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양주시

양주...어사대비(御射臺碑)

임병기(선과) 2022. 3. 1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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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관아지(楊洲官衙址)

1996년 복원된 관아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까지 417년간 양주목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던 곳이다. 1506년에 고주(高州) 지역에서 복구되었다가, 불곡산(佛谷山) 남쪽 유양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양주 관아지에 대한 관련 자료[경기읍지(京畿邑誌),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 등]를 보면 객사·형옥·읍창·진창·군기고·화약고·관청 등 31개의 시설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 때 양주가 의정부로 이전하면서 폐허가 되어 관아의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양주 ‘목(牧)’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 단위로 볼 때 관아의 규모가 매우 컷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1996년 양주 관아지 일대가 시범 문화마을로 지정됨에 따라, 원골 문화마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 복원된 동헌 1동과 마당 한쪽에 양주목사를 지낸 관리들의 송덕비(頌德碑;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비) 20여 기를 세웠다. 또한 양주 관아지에 대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된 이후, 현재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문화재청)

 

비림

 

어사대비

양주관아지 뒤편 비각속에 있습니다.

 

1792년 정조(正祖)가 광릉(光陵 : 세조 능) 행차 후 돌아오는 길에 양주관아에서 3일간 머물렀습니다. 이 때 정조는 화살을 쏜 후에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주목사 이민채(李敏采)가 대리석으로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귀부, 비신으로 간략한 모습이며, 전면에는 어사대(御射臺)를 새겼고, 후면에는 내용을 새겼습니다.

 

전면

어사대(御射臺)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후면)

上之十六年壬子九月上旬 幸 光陵以輿梁省?舍東路而取北路 出還皆經宿于州衙三日乃復盖爲民至意也治之傍舊 有射臺 駕臨之夕 御而射若干巡 命近侍?差員升射以次仍 宣饌式燕甚盛擧也  於是乎地益勝而臺益崇屹爲?望之宗 駕還道臣徐鼎修書揭十行 綸音於州壁盖與」 典謨相表裏而 無非吾民曠絶之惠也繼有 御射古風 判下於賤臣 御射柳箭小的? 十巡而其中四十九矢其分七十有二?若終巡第四矢則有 敎若曰五十矢皆中不可乃 不中第五矢又貫中旋以長尺餘廣倍尺之小革五矢俱全夫終巡之勉强闕一尤可以仰見 聖意之攸在謹將古風一本揭于 綸音之右 盛德神藝左右炳?則臺亦不可無識乃勒之 石曰 御射臺又載之邑誌以作億萬年之觀云爾

楊州牧使臣李敏采百拜謹記 崇禎三壬子十二月 日立

 

상감께서 왕위에 오르신지 16년(정조 16, 1792년)인 임자 9월 상순 광릉(光陵) 행차 시에, 나무다리가 부러진 것을 보시고 동쪽 길로 안가시고 북쪽 길로 가셨다. 행차가 끝나고 돌아오실 때, 고을 관아에서 숙식하시고, 3일 만에 환궁하신 것은, 백성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셨다.

양주(楊州) 관아 근처에 오래된 사대(射臺)가 있다. 행차가 양주 관아에 도착한 저녁, 상감께서 사대(射臺)로 가 몇 차례 활을 쏘시고, 대신들과 수행원에게 차례대로 활을 쏘도록 명하셨다. 활쏘기가 끝나자 바로 음식을 차리게 해서 잔치를 매우 크게 베푸셨다. 이곳은 경치가 뛰어난데 우뚝이 솟은 망루는, 뭇 망루의 종주가 될 만하다.

상감의 행차가 떠나자, 관찰사 서정수(徐鼎修)가 열 줄 남짓의 윤음을 고을에 게시하였다. 대체로 전모(법)와 상응하니 우리 백성에 대한 더없이 큰 은혜이다.

상감께서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히면 신하들에게 상을 내려 주셨다. 상감께서 작은 과녁을 향해 유엽전(버들잎살)을 쏘신 것이 무릇 10순(巡)인데, 그 중 명중 한 것이 49개였고, 점수가 72점이었다. 10순(巡) 네 번째 화살을 쏘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화살 50개 모두 명중시키겠노라. 명중시키지 못할 리가 없다.”고 하셨다. 다섯 번째 화살 또한 정곡을 맞히셨다. 길이가 한 자(30.3㎝)이고 너비가 두 자(60.6㎝)쯤 되는 조그만 과녁에 다섯 번째 화살이 정곡에 꽂혔는데도, 화살 다섯 개가 모두 완전하였다. 10순(巡)에 일부러 화살 한 개를 빠뜨리시니 상감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우러러 알 수 있다. 상감께서 활을 명중시킬 때마다 내리신 상 목록을 윤음(綸音) 오른쪽에 게시하였다.

상감께서 훌륭한 덕과 신기한 재주로 주위를 빛냈으니, 누각에도 또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바로 돌에 어사대(御射臺)라 새기고, 읍지에도 기록해서 억만년 긴 세월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양주목사 신 이민채(李敏采) 수없이 절하고 삼가 기록하다. 숭정 세 번째 임자(정조 16, 1792년) 12월 일에 세우다.

 

출처.국립문화재연구원

 

귀부 측면

 

귀부 전면

 

귀부 후면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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