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달성군

대구...남지장사 부도

임병기(선과) 2019. 10. 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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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장사
지난 글에서 두어 차례 언급했듯이 남지장사는 영원히 각인된 추억의 절집입니다.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지만 나에게는 1977년 가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청도 부도 답사 동행인들과 함께했습니다.




부도전
남지장사에서 청련암 가는 방향 좌측에 위치


2기 모두 당호를 새기지 않았지만 근거없는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즉, 경내 송덕비를 근거로 부도 주인공을 추적해보겠습니다.
송덕비를 부도비로 생각하는 정확한 자료는 없으며 개인적인 추정입니다.




범종각 옆 비석군


(좌)경운당대선사휘영화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중)모계당대선사휘취례송덕비 慕溪堂大禪師諱取礼頌德碑.
(우)운계당대선사휘축연송덕비 雲溪堂大禪師諱竺演頌德碑.


단순한 송덕비 일까요?
공부가 부족하여 해석이 어렵지만 내용이 송덕비보다는 행장 같아 부도비로 추정하며, 주인공을 유추하였습니다 


(한문은 한국의 사찰문화재, 디지털달성문화대전을 참조하였습니다)





2014년 사진

두 기 부도는 운계당  및 경운당 부도로 추정합니다





운계당대선사휘축연송덕비 雲溪堂大禪師諱竺演頌德碑

 
雲溪堂大禪師諱竺演頌德碑
西山十一  霜峰八卋 


(한국의 사찰문화재)
寒雲淸風 嗄慕中建 鮮影餘陰 更生二枝 粤惟我師 性本慷慨 旁心旁力 有功有德 石回可語俾傳千北


(디지털달성문화대전)

한운청풍환모중건(寒雲淸風 喚慕中建) 한운 스님의 맑은 기풍, 환모 스님이 중간에 세우셨네
해영여음갱생이지(解影餘陰 更生二枝) 혜영 스님의 넉넉한 음덕이 다시 두 가지가 더 생겨났네
월유아사성본강개(粤惟我師性本慷慨) 아아 옛적 우리 대사께서는 성품이 본래 강직하고 기개가 있으셨네

노심노력유공유덕(勞心勞力有功有德) 마음과 몸으로 애쓰고 노력하여 공덕을 이루셨네] 
석면가어비전천조(石面可語俾傳千兆) 비석에 기록할 만하니 천억 년 후까지 전하리라]

두 자료에 일부 한문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비문에는
서산 십일 西山十一, 상강 8세霜峰八卋  명문도 있습니다.
서산대사 11대손. 상강 스님의 8세손이라고 이해됩니다




상원갑자신유3월일립법제자 동봉휘 윤정
上元甲辛酉三月日立法弟東峯諱允定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1921년, 디지털달성문화대전에는 1801년으로 추정하였습니다




경운당대선사휘영화선덕비
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한국의 사찰문화재)
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頂山爲重 惟師之學 曺溪尤淸 惟師之德 常誦般若 明了自性 自性叅究 不退菩提 修㵛伽藍 不惟不勤 石片可記 俾代流通


(디지털달성문화대전)
경운당 대선사 휘 미화 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未化善德碑)
정산위중유사지학(頂山爲重惟師之學) 최정산이 육중하니 대사의 학문과 같고
조계우청유사지덕(曹溪尤淸惟師之德) 조계수가 더욱 맑으니 대사의 덕행과 같네
상송반야명료자성(常誦般若明了自性) 항상 반야경을 읽어서 자성을 밝히고
자성참구불퇴보리(自性叅究不退菩提) 자성을 참구하니 불퇴전의 보리심이라
수선가람불유불근(修繕伽藍不惟不勤) 가람을 고쳐 수리하니 부지런하지 아니함이 없으셨네
편석가기비대유통(片石可記俾代流通) 한 조각 돌에 기록하여 대대로 이 사실 전하리라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휘를 영화. 디지털달성문화대전에는 미화로 표기하였습니다





상원갑 신유3월 일 제자 박진명 성윤 립

上元甲 辛酉三月日 弟子 朴普明 性允立.
1801년




부도전 2기 부도는 1801년에 세운 운계당과 경운당 부도로 추정합니다





모계당대선사휘취례송덕비 慕溪堂大禪師諱取礼頌德碑

 
(한국의 사찰문화재)
慕溪堂大禪師諱取礼頌德碑
運逢陽九 觸目皆非 金堂毀壊 玉毫潜輝 滿園蒺蓼 剪去阿誰 粤維我師 風來卓錫 鼓舌數年 談笑而復 片石可語 俾壽千億 
 
(디지털안동문화대전)
모계당 대선사 휘 취찰 송덕비(慕溪堂大禪師諱取札頌德碑)
운봉양구촉목개비(運逢陽九觸目皆非) 전쟁의 재앙이 다가오는 운세를 만나니, 눈에 뜨는 모든 것이 다 잘못 되었네
금당훼괴옥호잠휘(金堂毁壞玉毫潛輝) 부처님의 법당은 훼손되어 무너지고, 부처님의 옥호는 빛이 사라졌도다
만원질려전거아수(滿園蒺藜剪去阿誰) 마당에는 가득히 가시나무 자랐으니, 이것을 잘라 없앨 이 그 누구란 말인가?
월유아사풍래탁석(粤惟我師風來卓錫) 아아 지난 날 우리 대사께서는 바람 따라 오셔서 석장(錫杖)을 높이 세우셨네
고설수년담소이복(鼓舌數年談笑而復) 몇 년에 걸쳐서 예기하고 설득하여, 이야기하고 웃으며 절을 다시 지으셨네
편석가어비수천억(片石可語俾壽千億) 한 조각 비석이 말을 할 수 있으니, 억천년 이 일을 전하게 하리라


취례스님은 1765년의 한계선사향화록 현판(寒溪先師香火錄懸板)에도 등장합니다.
文逸 曇湜 泄湛 朋印 海淨 司一 取札 䝺鏡 性俊





가경17년임신십이월일 嘉慶十七年壬申十二月日.1812


취례스님 부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경내 송덕비를 부도비로 추정한다면 부도도 있었을 겁니다.




(출처/한국의 사찰문화재)


2007년 발간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 등재된 부도 입니다.
현재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탑신석에 범어도 보이며,대좌 안상 속에 문양도 특이합니다.
물론 이 부도가 취례스님 부도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부도 옥개석
남지장사경내, 산신각 뒤편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넘어 갈 것을
괜히 마음만 무겁습니다.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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