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합천...해인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임병기(선과) 2020. 5. 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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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전

씽둥이비로자나불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저의 안목으로는 차이점을 구분 할 수 없습니다.

 

해인사 최고목불은 '쌍둥이 불상'-진성여왕과 각간 위홍 연정담아 만든 듯                         

http://blog.daum.net/kinhj4801/2782529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청)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목조불상으로 1m가 넘는 크기에, 조형성은 물론 조각적인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이다.
동글동글한 나발, 이상화된 얼굴과 당당한 신체 표현, 신체에 감기듯 팽팽하게 걸쳐 입은 편단우견의 착의형식과 더불어 치켜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형태, 긴장감 넘치게 조각된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발원문 그리고 후령통 등 여러 종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1167년경과 1490년의 중수 때 납입된 것이다. 특히 1490년에 납입된 후령통은 안립 절차에 입각하여 정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조상경(造像經)』이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복장의식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사씨(史氏) 일가에 의해 납입된 반야심경의 발원문은 1167년(고려 의종 21)에 불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여서 이 불상의 하한연대 결정에 결정적인 자료이다. 이 밖에 1150년, 1156년, 1166년에 각기 판각한 『대비로자나성불경등일대성교중무상일승제경소설일체다라니』가 발견되었다.

복장물 가운데 3점의 조각보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보의 역사가 5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홑저고리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후령통 내부의 오보병은 그 구성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 독특한 방식을 갖추고 있어 직물사와 복장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청)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크기나 착의법 그리고 표현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시대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진다. 다만 세부적인 표현과 제작(속파기) 기법 상의 미세한 차이, 과학적 분석 결과 등을 참고할 때, 법보전의 상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다만 1167년을 하한으로 볼 수 있는 발원문이 복장에서 발견되어 이 불상이 늦어도 고려 1167년 이전에 제작된 상임을 알 수 있다.

1167년 이 지역 유력 세력이었던 사씨(史氏)와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중수, 고려 14세기 후반에 화살 명장(名匠) 송부개(宋夫介)의 중수 참여, 그리고 1490년 조선 왕실 주도로 이루어진 개금중수 사실만으로도 한국조각사에서 중요한 불상이다. 또한 이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현재까지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중 최대·최고 수준이다. 법보전과 동일한 내용의 발원문 2매 외에도 17종의 다라니가 확인되었다.

이 밖에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섬유류 유물이 함께 복장되었다.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요선철릭((腰線帖裏, 허리에 선장식이 있는 철릭), 답호(褡穫), 저고리, 사경낭(寫經囊), 주머니, 직물 편 등 12점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것은 1490년에 납입된 것으로 저고리를 비롯하여 보자기, 오색후혈장엄(五色喉穴藏嚴) 등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현전하는 고려시대 복식 유물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복장유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요선철릭이나 답호 등은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더불어 1490년에 납입된 홑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저고리 유형을 알 수 있어 그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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