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양군

함양...영원사 불교문화재

임병기(선과) 2021. 11. 17.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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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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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업데이트 중. 20211004)

 

영원사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59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때는 너와로 된 선방이 100칸이 넘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영원사에 소장 중인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祖室案錄)에 부용 영관, 서산대사, 사명대사. 청매, 지안, 설파 상언, 포광스님 등 당대의 고승들이 109명이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여도 아홉 채가 넘는 당우(堂宇)가 있었으며, 실화상록(失火詳錄)에 따르면 1912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다시 복원되어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이후 여수 반란 사건 때 전소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에서 소실되었으며, 1973년 대일스님이 복원 불사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목조보살좌상, 1894년에 조성된 신중도,지장도와 청매선사방광사리탑, 승탑원 등이 있다.

목조보살좌상

2016년 10월 경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명칭은 '함양 영원사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물 일괄'이다. 복장발원문에 의하면 1655년 금어(金魚) 승일(勝一)을 비록하여 여러 화승(畵僧)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보살상의 머리에는 화려한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고, 보관 사이로 빠져나온 보발寶髮)은 귀를 감고 내려와 어깨 아래로 흘러 내렸다. 장방형 상호의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반개한 눈, 코는 오똑하며, 귀는 길고 입꼬리는 약간 올렸다. 길게 표현한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途)를 표현하였고 법의는 이중착의법으로 오른쪽 어깨에 걸친 편삼(偏衫) 자락과 대의자락이 복부에서 서로 교차한다..승각기는 수평으로 매듭지었고, 군의자락이 무릎 사이로 부채꼴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별조(別造)로 조각하여 끼운 손은 신체에 비해 다소 큰 편이다. 가슴 부근의 오른손과, 무릎에 올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의 아미타 수인이다.무릎과 신체의 비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안정된 상이다.​

복장물에 의하면 보살상을 제작한 조각승은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승일(勝一) 스님이다. 승일스님의 생몰 연대는 1600년 전후에 출생하여 1670대 후반 까지로 추정되며, 작품으로는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강진 정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구례 천은사 수도암 목조여래좌상과 보살상 , 김천 고방사 목조여래좌상, 대구 서봉사 목조지장보살상 등의 여러 작품이 남아 있다. 함양에는 승일 스님과 함께 영원사 보살좌상 조성에 참여했던 제자인 성조(性照) 스님이 1674년에 제작하여 함양 백전면 영은사에 봉안하였던 목조아미타좌상이 영은사가 폐사된 후 인근의 백운암에 봉안되어 있다.

승탑군(僧塔 群)

삼정리 산 161번지. 경남유형문화재

승탑군은 영원사 약 1㎞ 전방 진입로 우측에 있으며, 도로변에 안내표식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5기 승탑이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탑신에 당호를 새겨 주인공은 확인되지만, 설파당을 제외하고는 행장(行狀)이 전하지 않는다.

영암당 탑

방형 기단부, 탑신부와 상륜부의 보주가 일석(一石)인 종형(鐘形) 승탑이지만 마치 골호(骨壺) 느낌이다. 탑신부 중앙을 방형으로 얕게 파내고 영암당탑(靈巖堂塔)을 새겼다. 상륜부는 2단 굄 위에 연화 보주를 올렸다

 

설파당 탑

방형 기단 상부에 원형 1단 탑신 괴임을 두고 구형 탑신을 올렸다. 다소 두텁고 내림마루가 높은 육각 옥개석은 낙수면 물매가 완만하며, 전각의 반전이 급격하고, 상륜의 연화보주와 일석으로 조성하였다. 탑신석 중앙에 설파당탑(雪坡堂塔)을 새겼다.

