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자녀 혼사 후 잠시 들렀습니다. 수도 서울답게 많은 참배객 때문에 혼란스러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입구로 부터 법왕루까지 연꽃을 식재하였습니다
비림 남호대율사비(南湖大律師碑), 봉은사주지 나청호대선사 수해구제공덕비(奉恩寺住持羅晴湖大禪師水害救濟功德碑)을 비롯하여 많은 비석이 있습니다.
남호대율사비(南湖大律師碑) 남호 영기(南湖永奇, 1820~1872)스님은 판전의 화엄경판을 판각한 스님으로,1855년 봉은사에서 『화엄경』(華嚴經) 판각 불사를 하였으며, 현재 판전에 보관중인 판각이 스님의 작품 입니다
수해구제공덕비(奉恩寺住持羅晴湖大禪師水害救濟功德碑) 1925년 한강을축년 대홍수에 봉은사 주지었던던 나청호(羅晴湖)스님은 한강물에 떠내려가는 708명을 구했다는 기록이 새겨진 비 입니다. 비문의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 1871~1936)의 필적이라고 합니다.
봉은사奉恩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여 견성사(見性寺)라 하였다. 그 뒤 고려시대의 사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498년(연산군 4)에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을 위하여 능의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라고 개칭하였다. 1501년(연산군 7) 나라에서 절에 왕패(王牌)를 하사하였다.
1551년(명종 6) 이 절을 선종(禪宗)의 수사찰(首寺刹)로, 광릉의 봉선사(奉先寺)는 교종의 수사찰로 삼았으며, 보우(普雨)를 주지로 삼아 불교를 중흥하는 중심도량이 되게 하였다. 보우는 1562년에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선릉(宣陵) 동쪽으로 옮기고 절을 현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1563년(명종 18) 절에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사패(祠牌)를 봉안하기 위하여 강선전(降仙殿)을 세웠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사찰은 병화로 소실되었고, 1637년(인조 15)에 경림(敬林)과 벽암(碧巖)이 모연(募緣)하여 중건하였다. 1665년(현종 6)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692년(숙종 18)에 왕실에서 시주하여 석가모니불·아미타여래·약사여래 등의 삼존불상을 안치하였고, 1702년(숙종 28) 왕이 절에 전백(錢帛)을 하사하여 중건을 완료하였다.
1747년(영조 23)에는 순찰사 남태저(南泰著)의 주청으로 조정에서 쌀과 돈, 목재 등을 내리고, 1757년(영조 33)에 상헌(尙軒)·영옥(穎玉)·선욱(善旭) 등이 힘을 모아 중수하였다.
1789년(정조 13) 조정의 지시에 따라 선욱·포념(抱念) 등이 세자각(世子閣)·대웅전·명부전·향각전·관응당(管應堂) 및 각 방사를 보수하였고, 1790년에 전국 사찰의 승풍과 규율을 감독하는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강원도와 경기도의 사찰 일부를 관할하였다. 1824년(순조 24)에는 경성(鏡星)·한영(漢映)·승준(勝俊) 등이 세자각을 비롯하여 모든 당우들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의 31본산시대에는 경성 일원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당시의 가람으로는 대웅보전(大雄寶殿)·대향각(大香閣)·화엄경판전(華嚴經板殿)·선원(禪院)·영산전(靈山殿)·심검당(尋劒堂)·관응당·천왕전(天王殿)·강선전(降仙殿)·독성각(獨聖閣) 등이 있었다. 1939년 실화로 대웅전, 동서의 승당과 진여문, 만세루, 창고 등이 소실되었으며, 1941년 주지 도평(道平)이 대웅전과 동서의 양 승당을, 1942년 영산전·북극전(北極殿)·만세루(萬歲樓)·천왕문(天王門) 등을 새로 세웠다.
