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광주시

광주...성종 옹주(공신옹주, 휘숙옹주) 태실.태비

임병기(선과) 2020. 7. 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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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

퇴촌면 원당리 산 30

원당리 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하며 정상 부근에 태함 1개가 노출되어있고,  왕녀 태비 2기가 도괴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글 마지막 부분에서 태비 주인공을 밝혀 보겠습니다.

 

태함

덮개돌로 누구의 태함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태비(1)

(전)왕녀태실(王女 胎室)

(후)성화 십칠년 칠월이십사일 입석(成化十七年七月二十四日立石)

 

뒷면 글은 여러 자료를 검토 후 포스팅한 김희태님의 네이브 블로그(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의 조성 시기를 참조했습니다

 

 

성화 십칠년 칠월이십사일 입석(成化十七年七月二十四日立石)

후면 명문으로 1481년(성종 12년) 이전에 태어난 성종의 공주 또는 옹주의 태실임을 추정 가능합니다.

 

 

 

 

 

 

태비(2)

태비(1)에서 아래 편에 도괴되어 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전)왕녀 태실(王女 胎室)

(후)성화 십칠년칠월이십일일입석(成化十七年七月二十一日立石)

 

후면 명문은 위의 태비처럼 김희태님 블로그를 참조했습니다

 

성화십칠년칠월이십일일입석(成化十七年七月二十一日立石)

1,481년 이전에 태어난 성종의 공주 또는 옹주 태비로  태비(1) 태주 보다 3일 먼저 세웠음을 보여줍니다.

 

 

 

 

 

 

2기 태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조선 왕조에서 가장 많은 자녀를 가진 성종의 가계도에서 단서를 찾아보겠습니다.

 

 

 

(사진 출처...두산백과사전/다음)

 

먼저

왕비와 공주와 옹주의 출생 시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인터넷의 여러 자료를 검색하여 추정한 출생 연도이며 오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정현왕후

신숙공주(1,481~1,488)

 

귀인 정씨

정혜옹주(1,490~1,507)

 

귀인 엄씨

공신옹주(1,481~1,549)

 

숙의 홍씨

혜숙옹주(1,478~?)

정순옹주(1,486~1,506)

정숙옹주(1,493~1,573)

 

숙의 김씨

휘숙옹주(?~?)

경숙옹주(1,483~?)

휘정옹주(?~?)

 

숙용 심씨

경순옹주(1,482~)

숙혜옹주(1,486~?)

 

숙용 권씨(1,471~1,500)

경휘 옹주(?~?)

 

출생일을 기준으로 태비를 세운 1,481년 이전에 출생한 공주와 옹주입니다.

신숙공주(1,481~1,488)

공신옹주(1,481~1,549)

혜숙옹주(1,478~?)

휘숙옹주(?~?)

 

휘숙옹주는 출생일이 확인되지 않으나 여동생인 울산에 태비가 전하는 경숙옹주 출생년(1,483)을 감안하면 1,481년 이전 가능성이 있습니다.또한 출생이 확인되지 않은 휘정옹주는 경숙옹주의 동생이어서 대상에서 제외하였으며, 경휘 옹주는 어머니 숙용권씨(1,471~!,500)의 출생년으로 판단하여 배제했습니다.

 

그런데 원당리 태비 2기 중 1기의 주인공은 자료를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왜 지금까지 밝히지 못했을까요?

 

 

(사진 출처...마한유민/http://blog.daum.net/whdnjsry/160779)

 

태지석

이화여대박물관에 태항아리와 함께 전시 중인 태지석입니다.

 

황명 성화 십칠년신축 삼월십일생 (皇命 成化 十七年 辛丑 三月 十日 生)

왕녀 아지태 성화 십칠년 칠월 이십사일 정시 장(王女 阿之胎 成化 十七年 七月 二十四日 丁時 藏)

 

 

공신 옹주 묘지석(사진 출처...마한유민/http://blog.daum.net/whdnjsry/160779)

 

오른쪽 묘지석에 어머니 귀인 엄씨(귀인 영월인)와 공신옹주 출생일(成化 十七年 辛丑 三月 癸卯 生)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원당리 태봉 정상 부근에 도괴된 2기 태비 중 위쪽 태비 조성시기와 일치합니다.