설파 상언 대사(雪坡尙彦. 1707~1791) 비문

"雪坡大師碑銘 大法師名尙彦。湖南茂長縣人。國朝孝寧大君十一世孫也。父泰英。母坡平尹氏。早失怙恃。家甚貧無以自資。年十九。投禪雲寺。薙髮于雲暹長老。受偈於蓮峯虎巖兩和尙。又參晦菴丈室。以禪系言之。於西山爲七世孫 (중략)及老入靈源立死關。以念佛爲課。日輪千念十周者十有餘年。庚戌臘。示微。辛亥正月三日。怡然入寂。壽八十五。臘六十六。

대법사의 이름은 상언(尙彦)이고 호남 무장현(茂長縣 :지금 고창군 무장면) 사람이다. 효령대군의 11세손이다. 부친은 태영(泰英)이고 모친은 파평윤씨이다. 조실부모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스스로 살길이 없었다. 19세에 고창 선운사(禪雲寺)에 투신하여 운섬(雲暹) 장로에게 머리 깍고 연봉(蓮峯)과 호암虎巖(체정體淨, 1687~1748 환성지안의 제자임) 두 화상에게 게송을 받았다.

회암 정혜(晦庵 定慧 1685~1741) 스님에게 배웠다. 선종(禪宗)의 계보로 말하면 서산(西山)에게 7세손이 되고 환성 지안(喚醒 志安 1664~1729)에게 손자가 된다. 33세에 대중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용추(龍湫) 판전(板殿)에서 강좌에 올랐다.

(중략)노년에 영원사(靈源寺:함양군 마천면 삼정동 소재)에 들어가 죽을 각오로 염불로써 일과를 삼았다. 날마다 천 번 염불하는 것을 열 번 되풀이하였는데 10여 년 동안 이어졌다. 정조 14년(1790) 섣달에 작은 병에 걸렸고 15년(1791) 1월 3일에 기쁜 표정으로 열반에 들었다. 나이 85세 법랍 66세였다.(번암집)

1790년 이동항(1736-1804)지은 방장유록(方丈遊錄)에 등장하는 법희암(法喜庵)의 도원(道元) 스님이 설파 대사에게 의발(衣鉢. 법의와 바루)를 물려받은 법제자로 기록(法喜庵 僧 道元 而學於 雪坡大師 傳其 衣鉢)하고 있다. 따라서, 설파 스님이 1791년 입적하기 전에 의발을 물려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봉당 탑

원형기단 위에 1단 굄을 조출, 상륜부와 탑신석은 한 돌이며, 탑신석 상부에 복련을 새기고 보주를 올렸다

탑신석에 중봉당탑(中峯堂塔)이 새겨져 있다. 

청계당 탑

종형 부도이며, 팔각 기단부, 종형 탑신석과 탑신에 비해 큰 보주가 일석이다.

탑신석에 청계당탑(淸溪堂塔)을 새겼다.

벽허당 탑

종형부도로 복련이 새겨진 팔각 기단부, 종형 탑신석, 상륜부에는 연화보주를 올렸다.

탑신석에 벽허당탑(碧虛堂塔)를 새겼다.

영원사 방광사리탑(靈源寺 放光舍利塔)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3~1623) 스님의 승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지정 문화재다.

선조대왕의 부마이며 정안옹주의 부군인 박미(朴瀰. 1592(宣祖25)~1645(仁祖2)가 남긴 전라북도 부안 실상사 글에 청매 스님의 사리탑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영원사 청매스님 방광탑은 다른 사찰에도 분사리 하였던 것 같다.

청매 인오

서산대사의 제자, 임진왜란 승병장, 광해군 때는 왕명으로 벽계 정심(碧溪淨心), 벽송 지엄)(碧松智嚴), 부용 영관(芙蓉靈觀), 서산 휴정(西山休靜), 부휴 선수(浮休善修) 진영을 그렸으며, 십이각시(十二覺詩), 십무익송(十無益頌) 등의 많은 선시를 남겼다.