1943년 절의 서쪽에 있던 종남산(終南山) 명성암(明性庵)을 이곳으로 이건(移建)하였고, 1972년동국역경원의 역장(譯場:경전번역소)이 이곳에 들어왔다. 1975년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삼층석탑과 석등을 조성하였으며, 1982년에 진여문과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96년에 미륵대불을 조성하였으며, 1997년 천왕문과 법왕루(法王樓)가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절에 소장되어 있는 국가지정 문화재로는 보물 제321호로 지정된 지정4년명고려청동누은향로가 있다. 이 향로에는 고려 충혜왕 5년 (1344)의 명문(銘文)이 있는 고려청동누은향로(高麗靑銅縷銀香爐)로, 일명 오동향로(烏銅香爐)라고도 한다. 사명당(四溟堂)이 쓰던 것으로,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은 추사김정희(金正喜)의 글씨이며, ‘판전(板殿)’ 편액은 김정희가 죽기 3일 전에 쓴 것이다. 절의 판전에는 『화엄경소』를 비롯한 많은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는데 현재 총 16부 1,480매에 달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대웅전 현판 추사의 진관사(津寬寺) 대웅전 현판 글씨를 모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괘불대 매년 9월 9일 괘불을 걸고 천도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목조석가여래삼존불상 (아미타여래.석가.약사여래) 2014년 3월 보물 1819호로 지정 1651년 조각승 승일(勝一)이 9명의 보조 조각승들을 이끌고 제작한 삼불상입니다 본존불은 1765년의 개금발원문(改金發願文)을 통해 1689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 내 수미단 위에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과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은 146.5㎝, 아미타불은 117㎝, 약사불은 115㎝ 규모이다. 석가모니불은 결가부좌한 자세에 대의 안쪽에 편삼(偏衫)을 걸치지 않은 변형 통견(變形通肩)으로 입고 있다. 전체적으로 머리와 신체 비율은 적당한 편이지만, 1651년에 제작된 협시불에 비하여 머리가 약간 큰 편이다. 타원형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정수리에 원통형의 정상 계주(頂上髻珠)가 있어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래는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옮겨 왔습니다. "아미타여래 좌상은 전체적으로 본존과 착의법이 유사하고,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에 의하면 1651년에 승일 등의 조각승이 제작하였다. 타원형의 머리 형태에 끝이 뾰족한 나발들과 원통형의 정상 계주, 반원형의 중앙 계주를 표현하였다.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은 본존보다 더 인자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앞으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 자락은 가장 끝자락이 반원형을 이루고 나머지 대의 자락은 본존과 같이 처리되었다. 약사불은 전체적인 신체 비율, 얼굴 표정, 수인, 착의법 등이 아미타여래와 동일하다. 본존과 협시불은 제작 시기와 작가가 달라 얼굴의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차이가 난다.
조각승 승일 아미타여래상은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에 “순치 팔년 신묘 칠월 십구일 …… 경기좌도 광주부 지서면 수도산 봉은사(順治八年辛卯七月十九日 …… 京畿左道廣州府地西面修道山奉恩寺)”라고 기록되어 1651년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수화승 승일, 이환, 설의(雪儀), 성조(性照), 도잠(道岑), 뇌일(雷日), 명눌(明訥), 삼응(三應), 초언(楚彦), 계철(戒哲) 등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1765년 개금한 발원문에 의하면 1689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석가모니불을 새로 조성하여 대광보전에 아미타불과 약사불과 같이 봉안하였다고 한다.
삼세불화
"1892년(고종 29) 대웅전 후불탱화로 그린 그림이다.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과 권속을 그린 그림으로 삼불회도, 삼세불(三世佛)탱, 삼신불(三身佛)탱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림 아래 화기가 있어 민두호를 비롯한 여러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했으며, 금어는 영명천기(永明天機), 금곡영환(金谷永煥), 덕월응론(德月應惀)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상단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에 약사불, 우측에 아미타불의 삼존을 나란히 배치하고 상하좌우로 보살 6구, 나한 8구, 사천왕, 화불 2구, 용왕, 용녀 등이 삼세불을 에워싸는 구도로 표현했다.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을 하였고,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했다.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모두 아미타구품인을 결하였는데, 약사불은 좌우에 협시보살로 월광보살과 일광보살, 아미타불은 협시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표현했다. 화면 아래, 위 네 방향에는 비파, 탑, 칼, 여의주와 용을 지물로 취한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신중도
"1844년(헌종 10) 7월 봉은사 대웅전 현왕도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봉은사 대웅전 우측 벽에 걸려 있다. 신중도는 불법(佛法)을 외호(外護)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을 그린 불화로 인도·중국·한국의 고유 신들이 불교로 수용되면서 성립되었다.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다.
