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순천시

순천...종칠위 선영배 철비, 군수 신병우 철비

임병기(선과) 2020. 4. 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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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복지회관

외서면 월암리 171번지 

 

복지회관 비림

 

선영배 철비. 신병우 철비

 

종칠위 선 공 영배 공덕불망비(從七位 宣 公 永培 功德不忘碑)

 

종칠위(從七位)

일제강점기의 관직

 

"조선인 관리가 최상위에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대체로 고등관인 군수였다. 종7위 고등관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어렵다는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능력은 물론 일제에 대한 자발적 충성이 뒤따라야만 임용이 되었다. 고등관이 되기만 하면 그 아래인 ‘판임관 관료’가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일거에 보장되었다. 고등관과 판임관의 구별은 매우 엄격해 고등관은 ‘사족’ 취급을 받았고, 판임관은 일반 평민과 신분상으로는 차이가 없었다. 고등관은 기차를 타더라도 3등칸이 아니라 2등칸 이상을 탔으며, 고등관의 부인은 ‘옥상’이란 일본 칭호가 붙었고, 판임관의 부인은 ‘오카미상’으로 불렸다. 한마디로 특권층이었다. 군수를 포함한 조선인 고등관이야말로 지위나 직무상 일제가 조선을 식민통치하는 데 핵심적으로 가담한 부류였으며, 이들의 협력 없이 일제의 식민통치는 불가능했다."(경향신문.부끄러운 역사 친일'미완의 청산'.박한용. 2010.08.15)

 

비수

 

우리나라 철비 중에 가장 많은 명문을 새긴 비로 생각됩니다.

명문 중에는 10여 년 동안 봉급을 출연 여러 마을 사람들의 구휼하였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병자 중추 丙子 仲秋

종칠위가 일제강점기 벼슬임을 감안하면 1936년입니다.

 

 

행 군수 신 후 병우 청백휼민선정비 行 郡守 愼 侯 炳佑 淸白恤民善政碑

 

신병우(愼炳佑 .1,840~1,897)

"관향이 거창이고 초명은 종구로 자는 하서이다. 호는 단사 또는 어천이라 하였고, 황고5대손으로 서기1840년 헌종경자에 출생하여 서기1870년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헌부감찰 지평 사간원정언 은대 옥당을 거처 좌우부승지 병 예 형 공등 제조참의를 역임하고 서기1884년에 수찬에 올라 갑신정변때 입직으로 고종황제의 파천을 시종 호위하여 무사케 하였다. 이때 병란의 무리가 대궐을 범하여 해치려는 즈음 공은 홀몸으로 탄환과 역도를 막아 끝까지 어가를 호위하니 왕이 충을 장허하였다. 평정후 낙안군수를 특제하였으나 낙향하여 북상창선의 고요하고 천석 맑은 곳에 정대를 지어 귀래와 낙선이라 이름하여 자연을 즐기다가 서기1897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충의를 기려 면암최익현선생의 명이 전한다."(거창군 위천면지)

 

 

비수

 

계사 구월 일 수 癸巳 九月 日 竪

1893년 9월

 

비석을 세운 주체로 추정되는  내서면,외서면의 인물도 새겼습니다.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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