 머리 없고 몸뚱이만 있는 그 가련하고 가소로운 대산리의 석불과 다를 것이 무엇이랴.
그러나 대산리의 머리 없는 석불은 오늘 와서 국보로 보존함을 입고 위함을 받지만, 나와, 나 같은 사람들은 쓸 곳에 없다. 차라리 옛사람의 손에 의해 돌부처로 태어났던 것만 못했구나.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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