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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예산군

예산...덕숭산 수덕사

by 임병기(선과) 2019.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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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없는 2004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cafe.daum.net/moonhawje/DjZP/181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1903~1981)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禪院

소전 素筌 손재형 孫在馨 

 

 

부도전

 

 

원담(圓潭眞性)스님 부도

덕숭총림 3대 방장

"1926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난 원담 대종사는 12살 되던 1937년 수덕사로 입산했으며 천장사와 전월사 등에서 만공스님을 시봉하며 5년 여 동안 행자생활을 한 이후 16세 되던 1941년 벽초스님을 은사로, 만공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41년 비구계를 수지했습니다. 원담 대종사는 만공선사로부터 전법게를 받았으며, 86년 혜암ㆍ벽초스님에 이어 덕숭총림 3대 방장에 올라 덕숭가풍의 선맥을 이은 선지식으로 후학들에게 추앙받아 오다 지난 3월 18일 원적에 들었습니다."


 

 

수덕교

 

 

수덕여관

(위 2004년 글 참조)

 

 

이응로 바위 글씨

(위 2004년 글 참조) 

 

 

 

1969.이응노

 

 

 

 

1969.고암

 

 

암각문

(위 2004년 글 참조) 

 

 

수덕여관 우물

 

 

 

감로당甘露堂

수덕여관 별채?

 

 

금강문金剛門

 

 

금강문金剛門

설정 송원(雪靖 松原)스님

수덕사 4대 방장

1955년 수덕사에서 원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수덕사 주지,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2006년부터 서울 화계사 회주·덕숭총림 수좌 소임을 보고 있다.

 

 

원통보전

 

 

사천왕문四天王門

법현法顯스님

"2010년 12월 법랍 58년, 세수 71세로 열반한 법현스님은 지난 1954년 수덕사에서 원담스님을 은사로 혜욱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7년 수덕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망월사 천중선원을 시작으로 정혜사 등에서 수행정진을 했으며, 홍성 영봉암 주지를 역임했으며, 수덕사 장학기금 마련을 위한 서화전을 서울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개최하는 등 수차례 수묵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칠층석탑

1931년 만공스님이 건립


기단부가 없는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석탑입니다.

다만, 다른 석탑과 달리 옥개석 층급받침이 있고, 보주만 표현하는 다른 석탑 상륜부와 다릅니다.


기단 없이 방형 지대석위에 탑신석, 옥개석을 조적 후 상륜부를 올렸습니다.

초층 탑신석은 양우주를 모각한 상위층 탑신석과 다르게 액처럼 처리하였습니다. 안정감이 결여된 석탑의 시각적 보완책인지 궁금합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전각의 반전은 급하며, 깊게 2단 층급을 두었으며, 양각으로 추녀를 표현했습니다.

 


초층 탑신석. 옥개석

 


탑신부

 


상륜부

 

 

 


배례석?

혹 초층 탑신석은 아니었을까요?

 


부도

 

 

 

 

범종각


梵鍾閣

원담스님 글씨

 


법고각

 


법고각 法鼓閣

원담스님 글씨

 

 

세계일화 世界一花

근화필(槿花筆)
만공선사가 무궁화꽃에 먹을 찌어 쓴 글

 

 

 

삼층석탑

2004년 답사기에거 안내문 오류를 지적하였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엉터리 안내문이 버젓히 남아 있었습니다.

덕숭총림의 얼굴인데...

(2004년 글 참조)


 


지대석

하층기단

중석과 저서가 일석, 탱주 1주, 우주를 모각

갑석 상부에 물매가 있고 내림마루를 표현하였으며, 2단 굄이 조출

 


하층 기단 갑석 상부

 


상층기단 중석

감입식 결구, 탱주 1주. 우주 모각


갑석

하부에 부연, 상부에 2단 굄

 


상층기단 갑석

 


상층기단 갑석 굄

 


탑신석

우주 모각


옥개석

전층 4단 층급받침인데...

 


상륜부

3층 옥개석과 노반이 일석

(안내문에는 상륜부 설명도 잘 못 되어 있었는데...)

 

 

 


수덕사 대웅전

나의 글은 사족일테고.


 

 

 


수덕사 목조삼존불상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에서는 2003년 개금할 때 많은 양의 복장품이 확인되었다.
불상의 복장유물로는 조성발원문을 비롯한 <법화경> 등 전적류와 후령통, 오색실, 복식 등이 있다.