화면 위쪽에 구곡병(九曲屛)을 두르고 좌측에는 위태천과 천룡팔부의 신장, 우측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비롯한 천부중을 배치했다. 범천과 제석천은 네모난 신광을 두르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아래로 문관복에 원유관과 경전을 얹은 관을 쓴 일궁천자와 월궁천자가 나란히 서 있고 오른쪽으로 주악천녀 등이 그려져 있다. 위태천을 위시한 천룡팔부 등은 칼과 창을 들고 오른쪽을 향해 서 있는데 무기를 들고 당당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천부증과는 달리 호법신으로서의 특징이 잘 표현되었다. 송암당(松巖堂) 대원(大園), 퇴은당(退隱堂) 유인(宥仁) 등이 그렸다."(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감로도
"1892년(고종 29) 후불탱화, 삼장보살도와 함께 조성되어 봉안되었다. 가로로 긴 화면 상단에 7여래가 합장한 채 나란히 서 있고, 그 우측에는 인로왕보살, 좌측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 등이 중생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렸다. 칠여래 아래의 제단에는 좌우에 높은 기둥을 세운 후 ‘나무백억화신불(南無百億化身佛)’ ‘나무청정법신불(南無淸淨法身佛)’ ‘나무원만보신불(南無圓滿報身佛)’의 삼신불번(三身佛幡)을 늘어뜨리고 갖가지 꽃과 공양물을 가득 배설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삼신불번이 감로도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다. 이채로운 것은 삼신불번의 글씨가 추사체를 닮았다는 점이다. 중단에는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재를 올리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승려들이 독경하는 모습, 작법승들이 의식을 집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단 중앙에는 서로 마주보고 꿇어앉은 한 쌍의 아귀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고, 그 좌우로 풍속장면과 죄인을 벌하는 모습, 전쟁 등 고통스런 현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단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민두호 및 상궁의 시주에 의해 금어(金魚) 한봉창엽(漢峰瑲曄), 혜산축연(惠山竺衍) 등이 그린 것이다. 상단을 비교적 강조한 느낌이며 다양한 풍속장면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 19세기 말 조성된 감로탱 중 수작으로 꼽힌다."(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동종.
명문에 의하면 1392년(홍무 25년 9월 17일) 조성한 것으로 금 300근이 들었고 여주 지역의 호장(戶長)인 신선(信善)의 시주로 이루어졌으며, 천녕현(경기도 여주)에 있던 장흥사(長興寺)에 봉안된 종이라고 합니다.
용뉴와 음통이 망실되어 철사를 걸었습니다.천판과 종신 사이에는 입상대가 있으며 종신에는 네 군데의 유곽과 아홉 개 유두, 네 개 당좌, 네 구 보살상을 모셨습니다.
유곽
천판과 입상대
보살상
당좌
영산전 편액 백련 지운영(白蓮 池雲英, 1852~1935)으로, 종두법을 실시했던 지석영의 형이자 20세기 초에 활약했던 문인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존불상 가섭과 아난을 협시로 모셨습니다. 석가모니불좌상은 1895년(고종 32) 개금하였고, 나머지 두 협시상은 연산전에 같이 봉안된 16나한상과 함께 1895년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영산회상도 영산전 후불탱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보살, 제자, 사천왕, 금강신의 인물이 상, 중, 하 삼단에 걸쳐 화면에 꽉 차게 그려져 있다. 본존인 석가모니는 이중의 윤광을 등지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우견편단을 입고 있고, 육계는 뾰족하게 표현되었다. 화면 최하단에는 사천왕이 건장하게 표현되었고, 석가모니불 좌우측으로는 문수, 보현보살을 비롯한 6보살이 서 있다. 그림 하단의 화기에 의하면 화주는 해옹자선, 청신녀 김원상행, 김청정화, 이대각화 등이며 돌아가신 스승과 남편, 상궁 등의 영가천도를 시주하였고, 덕월응륜(德月應崙)을 수화승(首畵僧)으로 상규(尙奎), 선명(善明), 완근(玩根) 등이 그렸다.
