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순천시

순천...동화사 삼층석탑. 부도전

임병기(선과) 2018. 6. 2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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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중정

 

 

기실

이번 남도 순례길의 주목적은 선암사 각황전 철불좌상, 동악산 길상암지 마애부도와 신덕사지 부도 탐방이었다.

그러나, 청아님과 만난 후  예전에 들렸던 순천, 광양의 옛님을 다시 찾는 동선으로 바꾸었다.

 

동화사

동행한 님에게 탑은 고사하고, 입구의 댐과 골프장 밖에 기억에 없다고 했더니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냐며 동선은 이뿐 내비양에게 맡겨두면 된단다. 예전 답사 때 예불 중이어서 대웅전 후벽 관음도를 사진에 담지 못해 기대를 하고 들렸지만, 인연은 억지로 짓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웅전

 

 

 

 

삼층석탑

고려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2층 기단의 삼층석탑이다.

 

 

기단부

동화사 석탑에서 상륜부와 더불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즉, 상하기단부 갑석의 물매가 급하며, 합각마루를 표현하였다.

 

 

지대석

4매 장대석을 엇물림으로 결구하였다.

 

지대석과 하층기단의 안치 간격

잘못 복원한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잘못된 위치를 1989년 해체 복원시 바로 잡은 것인지...

 

하층기단

저석과 중석은 일 석이며, 4매석을 엇물림으로 조합하였고, 양우주와 탱주 1주를 모각하였다.

갑석의 물매는 급하며 내림마루를 표현하였고 상부 각호의 2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상층기단

4매석의 면석은 엇물림 결구이며, 양우주외 탱주 1주를 모각하였다.

갑석 하부에는 부연을 조출하였고, 상부에는 각호각 3단 괴임을 두었다.

갑석 낙수면 물매는는 깊으며, 전각의 반전도 보인다.

 

 

탑신

1매석으로 전층 탑신에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특별한 조식은 없다.

 

 

옥개석

처마선 상부 전각의 반전은 급격하며, 전층 3단 층급받침의 옥개석 하부에는 절수구를 새겼다

낙수면 상부의 물매는 급하나, 처마에 이르서는 얕다.

1단 각형 탑신괴임을 조출하였다.

 

 

상륜부

노반.복발.앙화.3개 보륜.보개만 남아 있다.

방형 노반,

복발은 2조의 황형 돋을대에 4개 화문으로 장식했다.

앙화

방형 앙화 하부에는 2단의 받침이 있고, 상부에는 모서리와 그 사이에 연잎을 세웠으며, 중앙에는 화심을 새겼다.

보륜

3개 보륜 사이에는 윤대를 두었고  팔각  보륜 모서리에는 귀꽃을 표현하였다.

보개

모서리에 귀꽃인 줄 알았는데, 달넘세님이 봉황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작례도 있다고 했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해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다.

 

범부이기에.

 

 

 

 

부도전

예전 답사에서 분명 촬영했는데 사진이 없다.

 

그나저나

진입로 보다 높게 위치한 것 같은데...

 

 

부도(1)

팔각원당형, 고려시대 부도로 추정

 

 

팔각 지대석

상부에 괴임을 조출하였다.

 

하대석

하단에 운문을 조식하였고, 팔각 갑석 아래는 2단 받침을 표현하였다.

상부에는 중대석 괴임아래에 복련의 괴임을 낮게 새겼다.

 

중대석

상대석과 일석으로 낮게 팔각으로 표현하였다.

 

상대석

하단에는 구름문을 새겼고, 1단 괴임 상단에는 앙련을 표현하였으며 중앙에 화심을 피웠다.

팔각 갑석에는 특별한 문양은 없고 2단 탑신 괴임을 조출하였다.

 

 

탑신

팔가의 장방형으로 상촉하관이다.

문비가 있다고 하였으나, 마모되어 불분명하다.

 

 

옥개석

팔각으로 하부에 2단 층급이 낮게 표현되었으며,

낙수면 물매는 급격하고, 내림마루 끝에 귀꽃을 세웠다.

상부에는 2단의 팔각 괴임, 1단의 운문을 표현하였다.

 

상륜

앙련을 새긴 복발, 팔각 보륜, 귀꽃을 새긴 보개와 앙련이 표현한 보주를 올렸다.

 

 

 

부도(2)

옛사진에는 복련을 새긴 대석이 있으나 매몰(?)되어 있다.

송엽국을 걷어 낼수도 없고.

 

 

팔각 탑신,

옥개석 기왓골이 깊고, 상륜은 결실되었다.

 

조선후기 부도로 추정

 

 

부도(3)

석종형 부도로 조선후기~근세작으로 추정된다.

