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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임병기(선과) 2022. 1. 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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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 1622년

2021년 최석훈(또르) 님과 지장암을 찾았으나, 스님에게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는 말씀만 듣고 발길 돌렸었는데 오늘 국립박물관 조선의 승려 장인전에서 인연 지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우리가 조선 후기 불화, 불상. 부도 답사 시에 자주 접하는 스님과 금어들이 조성한 독특한 수인의 비로자나불이어서 승려 장인전에 전시한 님들 중에 가장 관심을 두고 뵈었습니다

 

조성발원문(造成發願文)이 발견되어  조성 배경과 시기 등이 밝혀진 비로자나불입니다

이 불상은 비운의 군주 광해군의 정비가 발원한 불상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 전국 사찰 복원 및 북한산성 축성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벽암 각성 스님이 감수하였으며, 당대에 불상, 불화 조성에 정점에 있던  금어들이 대거 참여한 작품입니다.

 

"발원문에 의하면 원 봉안처는 조선시대 왕실 부녀자들이 출가 수행하던 자인수양사(慈仁壽兩寺)이며, 광해군의 정비인 장열왕비(章烈王妃, 문성군부인 유씨/1576~1623)가 광해군과 세자, 세자빈, 본인 및 작고한 친정부모, 작고한 대군과 공주의 천도를 위해 모두 11 존의 불상과 불화를 동시에 조성하였으며, 이 상은 11 존상 중 하나로  현재까지 밝혀진 유일한 예에 속한다.

 

또한, 당대 최고의 고승 벽암 각성(碧巖 覺性)의 감수 아래 현진(玄眞), 응원(應元), 수연(守衍), 옥명(玉明), 법령(法玲), 명은(明訔), 청허(淸虛), 성인(性仁), 보희(普熙), 인균(印均), 경현(敬玄), 지수(志修), 태감(太鑑) 등 13명의 조상화원(造像畵員)과 성옥(性玉), 승일(勝一), 밀연(密衍), 의인(義仁) 등 4명의 치장(治匠)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위키 백과 발췌 정리)

 

***자인수양사(慈仁壽兩寺)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는  1661년에 폐사된 자수원(慈壽院)과 인수원(仁壽院)으로 추정합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위키백과 등에는 광해군의 정비인 장열왕비(章烈王妃, 문성군부인 유씨/1576~1623)가 조성한 11구 불상 가운데 유일한 예로 설명하고 있으나 오류입니다. 현재 까지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 좌상, 안동 선찰사 목조여래 좌상, 서울 칠보사 목조여래 좌상 등 3구가 전합니다.

 

안동 선찰사 목조여래좌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107

 

서울 칠보사 목조여래좌상

http://blog.daum.net/12977705/8726995

 

지장암 비로자나불의 또하나 특징은 지권인 수인입니다.

일반적인 지권인 수인과 다르게 오른손으로 주먹진 왼손을 잡은 독특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수인은 앞선 시대에 보이지 않은 최초의 사례로 전하며, 이후 1624년 현진이 조성한 법주사 소조비로자나불이 있으며, 화엄사 목조 비로자나불도 현진 계열(현진(玄眞, -1612-1637-)→청헌(淸憲, -1626-1643-)→승일(勝日, -1622-1670-)→희장(熙藏, -1636-1666-)→보해(寶海, -1646-1680-)의 청헌의 작품인 까닭에 금어 현진 그룹의 특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지장암 비로자나불과 비슷한 수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김천 구화사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으로 박권인, 지권인으로 불리며 주먹진 오른손을 왼손이 감싸고 있는 수인입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4244

 

또한, 김천 계림사에도 박권인, 일부 자료에는 지권인으로 기록한 마애여래좌상이 있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4240?category=5262

 

속리산 법주사 소조비로자나불

 

지리산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 관련 인물

벽암당 각성碧岩堂覺性(1575~1660)

법명은 각성(覺性)이고, 자는 징원(澄圓)이며, 호는 벽암(碧巖)이다. 호서(湖西) 보은(報恩) 사람으로 속성은 김해 김 씨이다. 대사에 관한 기록은 구례 화엄사에 있는 <구례 화엄사 벽암대사비(求禮華嚴寺碧巖大師碑, 1663년)>와 보은 법주사에 있는 <법주사벽암대사비(法住寺碧巖大師碑, 1664년)>에 남아있다.

 

벽암 각성대사는 부휴(浮休)대사의 수제자로 선(禪) 수행과 계율 실천에 투철하였다. 남한산성 축성의 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승군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후 적상산 사고(史庫)를 지키는 임무를 맡는 등의 국가적 소임과 함께 종단의 승풍을 진작하였다.저술로는 『선원집도중결의(禪源集圖中決疑)』 1권, 『간화결의(看話決疑)』 1편,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1권 등이 있다. 벽암대사는 송광사 중창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송광사에서 입적하였다. 송광사와 화엄사에 승탑이 있고, 해인사 국일암에는 진영이 남아있다.

 

화엄사 벽암각성 부도

 

완주 송광사 벽암당 부도

 

해인사 국일암 벽암당 부도

이외에도 순천 송광사 부도전에도 있습니다.

 

금어 현진

https://cafe.daum.net/_c21_/bbs_read?grpid=dRVf&fldid=366&contentval=000Qv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669&page=1&prev_page=0&firstbbsdepth=000QMzzzzzzzzzzzzzzzzzzzzzzzzz&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금어 수연

https://cafe.daum.net/_c21_/bbs_read?grpid=dRVf&fldid=366&contentval=000Qt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667&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아래 鍾和 님 사진으로 현진파의 디테일(왼팔의 Ω 주름, 발목으로 올라간 두 가닥 옷주름 등)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저는 이중착의법으로 생각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통견으로 등재하였으며, 위키 백과. 문화재청. 국립박물관 홈페이지에는 법의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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