일반적인 팔각원당형이 아니라 흔치 않은 육각 탑신의 승탑이다. 방형 지대석 위에 앙련(仰蓮)를 새긴 원형의 하대석을 두었다. 육각의 중대석, 상대석은 찾기 힘든 석탑 옥개석과 유사하다. 흔치 않은 방형 대좌 위에 하기단에는 일반적인 복련을 탈피하여 앙련을 새겼다. 중대석은 육각형이며 상기단은 석탑의 옥개석처럼 조성하였다. 육각 탑신석, 육각 옥개석의 낙수면 물매는 급하지 않고 내림마루를 표현하였으며, 1단 굄 위에 보주를 일석으로 올렸다. 조성 절대 연도를 알 수 있고, 특이한 육각형 탑신이 특징인 승탑이다. 승탑을 방광사리탑으로 칭하는 것은 스님이 입적 후 승탑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종종 목격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한편 정찬주 님의 '공부하다 죽어라'의 글에는 청매 스님이 구례 연곡사에서 입적 후 도솔암에 부도를 조성하였으며, 도솔암이 폐사된 후에도 종종 빛을 발하였다고 한다. 발광을 산불로 착각한 마을 사람 들과 영원사 대중들이 불을 끄기 위하여 달려갔으나 부도의 사리에서 발광하는 것임을 깨닫고 돌아오곤 했다. 그런 후에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들이 영원사로 옮겼으며, 이후 빛이 발광하지 않았다고 한다.

방광사리탑은 우리나라 여러 사찰 승탑원에 소재하고 있으며, 특히 고성 옥천사. 하동 쌍계사, 산청 대원사, 부산 범어사 등 부산, 경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기타

두류선원에 봉안된 지장시왕도, 신중도 화기(畵記)에 대청 광서 20년 갑오 11월 일(太靑光緖二十 年甲午十一月 日) 조성(造成) 명문이 있다. 광서는 청나라 11대 황제 덕종 재위 시의 연호로 1894년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 수 있다..두 불화는 비지정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등재된 지장도, 신중도 화기(畵記)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畵記 : 大淸光緖 二十年甲午 十一日月造成 緣化秩 證明比丘 寶潭 片手比丘 斗明 出草 比丘 斗幸 化主比丘 道任 施主秩 運虗 文午 靈駕 即徃淨土 比丘尼秩 莊弘 海訓 會真 普讚 仁活 敬仁 定真 仁觀 桂善 道益 普欣 應典 以此勝緣功德 同徃極樂之大願

신중도(神衆圖)

畵記 : 太靑光緖二十 年甲午十一月 日造成于 知足庵仍奉安 本庵 緣化秩 證明比丘寳潭 英華 誦呪比丘明惺 禪源 持殿沙彌法起 片手 比丘斗明 金魚 比丘景昊 比丘龍珠 比丘斗幸 比丘童守 比丘萬壽 比丘敬修 比丘在源 比丘 斗現 比丘仁宣 茶角行者報恩 供司 比丘會仁 別供比丘 華碩 火坮 太權 化主 都監 比丘 道任 淸信女戊戌 生念佛華 金氏 坤命甲寅生 韓氏 京居 大丘居 乾命辛亥生 崔克昌 率子癸未 生 健杓 壽福双全之願

두 불화의 화기에 의하면 1894년 지족암(知足庵. 해인사 산내 암자로 추정)에 봉안한 불화로 큰 스님인 증명 비구는 보담( 寶潭), 편수(片手) 비구는 두명(斗明)이며, 화승은 두행(斗行)을 비롯 여러 명이 참여하였으나, 지장도에는 화승을 출초(出草)로 신장도에는 가장 일반적 호칭인 금어(金魚)로 표기하였다. 또한 지장도 불화 조성에는 많은 비구니 스님이 동참하였으며, 신중도 불화 조성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재가 여자 신도인 청신녀(淸信女) 김씨, 한씨, 대구 거주하는 최극창이 외아들의 수복을 기원하며 시주하였다.

영원사에 소장하고 있는 비지정 문화재인 지장시왕도와 신장도는 봉안한 사찰, 조성시기, 참여한 스님과 시주자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불화이다.

 

영원사

목조보살좌상

 

영원사 신중도

 

영원사 지장도

 

영원사 방광사리탑

 

승탑군

 

영암당

 

설파당

 

중봉당

 

청계당

 

벽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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