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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문경시

문경...벽정(경체정)

by 임병기(선과) 2019.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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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정(碧亭).경체정(景棣亭)

"벽정은 청대구곡의 제2곡으로 부벽을 안고 도는 물굽이를 가리킨다. 청대 권상일 선생은 벽정이 현촌의 남쪽에 있다 하였는데 이말은 현리 남쪽에 있다는 의미이다. 옛문집을 살펴보면 이곳에 함취정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이자리에 경체정이 세워져 있다.

경체정은 1935년 채성우를 비롯해 그 칠형제를 기려 손자 부자父子가 지은 정자다. "경체景棣"는 형제간 우애가 깊어 집안이 번성한다는 뜻이다.정자는 원래 현리마을에 있었는데 1971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현장 안내문)

 

* 7형제

채성우(蔡性禹), 영우(永禹), 약우(若禹), 현우(鉉禹), 장헌(章獻), 용우(鏞禹), 장오(章五) 이며

 

*부자

채묵진(蔡默鎭)과 아들 채홍의(蔡鴻儀) 입니다

 

*'경체(景棣)

시경의 소아(小雅)편 '상체지화(常棣之華)'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청대구곡淸臺九曲

청대 권상일이 금천錦川의 아홉 굽이에 이름 붙임

 

제1곡은 우암愚巖, 제2곡은 벽정碧亭, 제3곡은 죽림竹林, 제4곡은 가암佳巖, 제5곡은 청대淸臺, 제6곡은 구잔溝棧, 제7곡은 관암觀巖, 제8곡은 벌암筏巖, 제9곡은 소호穌湖  입니다.

 

벽정碧亭

 

이곡산고취욕부 二曲山高翠欲浮     이곡이라 산이 높고 푸르름 들려 하는데

고인모동의층구 故人茅棟倚層丘   고인의 띠집이 층암의 언덕에 기대어 있네

경장이노하시동 輕檣利櫓何時動   가벼운 돛대 날카로운 노 어느 떼에 움직일까

서안암횡일소주 西岸巖橫一小舟   서쪽 언덕 바위에 작은 배 가로지르네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 (1679~1759)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중(台仲), 호는 청대(淸臺). 상주의 근암리(近菴里)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증이조판서 권심(權深)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로 부사 이달의(李達意)의 딸이다.

 

학문을 일찍 깨우쳐 20세에 옛 사람들의 독서하는 법과 수신하는 방법을 모아 「학지록(學知錄)」을 저술하였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부정자가 되었으며, 1715년 저작·전적·직강 등을 역임하고, 1720년 예조좌랑을 지냈다.1722년(경종 2) 병조좌랑을 지내고, 1727년(영조 3)에는 만경현령이 되어 이듬 해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사전에 탐지해 영문에 보고하고, 난을 토벌해 공을 세웠다. 1731년 영암군수와 사헌부장령을 지내고, 1733년 양산군수·군자감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같은 해『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을 교열해 간행하고, 이듬 해 상소해 민폐 근절책과 관기숙정 방안을 건의했다. 홍문관의 계청에 의해 경연에 참석해 소신을 진술했다.

 

그 해 울산부사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고, 구강서원(鷗江書院)을 창립해 학문을 진흥시켰으며, 공씨에게 군역을 면제하는 등 선치를 하였다.1741년 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45년 봉상시정, 이듬 해 사헌부헌납·사간원사성·사헌부집의·동부승지·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748년 우부승지로 물러났다.뒤에 대사간·판결사(判決事)·홍문관부제학·한성좌윤·지중추부사·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황(李滉)을 사숙해 「사칠설(四七說)」을 지어 이(理)와 기(氣)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이며 기는 기질의 성이라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청대집(淸臺集)』 18권, 『초학지남(初學指南)』·『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소대비고(昭代備考)』·『가범(家範)』·『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과 『일기(日記)』 30여 권이 있다.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근암서원(近菴書院)에 향사되었다."(다음백과사전)

 

 

경체정

바위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팔작지붕입니다.

중앙 마루, 양협실을 갖춘 중당협실 건물로 사방에 계자난간을 설치했습니다.

 

 

 

계자난간

 

 

산양구곡(山陽九曲)

근품재近品齋 채헌蔡瀗(1715~1795)이 스승 청대 권상일의 청대구곡에 이어 이름 붙인 구곡으로, 경체정 앞 금천 속 두 바위 형제암을 산양구곡의 4곡이라 하였습니다.(당시에는 경체정 자리에 만취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곡 창주滄洲, 2곡 존도봉尊道峯, 3곡 창병蒼屛, 4곡 형제암兄弟巖, 5곡 암대巖臺, 6곡 상주桑洲, 7곡 근품산近品山, 8곡 구룡판九龍坂

9곡 반정潘亭 입니다.

 

형제암兄弟巖

 

사곡파삼형제암 四曲波心兄弟巖  사곡이라 물속에 형제암이 자리하고      

죽림소영총삼삼 竹林疎影摠毿毿  죽림사의 성근 대 그림자 드리웠네        

가련만취정변수 可憐晩翠亭邊水  어여쁘다 만취정가로 흐르는 물이          

백세유방포벽담 百世流芳蒲碧潭   백세토록 부들 못에 꽃향기 전하네         

 

근품재近品齋 채헌蔡瀗(1715~1795)

"조선 중기 학자‧문인. 자는 계징(季澄)이고, 호는 근품재(近品齋)이다. 본관은 인천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문경(聞慶) 산양면(山陽面)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조부는 채두구(蔡斗龜)이고, 부친 채윤형(蔡允亨)과 모친 이이주(李爾胄)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채식(蔡湜)‧채완(蔡浣)‧채연(蔡演)이 있다.


1753년(영조 29) 식년시 생원 2등 14위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수직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였으며, 어려서는 만송(晩松) 홍상조(洪相朝)로부터 제자백가 등을 익히고, 자라서는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퇴계학파의 학맥을 이었다.

평생 자연을 벗 삼아 살았으며, 말년에는 석문정(石門亭)을 지어놓고 석문구곡(石門九曲)의 풍경을 문학적 자질로 풀어낸 「석문구곡가」를 지었다. 「석문구곡가」는 주자의 사상을 흠모하여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받아 지은 작품으로 그의 성리학 사상과 사물에 대한 인식 및 삶의 가치관에 대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부벽(浮壁)

금천강가 너럭바위

너럭바위에는 성혈(바위구멍)이 군데군데 남아 있습니다.

 

 

 

 

 

 

답사중

우연히 들린 석문구곡의 주암정, 청대구곡의 경체정

기회가 되면 문경 일원의 구곡을 비롯하여 경북 북부지방의 선인들이 노래한 구곡을 답사하고 싶습니다.

 

 

20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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