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세거지 인흥사지에 위치한 마을 입니다. 우리집과 20여분 거리 넓은 주차장, 문익점 동상. 목화밭. 연못... 몇년 사이에 마을 환경이 너무 바뀌어 낯설 정도 입니다. 나이 탓인지 일행을 피해 그나마 옛모습을 간직한 삼층석탑으로 발길 옮깁니다. 인흥사 창건과 폐사에 관한 사적은 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북대학교 교정으로 이건된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판단하면 9세기에 사찰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의 행장에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존속하였으며, 조선 후기 1861년 김정호의 동여도東輿圖에도 실려있다고 합니다.그러나. 폐사에 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연선사 행장 (전략) 1227년에는 승과의 최고 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이른바 장원급제에 해당하는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당시 스물두살의 젊은이였던 일연스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대구의 비슬산 보당암(琵瑟山 寶幢庵)으로 옮겨 수행에 몰두하기를 계속하였다.
이후 9년이 지난 1236년에 이르러 몽고의 침입이 남방에까지 미치게 되자, 스님은 중생들의 병화를 덜어주고자 문수(文殊)의 오자주(五字呪)를 염하면서 감응을 빌었다. 문득 문수보살이 현신(現身)하여 "무주(無住)에 가 있다가, 다음해 여름이 되면 다시 이 산의 묘문암(妙門庵)에 거처하라."고 하셨다. 이에 곧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곳에서 항상 "生界不減 佛界不增(생계, 즉 현상세계는 줄지 아니하고 불계, 즉 본질적인 세계는 늘지 아니한다.)"는 구절을 참구(參究)하다가 깨달음을 얻어서 "오늘 곧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가 작은 털끝만큼의 거리낌도 없음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 해에 나라에서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僧階)를 내렸다. 그 뒤 1246년 다시 선사(禪師)를 더하였다. 1264년 경상북도 영일군 운제산에 있던 오어사(吾魚寺)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에 비슬산 인홍사(仁弘寺)의 만회(萬恢)가 그 주석을 양보하였으므로 인홍사 주지가 되어 후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1268년에는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개경에 초청하여 운해사(雲海寺)에서 대장낙성회향법회(大藏落成廻向法會)를 베풀었던 때, 일연스님으로 하여금 그 법회를 주관하게 하였다. 이때 일연스님은 그의 물 흐르는 듯한 강론과 설법으로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11년 후인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하고 경내를 확장한 후 조정에 아뢰자, 원종은 사액(賜額)을 내려 인흥사(仁興社)로 바꿨으며 친필로 제액(題額)을 써서 하사하였다. 이때, 비슬산 동쪽 기슭의 용천사(湧泉寺)를 중창하고 불일사(佛日社)로 삼았는데, 그의 『불일결사문(佛日結社文)』은 이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1277년 충렬왕 3년부터 일연스님은 왕의 명에 따라 다시 청도의 운문산(雲門山) 운문사(雲門寺)로 옮겨가서 그 곳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일연스님은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다. 이 절은 가지산파의 학일(學一)이 명성을 날린 곳이기도 했다.(후략) 인흥사지 삼층석탑.통일신라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 인흥사지 삼층석탑 지대석 여러매의 부재 기단부 하층기단 은 낮은 저석과 중석이 일석이고, 중석에는 2개 안상이 조식되었으며, 물매가 있고 내림마루를 새긴 기단갑석 상부에는 3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상층기단 엇물림으로 결구된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었습니다. 후보물이 많은 갑석 하부에는 부연을 새겼으며 상부에는 갑석위에 굄을 두었습니다. 그 위에 하부가 오목한 별석 굄을 올렸으며 상부에 2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탑신석에 비해 굄이 높은 것은 높은 기단부와 비례를 맞추기 위한 자구책이었을까요? 초층탑신석 우주가 모각되었고, 3중선으로 문비를 새기고 자물쇠를 표현하였지만 박락이 심해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초층 옥개석 물매는 급하며 상부에 2단 굄 조출, 하부에는 4단 층급받침과 절수구를 표현하였습니다. 옥개석 위 부재는 2층 탑신석으로 추정되며, 양우주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석탑 옆에 방치된 옥개석은 2층 옥개석으로 추정 되며, 그 옆의 층급받침이 있는 옥개석 조각은 3층 옥개석편 으로 추정 됩니다. 고려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생각됩니다. 지대석 하층기단 중석, 갑석 중석 안상 각면에 2개. 하층기단 갑석 상부 내림마루, 약간의 물매.3단 굄 상층기단 중석 엇물림 결구, 탱주 1주. 우주 모각 상층기단갑석, 별석 굄.초층 탑신석.초층 옥개석. 탑신석 탑신굄에 비해 탑신석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별석 탑신굄 아래로 내곡, 상부에 굄 조출 초층 탑신석 우주 모각. 3문비를 세겹으로 표현.자물쇠는 박락이 심합니다. 초층 옥개석 물매 급하며, 4단 층급.절수구 표현, 맨위 부재는 양우주가 모각된 탑신석으로 추정 됩니다. 안태고향을 지키며 이렇게 복원된 것이 다행입니다. 일연스님을 기억하시지예? 석탑옆 옥개석과 옥개석 조각 옥개석 조각 예전에는 없었는데, 층급받침이 뚜렷합니다. 인흥사지 석탑 경북대학교 이건한 석탑은 9세기경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사지에 남아 있는 석탑은 그 보다 늦은 고려전기 석탑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흥사지에는 2기 석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익점상을 피헸는데 잡혔습니다. 제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0.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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