 

 

방형 지대석 모서리에는 용을 앉혔으며, 상부에 홈을 두어 종형 탑신을 올렸다

대좌는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옥개석

사모지붕, 겹처마, 추녀, 암수막새을 표현하였으며, 기왓골이 깊다

상부에는 방형 절병통을 두었으며, 상위부재 유무는 분명하지 않다

 

 

 

부도전 앞 출입금지 팻말 때문에 허겁지겁 둘러보아야 했다

부도전 출입을 금지 할까?

 

2018,06.13

 

 

 

아래는

2009년 7월 29일 글

 

 

 

 

"동화사는 고려시대 초기 문종(文宗)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중국에 유학을 다녀와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각국사는 보살로 있으면서 두타행(頭陀行)을 닦던 중 석장(錫杖)을 짚고 이 지방을 남유(南遊)하다가 낙주(樂州, 현. 낙안)에 이르러 동쪽에 상서로운 구름이 낀 것을 보고 그 산의 이름을 ‘개운(開雲)’이라 하고, 그곳에 대가람을 조영하였다. 그곳의 지형이 오동봉서형(五桐鳳捿形)으로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든다고 하여 ‘동화사(桐華寺)’라 이름 지었고, 그 후 오동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 '낙안군개운산동화사중수기'의 기록에 의하면 대웅전은 1601년(선조34) 신총 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영각 스님에 의해 불상 10여 구가 봉안되었다고 한다. 이후 1662년 (현종 3)에 법홍대사가 불상을 봉안하였다. 1666년(현종 7)에는 삼신대사가 법당을 신축하였고 1696년(숙종 22)에계환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한편 '낙안군개운산동화사중창기'에는 법홍대사가 법당을 창건하였다고 하여 약간 다른 기록을 보이고 있다. 현존하는 대웅전은 조선 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이로 미루어 정확한 창건연도는 알 수 없으나 대웅전은 1662년 법홍대사, 또는 1666년 삼신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나지막한 기단 위에 세워졌다. 기단 정면 중앙에는 계단이 있으며, 계단 양 옆의 소맷돌에는 돌짐승을 새겼다. 대웅전은 아담하면서도 웅장함이 감도는 조선중기 대표적 건물이라 하겠다. 건물구조를 보면 나직한 막돌로 다듬은 기단 위에 원형 주춧돌을 놓고  위에 배흘림의 원형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일반 양식인 창방과 평방을 돌리고 그 상층에 공포를 결구하였는데 첨차살미의 쇠서도 강직하게 내려뻗지 않고 호형을 이루면서 위로 구부러져 올라갔다. 출목수는 외 3출목, 내 4출목으로 매우 화려한 편이다내부는 우물 천장이고  문은 3칸 모두 4분합인데 빗살문으로 되었다. 그리고 창방 밑으로 교창을 두지 않고 그 공간을 토벽으로 처리하였다. 네 귀퉁이 처마밑에 활주를 세웠다." 

 

 

불단 위에는 석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로 각 아미타여래를 모신 흔치 않은 삼존불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목조불상이다. 후벽에는 관음보살 그림이 있으니 우리님들 답사시에 놓치지 말기 바란다. 

 

 

소맷돌 호랑이(?), 장승처럼 해학적이다.

 

 

보이나요?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  이층기단,  상하기단에는 탱주 우주가 보인다. 상기단 갑석에는 3단 몸돌 받침을 두었다. 

탑신은 1층에 비해 2층에서 급격히 체감되었고 몸돌에는 우주만을 새겼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1층 4단, 2층과 3층 3단이며 빗물막이 홈도 보인다. 

 

 

상륜은 잘 보존된 편으로 노반과 복발, 앙화 및 3개의 보륜과 보개가있다. 복발에는  중간에 띠를 돌렸다. 보륜은 귀꽃으로 장식을 더하였다. 신라계 석탑이 약화된 고려시대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은 1989년에 해체 보수를 하였다. 당시 1층 탑신석 상부 중앙에서 원형의 사리공이 확인되었고 그 속에서 사리함을 비롯한 장엄구들이 발견되었다. 사리공은 직경 12.5~13cm, 깊이 12.5cm로 하부는 호형(弧形)을 이루고 있다. 그 속에서 사리 4과, 금동제 3층보탑 1기, 옥구슬 대형 2, 소형 31개, 자수정 1개, 파손된 녹색 사리병 2개, 진주 2알, 섬유질 계통의 물질이 청자 사리함 속에 든 채 출토되었다. 복원시 사리 4과는 원래 위치에 봉안하고 청자 사리함과 장엄구 등은 동화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또한 이때 은판 중수기(重修記)를 써 넣었다고" 한다....인용문은 전통사찰 정보에서 가져왔다.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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