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부안군

부안...내변산 영천사지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20. 3. 1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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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사지 永泉寺址

기실 사지명은 몰랐었지만, 오래전 전북 부안의 향토사학자(?)의 글에서 어수대 미륵불 글을 읽고 미답리스트에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떤 자료에도 관련 글을 찾을 수 없어 포기상태이었는데, 얼마전 우리카페 오분향님의 포스팅을 보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위치를 문의하였으며 오늘 인연지었습니다.

 

오분향님께 깊히 감사드립니다.

 

사지에 이르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산행객이 아닌 답사객에게는 지름길 보다는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야 합니다.특히, 영천사지는 암벽, 가파른 경사로 인해 비지정 등산로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

 

어수대 御水臺

우리나라의 으뜸물 부안댐이 시작되는 곳

또한, 영천사지 뿐만 아니라 내변산 등산의 주된 들머리입니다.

 

어수대(御水臺)를 비롯 왕을 뜻하는 지명들이 내변산 곳곳에 분포되어 있어 관련 글을 찾아보면,  백제 왕자 풍, 신라왕, 신라 경순왕 김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 합니다.

 

다음 블로그 '변산반도국립공원'

"어수대와 관련된 유래가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는 백제부흥운동을 한 의자왕의 아들 풍의 이야기이다.개암사 근처 묘암골에 왕궁터가 있는데 풍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묘암골에서 산맥을 따라 내려오면 어수대로 이어진다. 어수대 바로위는 영천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그절에 왕자 풍이 묵으면서 승려들의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성인봉 9부 능선에는 영천이 있는데 풍왕이 영천의 물을 먹었다하여 어수대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조선 태조가 선계사의 선계폭포에서 수도하면서 성인봉의 경치에 반해 자주 물을 먹었다고 한다. 왕이 된 후에도 영천의 물을 자주 진상했다고 하여 어수대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글의 일부 내용이 제가 오래전 읽었던 내용이었을까요?

주민들에게 채록한 내용으로 추정되며, 영천사 사찰명이 등장합니다.

 

심광세 유변산록(遊邊山錄).1607년 5월

다음에서 찾았지만 출처가 매창전집에서 발췌한 듯 합니다.

"『매창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부안의 명승은 어수대(御水臺)입니다. 요즘 주소로 소개하자면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남선동 서북쪽에 있는 절벽이지요, 매창이 35세 때에 심광세(沈光世, 1577~1624)가 부안현감으로 부임했는데,그는 1607년 1월에 부임하여 산적했던 일들을 처리한 뒤에 5월이 되자 변산 유람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변산록(遊邊山錄)」이라는 기행문에서 어수대에 가는 길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우리 고을에서 20여 리를 가면 변산 아래에 이른다. 산의 왼쪽에는 우슬치(牛膝峙)라는 고개가 있다. 변산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다 이 길을 따라서 간다. 오른쪽으로 대략 몇 리쯤 가면 영은암(靈隱庵)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 사면이 모두 층암절벽인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암자 오른쪽 기슭으로 벼락을 타고 올라가 5~6리쯤 더 가면 석자사(釋慈寺)에 이르는데, 돌길이 가파르고 높은 봉우리가 까마득하다. 절이 높은 산마루에 자리잡았는데, 앞에는 절벽이 치솟았고, 아래로는 땅이 보이지 않는다. 그 위가 넓고 평평해서 몇백명이 앉을 만한데, 이름이 어수대(御水臺)라고 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왕이 이 절에 와서 놀다가 이 언덕 위에 머물러 3년 동안 돌아가지 않았으므로 어수대라 불렸다." 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헌들이 망실되고, 이 같은 이야기는 호사자도 전하는 게 없으니 고증할 길이 없다. "             

 

동국여지지(1660. 반계 유형원 작으로 추정)

다음 블로그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발췌

"왕재암과 석재암은 변산 옥순봉 동쪽에 있다. 사면 석벽이 가파르고 높은데, 그 위는 후미지고 평평하여 하늘이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두절이 서로 잇닿아 있다. 그 동남쪽에는 어수대가 있고,서남쪽에는 어수대가 있다.신라왕이 순행하였다가즐거워 돌아가기를 잊었다.그래서 왕재王在. 석재 釋在. 어수 御水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김서경 송송사상유변산서(送宋士祥遊邊山序).1660년

다음 블로그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발췌

"산자락이 감싸고 물소리 잔잔한 곳이 있으니 이곳이 석재암입니다. 서쪽으로 100보 가면 왕재암이 있고, 동쪽으로 100보 가면 어수대가 있습니다.남쪽에는 왕등암이 있는데 신라 김부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는 고증한 자료는 없습습니다."

 

매창 시비

 

이매창李梅窓(2004년,2012년 글)

http://cafe.daum.net/moonhawje/DjZP/1972

 

천년 옛절에 님은 간데 없고

어수대 빈터만 남아 있네

지난 일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바람에 학이나 불어 볼까나.

