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충주시

충주...지당리 석조여래입상

임병기(선과) 2022. 8. 10.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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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리 석불입상

역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뵙습니다.

 

지당리 석불입상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전합니다

큰길가에서는 바로 방향을 잡았지만 마을에는 안내표시판이 보이지 않아 집집마다 사람을 불러보았으나 텅빈 집이다.무작정  산쪽으로 향하다 경운기를 탄 주민에게 여쭈었더니 마을 앞 과수원 근처에 있다고 했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의 절인지 굿당인지 민가인지 헷갈리는 가옥(?)에 위치해 있었다. 개인 소유의 가옥에 불상이 위치했더라도 전면을 개방 또는 건축물을 제거하는 방안이 수립되었으면 좋겠다.안내문에 의하면  불당.산제당.미륵당 이 있어 이마을을 삼당마을로 부른다고 했다.
 

소발, 민초들에게 자식을 점지해주신 상흔이 가득한 눈과 코는 마멸이 심하지만 풍만한 얼굴에 볼이 볼록하고 입술은 두툼하다. 수인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였지만 아미타불의 변형 수인 처럼 보인다. 목은 보수하였지만 삼도를 표현했다. 지당리 불상에는 아래의 달빛에 젖은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의 일이다. 충주를 공략한 왜장「고니시 유끼나가」예하의 왜병들이 탄금대 작전이 있은 뒤에 다시 서울 침공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다. 이곳 삼당에 도착한 부장「오다미쓰오」라는 자가 이곳에 들어와 불당을 살폈는데 불상이 왜장을 보자 서서히 외면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노한 왜장은 발길로 불상을 차서 불당에서 곤두박질을 시킨 다음 옆으로 쓰러진 불상을 깔고 앉아 즉시 스님을 보고 밥을 해 오라고 위협을 했다. 

그날밤 50여명의 군졸들과 함께 불당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왜장은 쓰러진 석불을 베개 삼아 베고 잤다고 한다. 그날밤 이곳에서 멀지않은 삼당산에서 은거하고 있던 의병들이 밤에 동정을 살펴 보니까 마을밖에 있는 사찰에서 많은 담뱃불이 반짝 거리므로 접근해서 보니까 왜병 50여명이 잠을 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의병들은 잠이 들때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급습을 해서 왜병들은 거의 전멸을 시키다시피하고 오갑산으로 숨어들어 갔는데 불상을 베개삼아 베고자던 왜장은 입에 와사증이 일어나 입이 귀밑까지 치켜올라가는 바람에 별실에서 고민을 하다가 공교롭게 살아남게 되었다. 자기 부하가 전멸을 다하자 왜장은 불당에 불을 질러 버리고 하산하다가 계곡에서 굴러 죽고 말았다.(2008년.08월)
 
2022년 7월
오늘도 스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15년 전과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뒤편에 나무만 우거진 것 같습니다.

 

 

삼당마을

삼당마을의 ‘三堂’은 부처님의 가호를 기원하는 불당과 풍년을 기원하고 잡귀를 쫓기 위해 제물을 올리는 산제당, 내세의 극락왕생을 비는 미륵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민머리, 낮은 육계. 뚜렷한 발제선

백호. 튀어나온 광대, 낮은 코, 두툼한 입술

목부분을 시멘트로 접합했지만 삼도가 분명합니다.

2008년에 인지 못했던 보개는 오늘은 깜빡 놓쳤습니다

 

무릎까지 흘러내린 대의.

사선의 승각기

 

이중 착의법?

 

큰 손

두손 모두 아미타 수인이 아니라 손가락을 구부렸습니다.

 

등에는 특별한 문양이 없습니다

 

좁은 공간을 넓히고

보개가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202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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