세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불상의 조성 배경과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불상조성기에는 먼저 봉안 장소와 불상의 명칭이 보인다. 이에 따르면 석가여래상과 약사여래상은 풍국사 대웅전에, 아미타여래상은 풍국사 보광전에 모셔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세 불상이 한 세트로 조성되었다는 것은 약사여래상과 아미타여래상의 크기가 같고, 좌우대칭을 이루는 수인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불상의 원 봉안 사찰이었던 ‘만행산 풍국사’와 수덕사로 옮겨지기 전 봉안처였던 ‘만행산 귀정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풍국사는 아마도 ‘풍곡사(風谷寺)’였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남원의 읍지인 <용성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용성지>에는 풍곡사는 만행산에 있으며 법당, 정루, 선당, 승당, 관음전, 상실, 부도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1752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는 <용성지>의 기록으로 보아 풍국사에서 귀정사로 불상이 옮겨진 것은 18세기 이후로 여겨진다.

석가여래상의 발원문에는 불상 조성의 목적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어려서 출가하여 삼교(三敎)에 통달하고 청정한 수행으로 항상 정법을 설해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마음 전하기를 가섭존자와 같이 하고, 부처님 말씀 전하기를 아난존자와 같이하며, 대자대비는 관세음보살처럼 하며, 큰 서원과 원력은 지장보살과 같이 지녀, 삼악도를 모두 없애고자 합니다. 모두 정토에 왕생해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함께 깨달음을 얻어 세상이 다할 때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 조성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시주물의 종류이다.
이 가운데 대좌 시주자를 통해서는 불상 조성 때 대좌까지 함께 조성되었던 사실을, 세 불상의 백호 시주자를 통해서는 보석으로 백호를 별도로 삽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특히 부처님의 얼굴을 개금하는데 시주한 면금(面金) 시주자가 있다.

세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수연스님, 영철스님, 성민스님, 사인스님, 신관스님, 명혜스님, 인종스님 등 모두 7명이다.
수조각승 수연스님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유파의 수장으로 수연파 양식의 계승자인 영철스님을 거쳐 17세기 후반에는 운혜스님에 이르러 수연파 불상 양식은 꽃을 피운다.

그는 1615년 김제 금산사의 칠성각 독성상 조성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한 이후 1618년 서천 봉서사 아미타삼존상 조성부터 1639년 수덕사 삼세불상까지 수조각승로서 자신의 유파를 이끌었다.수연스님은 전북·충남·경기도의 서쪽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작품은 서천 봉서사 아미타삼존상(1618년), 강화 전등사 대웅전 삼세불상(1623년), 나주 다보사 석가삼존상 및 16나한상(1625년), 익산 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삼존상과 명부 권속(1634년), 강화 전등사 지장보살삼존상과 명부 권속(1636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1639년) 등이다.

수덕사 삼세불상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등을 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숙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시대 부처님이 이처럼 등을 굽히고 있는 것은 억불숭유 정책에서 핍박받는 불교계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조선 후기 2층 불전과 높은 불단에 부처님을 봉안하면서 예배자는 아래에서 위로 부처님을 올려봐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도의 불상을 조성한 것이다.

수연스님이 조성한 불상의 특징은 먼저 상호에 잘 나타나 있다. 눈썹에서 위로 한참 올라간 머리칼 표현은 이마를 더욱 넓게 보이게 한다. 두 귀가 턱 밑까지 내려와 다소 긴 목을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을 준다. 머리와 육계를 구분하지 않고 중앙에는 타원형의 중앙계주를, 정상에는 삼각형의 정상계주를 표현하고 있다.

1635년에 무염스님이 조성한 영광 불갑사 삼세불상과 1639년에 청헌스님이 조성한 하동 쌍계사 석가불상과 비교해 상체가 다소 세장한 느낌을 준다. 또한 무릎 아래 파도처럼 물결치는 끝단의 옷 주름 표현은 수연파의 큰 특징이다. 중앙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 우견편단을 하고 좌우 두 불상이 통견을 취한 것은 이 시대 다른 불상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상은 17세기 전반기 대표적인 불교조각이면서 조각승 수연스님의 기년명 마지막 작품으로 수연파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639년에 남원 만행산 풍국사에서 조성되어 인근에 있던 귀정사로 이안되었으며, 1938년에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겨진 사실을 통해 불상의 이동을 고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불상의 이동이 근대의 고승 만공스님에 의한 수덕사 중창 불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된다. [불교신문3343호/2017년11월8일자]

 


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수인을 제외하고는 본존불과 동일 합니다.



아미타여래

약사여래와  두 손의 위치만 다릅니다.

 


대웅전 옆  탑신석

 

 

 

명부전



명부전 冥府殿

원담스님 글씨 입니다.

 


목조지장보살좌상

목각 후불도

 

 

성재 惺齋 김태석金台錫(1,875~1.953)

 


수덕사 修德寺

불기이천구백칠십이년 춘 佛紀二千九百七十二 春. 1945년

칠십이수 七十二  叟. 칠십이세 노인

성재 김태석 惺齋 金台錫

 


오늘도

정혜사, 만공탑,관음보살을 뵙지 못 했습니다.

4일 간 답사 여독이 밀려와 그로키가 된 몸이어서 포기 하였습니다.

인연은 다가 오는 것이기에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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