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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진도군

진도...(전)왕온 묘, 말(馬)무덤

by 임병기(선과)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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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왕 온 묘

의신면 침계리 산 45

왕무덤재 근처에 고려 왕 온 묘로 전하는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에는 문인석 2기, 상석, 향로석이 있습니다

 

왕 온(王溫.?~1271년)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왕 온(王溫)이다. 현종의 8대손이며,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의 맏형으로, 승화 후(承化侯)에 봉해졌다. 270년(원종 11)에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40년간에 걸친 전쟁이 종식되고 강화로 피난하였던 왕실이 개경으로 돌아오자, 이를 반대하던 삼별초의 배중손(裵仲孫)·노영희(盧永禧) 등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에게 삼별초가 크게 패한 뒤 아들 왕환(王桓)과 함께 홍다구(洪茶丘)에게 피살되었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

 

무인석(우)

 

무인석(좌)

 

"고려시대 중기에 진도에 입거 한 삼별초군이 용장성에서 쫓겨 이 고개에 이르러 추격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 같은 연유로 ‘빗기내’(핏기 내 또는 피내[血川]의 전와)라고 하여 한자로 ‘斜川’으로 표기한다.

『고려사절요』 권19 원종 12년 5월조에 승화후 온(承化候 溫)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진도지방에서 구전되기는 준(綧)이 아들 희(熙)와 함께 옹(雍)을 여몽연합군의 장수로 파견, 그의 동생 왕온을 구해 오도록 했으나 악질적인 홍다구(洪茶丘)가 ‘다근투골(茶丘鬪谷)’에서 죽였음을 알고 눈물을 뿌리며 흙을 덮어 왕온 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김몽규(金夢奎)가 1761년에 지은 읍지인 『옥주지(沃州誌)』에 왕온에 대한 기사가 나오며, 1924년에 만든 『진도군지』에 ‘왕온의 묘는 군의 빙고등 뒤에 있는데 지금은 왕분치(王墳峙)라 하고 돌들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王溫墓 在郡氷庫嶝後 今稱王墳峙 至今石潾依然露出)

 

왕온의 무덤은 직경이 810㎝, 높이가 200㎝가량이며 장타원형의 토장분 형태로 호석이 둘러져 있다. 1978년과 1983년에 보수하였다"(란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말무덤

왕 온 무덤 아래에는 왕 온이 탔던 말무덤으로 전합니다

 

지인으로부터 왕 온 무덤 아래쪽 민묘 상석에 석탑 옥개석이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았으나, 석탑재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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