1895년(고종 32) 영산전의 삼존불과 나한상 등을 개금할 때 나한도 4폭, 사자도 1폭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로 지정되었다."(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십육나한도 "1895년(고종 32) 영산전을 건립하면서 제작 봉안한 7폭 불화 가운데 4폭으로 십육나한을 4폭으로 나누어 그렸다. 현재 영산전 좌우에 각 2폭씩 걸려 있는데, 십육존자를 각각 한 존자씩 그린 뒤 4존자를 한폭에 모아 구성했다. 이중 제 10·11·13·15 존자도는 결실되어 1955년 만봉(萬峰)과 석성(碩成)이 새로 그렸다. 결실된 부분을 보충하는 과정에서 순서가 교란되어 배치되어 있다. 제3·4·16 존재 아래와 제 5·7존자 사이에 화기가 있는데, 상규(尙奎), 경선응석(慶船應釋), 종선(宗禪), 금곡영환(金谷永煥)을 비롯하여 많은 화승들이 참여하여 제작하였고, 이들 중에는 19세기 말 봉은사에서 제작된 불화를 그렸던 화승들이 많다.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되었다."(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신중도 "세로 121.8㎝, 가로 166.5㎝의 면본채색화로 새 날개모양의 투구를 쓴 동진보살 즉 위태천을 화면 중앙에 두고 좌우에 범천과 제석천, 일월천자와 월궁천자 및 천부중(天部衆)을 배치했으며 하단부에는 칼을 들고 서 있는 신장 6구를 크게 묘사하였다. 화면 하단에는 화기가 있다. 1895년(고종 32) 영산전 영산회상도, 나한도 4폭, 사자도 1폭과 함께 제작된 그림이다. 편수(片手)는 상규(尙奎), 금어는 범화(梵華), 상선(尙先), 운조(芸祚)이다.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깅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사자도 "1895년(고종 32) 영산전을 건축하면서 조성한 7폭의 불화 가운데 하나로 현재 영산전의 우측 벽 끝부분 나한도 옆에 봉안되어 있다. 화기에 의하면 자선(慈船)을 화주로 하여 상규(尙奎), 창엽(瑲曄), 재겸(在謙) 등의 화사가 참여하였다. 2007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좌가 이채롭습니다.
북극보전 삼성각이었습니다. 기도 올리는 분들이 참배객 보다는 무속인 같은 분위기 때문에 밖에서 참배하였습니다.
편액은 고종의 이종사촌인 심상훈의 작품 이라고 합니다.
칠성도 1886년(고종 23) 4월 판전의 후불탱화인 비로자나불화, 산신도와 함께 조성되어 판전에 봉안되었다가 1942년 북극보전(北極寶殿)으로 이안되어 1942년 그려진 독성탱 및 산신탱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독성도
산신도
영각 석주스님 글씨
영암당 임성.남호당 영기.사명당 유정.청허당 휴정.허응당 보우대사
창건주 연회국사.석주스님
판전板殿
"봉은사 판전(奉恩寺 板殿)”은 1856년에 창건되고 1878년 중수된 단층 맞배집 목조 건축물로, 봉은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건물 내에 봉안되어 있는 ‘경기좌도광주수도산봉은사화엄판전신건기(京畿左道廣州修道山奉恩寺華嚴板殿新建記)’ 및 ‘화엄판전번와축장중수록(華嚴板殿燔瓦築牆重修錄)’과 2012년 수리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화엄판전상량문(華嚴板殿上樑文)’ 등을 통해 창건 및 중수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본 건물은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각(藏經閣)인 동시에 예불을 드리는 불전(佛殿)으로, 경판보관 및 예불 기능을 병용하기 위하여 독특한 창호 구성을 갖추는 등 건축적 희소성이 있다."(위키백과)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지만 문이 닫혀 내부 비로자나불화, 신중도를 뵙지 못 했습니다. 신중탱(神衆幀) 화기(畵記)에는 추사와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했던 초의(草衣)스님이 증명(證明)으로 참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판전板殿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 추사 71세 되던 1856년, 과천에 머물면서 와병중에 썼습니다.
과果는 과천果川을 뜻 하겠지요.
찌는 듯 한 더위 줄 지은 참배객의 행렬, 여유를 갖고 법당에 앉아 있는 것은 사치이었습니다.
그런저런 연유로 선불당, 흥선대원군 비각, 판전 내부를 참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인연은 언제 일까요?
()()()
2019.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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