 

따라서,

태비(1)은 태비, 태지석, 묘지석 명문이 일치하므로 공신옹주 태비가 분명합니다.

 

태비(2)

성종의 가계도에서 요약한 4명의 공주, 옹주 중 공신 옹주를 제외한 3분 가운데 한 분이 태주입니다.

 

신숙공주(1,481~1,488)

혜숙옹주(1,478~?)

휘숙옹주(?~?)

 

우연하게도 1,481년 이전에 태어난 왕녀가 4분이며, 1,481년에 세운 태비가 4기 전합니다.

2기는 경기도 광주 퇴촌 원당리이며, 2기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삼태리입니다.

(현장 답사 후 사진 자료 추가하겠습니다)

 

밀양의 2기 중 1기는 신숙공주로 추정되는 자료가 전합니다.

"밀양 『밀주구지(密州舊誌)』에는 조상야리(助山也里) 재부서이십리(在府西二十里) 당성공주태(唐成公主胎) 출김선생필재집(出金先生畢齊集)이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의 조산야리는 지금의 화봉(華封)이고, 조선 성종에게는 공주가 신숙공주(愼淑公主)밖에 없기 때문에 밀주구지의 당성공주는 신숙공주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태비(2)의 주인공은 혜숙옹주, 휘숙 옹주 중 한 분으로 추정한 글을 블로그에서 읽은 김희태 님이 혜숙옹주 태실은 서울 광진구에 있다고 알려와서 관련 자료를 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태비(2)의 태주는 휘숙옹주로 추정됩니다.

 

원당리 태비(1)

 

공신옹주 恭愼翁主(1,481~1,549)

조선 제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5)의 서3녀이며,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손자며느리이다

 

귀인 엄씨의 소생으로, 14세에 한명회의 손자이자 낭성군(琅城君) 양호공(襄胡公) 한보(韓堡)의 아들인 순의대부(順義大夫) 청령위(淸寧尉) 한경침(韓景琛)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한경침은 그녀가 18세 되던 해에 사망하였으며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이후 그녀는 사망할 때까지 수절하였다.

이복오빠인 연산군은 폐비 윤씨가 궁에서 폐출되어 사사당한 일의 배후를 소용 엄씨로 보아 그녀를 죽이고 공신옹주 또한 폐서인하여 아산현에 위리안치시켰다. 옹주는 남편의 신위를 유배지에 가져가서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내고 무엇이든 신위에 먼저 천신한 뒤에 입에 대었고, 아산현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다.

중종반정 이후 사면되었으며, 후에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중종은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곡식을 내려주었다. 또한 옹주의 절행을 《삼강행실속록》(三綱行實續錄)에 추가하여 싣도록 하였다. 말년에 외가인 영월 엄씨 가문과 남편인 한경침의 제사를 위한 후사를 세웠으며, 평생을 수절하다 69세로 사망하였다.

2,006년~2010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지구에서 행해진 발굴조사 결과 회곽을 쓴 그녀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5장으로 이루어진 백자묘지명에 의하면 그녀는 성화 신축(1481)년에 태어나서 가정 기유(1549)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위키백과)

 

원당리 태비(2)

 

휘숙옹주徽淑翁主(?~?)

"성종의 서차녀이며, 어머니는 명빈 김씨,임사홍의 아들 임숭재와 혼인하여 3녀를 두었다. 이로인하여 중종반정이 일어났을 때 휘숙옹주 또한 반정 세력에 의하여 숙청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휘숙옹주의 죽은 시기가 기록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는 확실치 않다. "(위키백과 발췌)

 

묘는 경기도 여주에 있습니다.

 

경기 광주 원당리 태봉

태비(1)는 신숙 옹주 태비, 태비(2)는 휘숙 옹주 태비입니다.

그렇다면 밀양 무안면 삼태리 태비의 주인공은 선원계보도의 성종 가계도에 실리지 않은 왕녀의 태비입니다.

답사꾼인 저의 한계는 여기 까지며, 심도 있는 연구와 고증은 전문가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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