 

아래 매창의 한시 등어수대(御水臺)를 해석한 싯구 입니다.

그런데, 시비와 다르게 실제로 천년사, 천년암으로 해석한 글도 있습니다.

저는 달빛에 물든 야사를, 의역을 즐깁니다.

 

등어수대(御水臺)-이매창(李梅窓)

王在千年寺(왕재천년사) : 왕이 왔던 천년사
空餘御水臺(공여어수대) : 쓸쓸히 어수대만 남았구나
往事憑誰問(왕사빙수문) : 지난 일을 누구에게 물으랴
臨風喚鶴來(임풍환학래) : 바람결에 우는 학이 내려 앉는다

 

등천층암(登千層菴)-이매창(李梅窓)
千層隱佇千年寺(천층은저천년사) : 천년을 우두커니 선 천년사
瑞氣祥雲石逕生(서기상운석경생) : 상서로운 기운과 구름 돌길에 서린다
淸磬響沈星月白(청경향침성월백) : 달빛과 별빛 환한데 맑은 경쇠소리 잦아드니
萬山楓葉閙秋聲(만산풍엽료추성) : 온 산에 가득한 단풍잎 가을 소리로 요란하다

 

땀이 배이고 숨이 가파오지만

눈 앞에 그림 같은 광경이 펼져집니다.

오늘 내변산은 온전히 나의 전유물이며,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은 성역입니다.

 

 

 

 

 

 

그녀.산자고

부끄러운 듯, 낙옆속에 몸을 감추고...

 

어수대에서 50여 분

등산로 왼쪽, 제주 양씨 산소와 등진 묘비

여기서 민묘 앞 넓은 산길 200여 미터 내려 갑니다.

 

영천사지(永泉寺址)

여러 기 무덤이 있는 곳이 사지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등산로 제주 양씨 민묘에서 내려오면 무덤군이 보이고, 무덤을 가로질러 향우측으로 통과 합니다.

참고로, 겨울을 제외하고는 고사리 등이 밀집되어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진은 영천사지 부처님 뵙고 돌아나오면서 찍은 무덤군 입니다.

 

축대

뒤쪽으로는 대숲이 있습니다.

 

석불입상. 영천

멀리 부처님이 마중 나오고 계십니다.

 

조선시대 유산록에는 영천사(永泉寺)가 실려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블로그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주민들에게 채록한 내용에는 영천사 이름이 등장합니다.

 

"어수대 바로위는 영천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그절에 왕자 풍이 묵으면서 승려들의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어수대 뒤의 성인봉은 성스런 산신이 살아 붙혀진 이름으로 이곳 석치와우혈(石峙臥牛穴) 자리에 묘를 쓰면 7명 왕비가 나올 자리라고 한다.영천사의 댓돌 자리가 그 장소라고 한다.(중략) 지금도 깨끗하고 차거운 물이 흘러 나오고 있다. 목 없는 미륵불상이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폐사 이후, 어느 시기에 사찰에 모셨던 불상을 영천(永泉) 옆으로 옮기고 절을 세워 영천사로 이름 지은 듯 합니다.

 

위 블로그에 등재된 글에는 부안 내소사 고려 동종은 영천사의 동종이며,영천사를 거쳐 청련암으로 옮긴 후 청련암이 폐사되면서 내소사로 옮긴 것으로 전합니니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안 개암사 지장전 석조지장보살좌상도 청련암에서 조성되었던 보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소사 동종

 

개암사 석조지장보살좌상

 

영천수(永泉水)

불상에 기대어 있어 앞으로 옮겼습니다.

 

영천永泉

사찰에서 사용하였던 샘으로 추정됩니다.

 

샘물 공양, 삼배

그리고, 긴 포옹

 

석불입상

불두가 결실되었고 발목 아래는  묻혀 있으며, 대좌와 광배는 망실되었습니다.

삼도는 불분명하며, 톹견의 법의, 파상문 습의가 발목까지 흘러 내렸습니다.

 

수인

얼핏 수인을 법의 자락에 감춘 듯 보였습니다.

11세기에 임실, 부안.남원 등 전북 지방에 많이 분포된 불상 작례입니다.

하지만,약기를 두손으로 든 약사여래 입상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고려시대 불상은 분명해보이며, 채록된 자료에 따르면 민초들은 미륵불로 봉안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수인을 감춘 부안 용화사 석불입상, 곡성 죽산리 석불입상 법의와  비교 바랍니다.

 

부안.용화사 석불입상

http://cafe.daum.net/moonhawje/DjZP/1975

 

곡성.죽산리 석불입상

http://cafe.daum.net/moonhawje/DjZP/2448

 

정면

 

측면

 

 

수인

 

발목까지 흘러내린 파상문 습의

 

 

 

 

신록의 오월,

만산홍엽의 만추에도 찾고 싶지만...

 

아쉬워

아쉬워

못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사지를 벗어 나서도

풍탁음이 산바람에 실려 오고, 낭낭한 염불송이 산자락을 휘감아 돌아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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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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