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 나홀로 즐기기에는 최적의 답사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즐거움 이전에 안전이 염려되어 도반과 동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또르님. 사처포님 하룻만에 보은 속리산. 영동 천태산. 대전 보문산 3곳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넉넉하게 다녀왔습니다.
그 이면에는 본속리암지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신 오분향님. 하루전 보문사지를 사답하여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준 대전의 박중혁군의 숨은 조력이 있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감사 말씀 드립니다.
"보문사는 창건시기를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지리지의 공주목 부분과 여러 문집 등에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문헌으로 볼 때 보문사는 현재 ‘普文寺’로 지정표기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寶文寺’, ‘普門寺’ 등으로도 표기되음을 알 수 있으며, 고지도에는 주로 ‘普門寺’로 표기되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조선전기 문헌에서는 보문사의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상당히 많은 자료에서 사명이 확인된다. 그 중 權以鎭(1668~1734)의 문집 『有懷堂集』에는 권이진이 보문사에 유숙할 때 지은 시가 수록되어 있는 반면, (1769~1847)의 『三守遺稿』에는 ‘보문사에 칩용루란 누각이 있었는데 심히 크고 넓었으나, 지금은 헐려 농민이 밭으로 경작하였고, 철불이 밭 가운데 서 있었다.’는 내용이 있어 불과 1세기 만에 사찰이 급격히 쇠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보문산 북쪽 5㎞ 지점에 있는 道山書院(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의 내력을 기록한 『道山書院誌』에는 丙辰과 丁巳년 사이에 서원을 건립할 때 보문사, 동학사, 고산사,율사 등에서 승군 800여 명을 내어 서원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으로만 본다면 당시 보문사는 인근 사찰들과 함께 800여 명의 승군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세가 큰 사찰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 『伽藍考』를 비롯한 『輿地圖書』, 『忠淸道邑誌』 「公州牧邑誌」 등 18세기 중반 기록에는 주 동쪽 80리 보문산에 사찰이 있다고 하였으며, 18세기 후반 『梵宇攷』에는 사명만 적혀있고 위치나 존속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19세기의 읍지류인 『公山誌』(1859)와 『湖西邑誌』(1871) 「公州誌」에 모두 “今無”로 기록되었으므로 이 시기에 사찰이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29년에 발행한 『朝鮮裏輿勝覽』 대전군 사찰 조에 ‘普門庵이 보문산 동쪽 부사리에 있다.’라고 기술된 것으로 보아 보문사가 폐사된 후 작은 암자가 다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록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한국사찰사전』 보문사 항목에 따르면 『公州邑誌』에 “普門寺 今屬大田郡 廢止己久”라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후기 고지도에는 1750년대 초에 제작된 《海東地圖》를 비롯해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廣輿圖》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도에서 사명을 확인할 수 있다."(한국의 사지)
수조 금당지 아래 사역
괘불지주
육안으로 구분은 어렵지만 명문이 있습니다.
강삼십팔년 기묘 康三十八年 己卯 화주 옥순 化主 玉淳 석수 이외동 石手 李外同
장대석
수조 시멘트
수조
맷돌
그나저나 당간지주를 놓쳐 다시 다녀와야겠습니다.
2019.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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