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
몇 해전 정업원 터 답사 때에 참배하였으며, 오늘은 늦은 시간이어서 종무실의 허락과 열쇠를 받아 지장보살을 뵈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922년(고려 태조 5) 태조 왕건(王建)의 명으로 창건하고 비구니 혜원(慧圓)을 주석하게 하였다. 도선(道詵)이 왕건의 아버지 왕륭(王隆)에게 고려 건국의 예언과 함께 이(李)씨 왕조가 일어날 한양의 지기(地氣)를 억누르기 위해 개성 주변에 10개의 절과 전국에 3,800개의 비보사찰을 짓도록 하였는데, 이 절도 그중 하나라고 전해진다. 1036년(정종 2) 만선(萬善)이, 1158년(의종 12) 회정(懷正)이, 1299년(충렬왕 25) 지환(知幻)이 각각 중건 또는 중수하였다.
1456년(조선 세조 2) 단종이 죽은 후,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가 이 절에 머무르며 날마다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단종이 귀양 가서 죽은 영월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전해진다. 1771년(영조 47)에 영조가 절 내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우고, 동망봉이라는 친필 표석을 세워 단종을 애도하였는데, 이때부터 절 이름을 정업원이라 불렀다. 1813년(순조 13)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묘담(妙湛)이 중수하였다. 1823년(순조 23)에는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병세가 깊어지자 부원군인 김조순(金祖淳)이 이 절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왕후의 병이 나은 뒤 김조순이 절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었다. 1853년(철종 4)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金左根)이 중창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였으며, 1954년 비구니 윤호(輪浩)가 대부분의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알려졌다. 건물로 대웅전과 심검당·우화루·명부전·산신각·요사 등이 있다. 대웅전 내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은, 철원의 심원사(深源寺) 천불전에서 옮겨온 것이다. 정업원 구기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
(두산 백과)
정업원터(2013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4168
석조지장보살. 무독귀대왕. 도명존자
국가보물로 지정된 상으로 경주불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제1 진광대왕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따르면, 1660년(현종 1)에 경북 경산 동학산 용밀사(龍蜜寺)에서 상화원(上畵員) 승일(勝一, 1629∼1670), 변수(邊手), 성조(性照, 1646∼1670) 및 증명 원응(圓應) 등이 봉안하였습니다.
조각승 승일
"17세기 중반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을 대상으로 조상 활동을 펼친 조각승이었다. 승일은 1640∼1670년대에 자신의 독특한 작품으로 많은 불상들을 제작하며 일군의 제자들을 거느린 유파의 수장으로 활동하였고, 그의 제자로 추정되는 성조(性照)와 삼응(三應)은 승일의 작풍을 따라 승일파를 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목조 삼세불좌상은 그의 독자적인 작풍이 발현된 현존 첫 작품이다. 정수사의 석가불과 약사불은 승일에 의해 1646년(인조 24)에 조성된 구례 천은사 수도암(修道庵)의 아미타상과 대세지상의 얼굴, 체형, 옷 주름 등과 매우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얼굴은 상하로 길쭉하였던 수도암 불상들과 달리 턱이 각지고 폭이 넓은 얼굴로 바뀌었으며, 상체의 폭이 넓어져 당당한 모습이다. 귀의 형태는 삼각와 주변에 ‘y’ 모양이 깊게 조각되었고, 이병(耳屛)도 돌기처럼 튀어나온 승일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또한 하반신의 옷 주름에도 승일의 불상 전체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표현이 나타나 있다. 중앙에 폭넓고 좌우로 굽은 두 개의 옷 주름이 자리하고 좌우로 한두 줄의 음각선이 양 무릎으로 뻗쳐 나가는 형태가 그것이다. 여기에 간혹 정수사 약사상처럼 왼발 정강이 위로 끝이 예리한 대의의 모서리 자락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고, 정수사 석가상처럼 오른쪽 가슴에 끝이 예리한 대의 자락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다음 백과)
석조지장보살좌상
경주 불석으로 조성한 상으로는 큰 편에 속합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지물이 이채롭습니다.
시왕상(좌)
좌우에 5구씩 봉안하였고, 사이에 동자, 동녀를 모셨습니다.
1구를 제외하고는 1959년에 새로 모셨다고 합니다.
시왕상(우)
석조삼존불(사진.문화재청)
조성 발원기에 의하여 1902년(광무 6)에 개금 하였다고 합니다.
경부 불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천불전에 모셨던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석조삼존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으며, 많은 불화도 인연짓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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