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남도/여수시

여수...개도. 여석마을 벅수(1)

by 임병기(선과) 2021. 5. 18.
728x90
728x90

백야항

하루 전 도착하여 민박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백야항에서 개도 여석항까지 20여 분 소요되며, 선편은 많지 않고, 오후 2시경에 입도하는 배편이 끊깁니다.

 

일출

민박집에서 바라본 일출입니다.

 

백야항

정식(7천 원)

 

백야항

승선하여 바라본 백야항

 

 

개도(蓋島). 여석마을

 

동경 127°55′, 북위 34°28′에 위치한다. 북쪽에 여수반도, 북동쪽에 돌산도, 남동쪽에 금오도(金鰲島), 서쪽에 고흥반도가 있다. 면적은 8.76㎢이고, 해안선 길이는 25.5㎞이다. 화정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면에서 제일 큰 섬이다.

주위의 작은 섬들을 거느린다는 뜻으로 ‘개(蓋)’ 자를 써서 개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는 봉화산과 천제봉이 개의 두 귀처럼 보여 개섬이라 하였다고도 전해진다.

 

남부에는 봉화산(烽火山, 335m)·천제봉(天祭峰, 328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에 의해 암석해안이 발달해 있으며,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는 낮아진다. 섬 중앙부에는 저평한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전면의 만입부는 제방을 쌓아 경작지로 조성되었다.

연평균 기온은 14.4℃, 1월 평균기온은 2.1℃, 8월 평균기온은 24.8℃, 연강수량은 1,247㎜이다. 기온이 온화하며,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남국적인 풍경을 이룬다.

 

2013년 기준으로 인구는 1,048명(남 525명, 여 523명)이 거주하고, 세대수는 522세대이다. 섬의 중앙부에 형성된 화산마을은 섬의 중심지로 화정면 개도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0.29㎢, 밭 2.16㎢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를 비롯하여 콩·고구마·마늘 등이 생산된다. 연안에서는 서대·양태·멸치·게·문어 등이 잡히며 참전복·우럭·감성돔·굴·미역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교통은 여수와 백야도에서 개도를 경유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화정초등학교와 여수개도중학교가 있다.(다음 백과)

 

여석 마을

마을 부근에 숫돌의 재료가 되는 돌이 많아 숫돌 기미라고 부르던 곳을 한자로 고친 마을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마을 앞에 맞보고 있습니다.

 

좌측 대숲. 남정중(南正重)

우측 나무 아래. 화정려(火正黎)

일제강점기에 세운 벅수입니다.

 

일부 민속학자들은 역병이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는 믿음 때문에 상원 당장군, 하원 주장군 등, 중국 장군을 벅수에 새긴다고 합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남정중, 화정려를 이해해도 크게 잘못된 해석은 아닐 것 같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에게 문의 결과 현재 당제는 모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황준구 님의 글이 어떤 자료보다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여석마을,- ‘여수’ 앞바다 ‘개도’篕島의 '여석마을' '벅수'法首는, 이 지역에서 생산이 되는 <'여석'礪石>(숫돌기미)이라는 '숫돌'('공구'를 갈아 날을 세우는 '돌')을 '조각'하여 세운 것으로,- 단단하고 '강'하며 바닷가의 '비바람'에도 잘 보호되고, '유지'가 되고 있다. '벅수'가 세워진 위치나 명문銘文으로 보아, '역병'과 '잡귀'로 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여석'(숫돌)이 생산되는 '마을'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보여 진다.

마을 어귀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세워져 있는 '벅수'의 가슴에 새겨진 '글'은,- '여수' 지역에서 공통으로 사용이 되는, '남정중'南正重과 '화정려'火正黎다. '남정중'은 170cm의 '키'를 가졌고,- '화정려'는 160cm다. 마을사람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나눔'을 하여 부르고 있다. <잘못된 '전통'이다.> '중국'의 한漢나라 '사마천'이 쓴, 역사책에는, "남정"南正과 "화정"火正은 '중국'의 '벼슬'을 나타내는 '직급'職級이고,- '중'重과 '려'黎는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정중'과 '화정려'는 '중국'을 대표하는 '장수'將帥를 표현한 것으로,- '조선'땅을 지켜주기 위하여 '여수땅'으로 '파견'을 나온,- '수호신'을 뜻한다. 우리 '조상'의 모습이 아니다.

‘숫돌기미’(여석마을)의 ‘수호신’은 본디, 나무 ‘벅수’였으나,- ‘일제강점기’로 어수선한 '시절'의 1921년에, ‘돌벅수’로 바꾸에 세웠다,라고,- 마을 이장, ‘이선학’은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남정중’의 ‘옆구리’에는,- <辛酉年 二月>이라는 ‘명문’이, ‘오목새김’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백과사전’에는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잘못된 '기록'을 하고 있다.

'여석마을'에서는 ‘전통민속’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끼리 만 모여,- '벅수'앞에서 간단하게 '마을제사'(洞祭)를 지낸다. 마을이 아무탈 없이 ‘평안’ 하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며,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는,- 마을의 '공동체 의식'이다."

 

남정중(南正重)

할아버지 장승으로 불리며, 대숲에 둘러싸여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관모를 쓰고 왕방울 눈, 뭉툭한 코는, 성긴 이빨, 해학적인 우리네 벅수의 전형입니다. 

몸에는 남정중(南正重)을 새겼으며, 허리의 명문(辛酉年 二月)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화정려(火正黎)

할머니 장승으로 불리며, 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관모를 쓰지 않았고, 왕방울 눈, 뭉툭한 코, 이가 빠져 합죽한 모습에서 우리 민초들의 해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수의 벅수(장승)

https://blog.daum.net/12977705/8727233

 

여석항이 개항되기 전에는

개도에서 가장 큰 화산마을에서 여석마을로 들어오는 얕은 고갯마루에 세운 벅수로, 마을 안녕, 풍어, 벽사, 기자를 염원하며 올렸던 당제는 맥이 끊겨버렸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

우리네 어촌 마을이 직면한 현실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2021.04.10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