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회암당 승탑

임병기(선과) 2021. 11. 1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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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암당 부도(2016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5132?category=5252

 

 

(초안. 업데이트 중. 20211004)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구간

영원사와 삼주암 등산로 상에 소재하고 있는 승탑으로 학계는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인지 못하는 승탑이다. 18세기 후반에 조성된 회암당 승탑은 김천 청암사에 있는 부도비를 통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과 분사리(分舍利), 승려 들의 계보, 교류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귀중한 승탑이다..

승탑

승탑은 상무주암 지근의 평평한 좁지 않은 터에 자리잡고 있으며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길을 탐방하는 이영규 님은 이 곳을 1686년 정시한 선생의 산중일기에 기록된 묘적암(妙寂庵) 터로 비정(比定)하고 있다.

승탑은 비지정 문화재로 방형 지대석 위에 특별한 문양을 조식하지 않고 탑신석에 회암당(晦巖堂) 당호를 음각하였고, 별석으로 제작한 큼직한 양련을 표현한 보주를 별석으로 올린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석종형 부도이다.

회당 정혜(晦庵 定慧. 1685~1741)

속성俗姓은 김씨, 본관은 창원. 9세에 범어사 자수선사(自守禪師)에게 출가하였다. 자수선사는 스님의 총명함을 간파하고 충허(沖虛)스님에게 추천하였고, 보광화상(光和尙)에게 구족계를 받고 경전을 배웠다

추봉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보광 원민 스님의 법을 받들어 1711년 율사(栗寺)에서 처음으로 강석(講席)을 열었다. 이로써 스님은 부휴 선수.벽암 각성. 모운 진언.보광 원민의 법맥을 계승하게 되었다.

이후 스님은 석왕사·명봉사·청암사·벽송사 등 명찰(名刹)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57세에 청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자료에 따라 회암의 한문 표기가 晦庵과 晦菴으로 통일되지 않았다.)

회암당 승탑이 입적한 경북 김천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에 봉안된 까닭은 스님 입적 3년 후(1744년) 세운 부도탑비와 영원사 설파당 부도 비문, 용추사 문곡대사 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회당대사 탑비晦堂大師 塔碑).1744년

영조때 우의정을 지낸 조현명이 짓고, 판부사 서명균이 쓰고 김상복이 새겼다

(전면)

有明朝鮮國佛靈山 雙溪寺定慧大師碑銘幷序 輸忠竭誠奮武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 館事 原府院 豐 君趙顯命撰 大匡輔國崇祿大夫領 中樞府事徐命均書 中訓大夫前行司 諫院正言金 相福篆 定慧大師聰明淵 」 廣講說瀾翻所在生徒雲 集稱西敎大宗師殆四十年而終其徒彩晴以狀來請 銘師與吾 弟東谿居士相善余按嶺節來見余於澄 淸閣中時余與客爲詩酒歡聲妓滿前師處其間油油 然言笑而目 若無覩也耳若無聞也余心敬之不爲 浮屠文字雖有吾儒法門義不可辭也其狀曰師俗姓 金氏昌原人生九歲自投於梵魚寺自守禪師禪師 異其聰慧授冲虛長老入伽倻山叅葆光和尙和尙始 授具遊湖南叅雪 巖旣己復歸和尙自是聲聞大彰 從學者日衆遂登壇竪拂時秊二十七旣又歷叅諸老 宿益有發明一日歎 曰數他寶何益哉入金 剛山坐 禪未幾還講授於釋王鳴鳳靑巖碧松諸名刹而卒亦 眎寂於靑巖師晩年常 欲謝遣講生專心內究顧諸 講生 不肯捨故師亦不能撤講席然其意則未嘗不以 禪爲歸也闍維時有雨雹光恠建塌安頂骨於佛靈 智異山中師以乙丑五月初二日生辛酉五月二十日 沒壽五十七師性溫雅有弘 度不拘小節云口舌騰 而心學荒敎宗崇而禪旨晦儒釋殊道而其末弊盖略 同也師能有見於此有以反之 吾黨之支離騖外者可以知所戒矣銘曰 與其生枝上之枝 曷若培根中 之根 四郊之牛羊不反 嗟吾儒有愧乎爾禪 崇禎紀元後再甲子八月日 建

회암당 다비 후 수습된 정골(頂骨)을 불영산과 지리산에 모셨다는 부도비 명문으로 확인된다.

禪爲歸也闍維時有雨雹光恠建塌安頂骨於佛靈 智異山中師

그러나 부도탑비에는 지리산에 모신 까닭을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벽송사에서 머물며 강석(碧松諸名刹)을 열고, 부휴, 벽암 스님의 법맥을 계승하였기 때문이며, 회암의 제자이며 영원사에 주석했던 설파 상언과 장수사(용추사)에 머물던 제자 문곡대사의 강력한 의지로 분사리 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용추사 문곡대사 비명.

大師法諱永誨。十三。出家入長水寺。投玅彦師。旣數年。玅彦異其聰慧。諭之曰。吾不敢闍梨爾。爾其以晦堂爲歸。晦堂卽定慧大師。以華嚴宗主名

문곡대사가 용추사에서 활동하였으며 스승인 묘언(妙彦) 스님이 회당(晦堂)을 귀의처로 삼아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爾其以晦堂爲歸. 晦堂卽定慧大師. 以華嚴宗主名

 

또한 영원사 설파 상언 대사 비문에서도 그 단서가 포착된다.​

영원사 설파당대사 비문

雪坡大師碑銘 大法師名尙彦。湖南茂長縣人。國朝孝寧大君十一世孫也。父泰英。母坡平尹氏。早失怙恃。家甚貧無以自資。年十九。投禪雲寺。薙髮于雲暹長老。受偈於蓮峯虎巖兩和尙。又參晦菴丈室。以禪系言之。於西山爲七世孫 (중략)及老入靈源立死關。以念佛爲課。日輪千念十周者十有餘年。庚戌臘。示微。辛亥正月三日。怡然入寂。壽八十五。臘六十六。

회암 정혜에게 배웠다는 명문이 실려있다..

又參晦菴丈室

김천 청암사에서 다비후 수습된 부도를 청암사와 지리산에 각각 모신 것을 분사리(分舍利)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양산 통도사. 정선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평창 상원사)에 봉안되었던 진신사리 가운데 임진 왜란 후 양산 통도사 사리를 대구 용연사와 강원도 고성 건봉사로 분사리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후기에는 승려들의 분사리도 쉽게 발견된다. 계파당성능탑 桂坡堂性能塔은 해인사. 화엄사. 북한산 봉성사에 각각 봉안되어 있고, . 환적당지경탑 幻寂堂智鏡塔은 의성 대곡사·문경 봉암사,춘천 청평사,충주 덕주사,대구 용연사,태백산 각화사,거창 연수사,합천 해인사 홍제암,칠곡 대흥사에 사리를 각 1매씩 분사리 하였다. 따라서 분사리는 큰 스님이 입적 후 수습된 사리를 출가, 득도, 강론을 펼치던 절, 말년을 보내며 입적한 사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산 회암당 승탑

회암당 승탑

김천 청암사 회암당 탑비

김천 청암사 회당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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