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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서산시

서산...가야산 보현사지 석탑부재

by 임병기(선과) 2019.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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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지

접근하는 길(보현동길 195-18)은 쉽지만 사지에는 대나무 군락이 밀집되어 있어 답사 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저는 대나무 숲 속은 엄두도 못 내고 사지 가장자리의 3단 석축 그리고 상단 금당지로 추정되는 구역의 석탑 옥개석만 확인하였습니다.

 

"보현사는 창건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나,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상왕산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619년에 편찬한 서산군 읍지인 『湖山綠』에는 ‘지금은 폐사되고 오직 법당만이 높직하게 홀로 서 있으며, 전당에 한 칸짜리 방이 있어서 스님이 수호하고 있고, 푸른 등나무에 고목만 서 있으며, 다른 인적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철환의 『象山三昧』에는 1753년 11월 20일에 보현사로 옮겼다는 내용과 ‘불전에 철을 녹여 만든 것이 약사여래상인데, 이것이 다 침식이 되었고, 티끌에 묻혀서 연대를 알 수 없다.’는 기록이 실려있다.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볼 때 보현사는 18세기 경까지는 명맥을 유지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한국의 사지)

 

창건년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지에 유존하는 석탑재, 철불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더불어 상왕산을 중심으로 동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추정되는 문수사의 금동 여래좌상 복장에서 고려 말에 조성되었다는 유물이 발견되어 창건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됩니다.

 

 

하단석축

위 주소 민가 앞에 주차. 철펜스가 있는 사유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유지 민가에는 소리만 요란한 멍보살이 있으며, 주인이 나와 출입 목적을 캐물었습니다.


민가 뒤편으로 난 좁은 산길을 10여분 오르면 대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지고 하단 석축이 보입니다.

앞서 다녀온 노랑나비님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우회 하여 중단 구역으로 올라 갑니다.


 

중단 구역 석축

교란되었지만 제법 긴 석축이 남아 있습니다.


 

중단 석축

역시 우회 합니다.


 

상단 석축

아래에서 보면 마치 철옹성 느낌이었습니다.



상단 석축

금당지로 추정되는  상단구역에는 와편이 산포하고 대숲속에는 돌무지와 옥개석 치석재가 널부러져 있습니다.

 

 

기와조각


 

옥개석

뒤집힌 상태입니다.


각형 4단 층급받침, 절수구는 생략되었습니다.


 

 

 


사진이 엉망입니다.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전각의 반전이 있으며 1단(?) 굄이 있습니다.

 


치석재

매물되어 용도 불명 입니다.

 


치석재

한국의 사지에는 석탑재로 기록되어 있으나 매몰되어 확인 못 했습니다.

 

 


제가 보현사지에 주목하는 또다른 까닭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보원사지 철불좌상,(전)보원사지 철불좌상 때문이며, 개인적으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 단초는 이철환의 상산삼매 입니다.

1753년 이철환의 상산삼매(象山三昧)에는 "1753년 11월 20일에 보현사로 옮겼다는 내용과 ‘불전에 철을 녹여 만든 것이 약사여래상인데, 이것이 다 침식이 되었고, 티끌에 묻혀서 연대를 알 수 없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보원사지 철불좌상

보원사지에서 반출된 자료가 전하고 있어 보원사지의 철불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전)보원사지 철불좌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계십니다.


 

(전)보원사지 철불좌상

 

이순우님은 다음카페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에서 (전)보원사지 철불좌상은 보원사지 출토가 아니며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에서 출토된 철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카페에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혹, 이불상이 상산삼매에 언급된 보현사지에 있었던 철불 좌상은 아니었까요?

오른쪽 손목의 형태로 보아 약기를 든 수인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1917년 보원사지 철불좌상을 한양으로 옮겼던 루트를 이용하였다면 쉽게 이운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보현사지를 (전)보원사지로 오기했다는 가능성은 설득력이 부족하여 확신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사지는 접근이 불가하여 전체적인 배치를 확인 할 수 없으며, 상단구역의 일부만 탐방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아울러, 사지에 있었다는 철조약사여래좌상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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