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김천시

김천...대휴사 목조보살좌상

임병기(선과) 2019. 4. 29.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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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에 계신 스님을 찾아 참배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시며, 예배 후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셨다.


우리네

절집 인심이 이랬으면 좋겠다.


답사객을 경계하고, 무표정하게 바라만 보는 일이

전국 대부분 사찰에서 일상화 되어버린 현실이 서글프다.



문의산 대휴사(文義山 大休寺)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 384


동북으로 김천(金泉)이, 남으로는 거창(巨昌)이 위치하고,

가깝게는 물 맑고 산이 깊기로 유명한 무주 구천동이 자리하니

과연 벽송계곡(碧松溪谷)에 수행인(修行人)이 머물 곳이라 할만하다.


대덕산 (大德山)과 삼도봉(三道峰)의

작은 샘에서 시작한 두 물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다가

마침내 합쳐져 경호천(鏡湖川)의 두 물머리가 된 곳에

선좌(禪坐)의 눈매가 저절로 고즈넉이 모아지는 곳이다.


초창(初創)은 신라 헌강왕(憲康王)때

도선 국사가 은적암(隱寂菴)이라 이름하여 절을 세운 후,

천 수백 성상(千數百 星霜)을 이어져 내려 왔다.
그러나 일제(日帝)때 절터가 질이 좋은 규석을 깔고 앉아 있음을 알고

일인(日人)들이 지금의 자리로 이전케 하였다.


문의봉(文義峰) 흰 구름과 경호천(鏡湖川)의 푸른 물결은

대휴사(大休寺) 부처님의 가피력!
길이길이 사해(四海)에 고루 진작(振作)되어

온 누리 불국정토 맑은 향기 놓을 지니,

불맥(佛脈) 영원토록 계승하여 불사에 진력동참(盡力同參)하신

대소 시주불자님 모두 영산회상(靈山會相)에 성불하여 지이다.

불기 2549年 7月 백중

(출처:대휴사 홈페이지)


 

본존불


 

목조보살좌상

동아시아문물연구 학술재단

최선일

2015년

논문 초록이다.


"본 논문은 경상북도 김천시 대휴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삼존불좌상 가운데 목조협시보살을 제작한 하천 스님에 관한 연구이다.


이 보살상은 발견된 후령통을 싼 황초복자를 묶은 종이에 증명(證明), 수정(修淨)과 경전 내에 봉곡사(鳳谷寺)라는 묵서가 발견되었다. 현재 김천 봉곡사에 소장된 현판(懸板)중에는 1730년 4월에 영산전에 봉안할 석가삼존불좌상과 나한상을 조각승[造工比丘] 하천(夏天), 석준(碩俊 등이 제작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현재 대휴사에 남아 있는 목조보살좌상은 1730년에 조각승 하천이 제작한 삼존불 가운데 하나로, 손의 위치로 보아 좌협시보살인 미륵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이 보살상을 제작한 조각승 하천(夏天:-1703-1730-)은 17세기 후반에 태어나 수화승 색난과 1703년에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목조삼세불․사보살상, 1705년에 경남 하동 쌍계사 목조보현동자, 1707년에 전남 고흥 능가사 소조불상, 1709년에 전남 고흥 금탑사 목조보살좌상(고흥 송광암 봉안)을 제작하였다. 그는 1720년에 수화승 일기와 순천 송광사 사천왕상을 개채하고, 수화승으로 1722년에 전남 장흥 보림사 능인전 삼존불상을 개금했으며, 1724년에 장흥 보림사 나한상을 중수하였다. 또한 하천은 수화승으로 1726년에 전남 고흥 금탑사 북대암 목조보살좌상(서울 지장암 봉안)과 1726년에 고흥 금탑사 문수암 목조보살좌상(고흥 송광암 봉안)을, 1727년에 대구 동구 동화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좌상을 제작하였다.


그 후 하천은 1730년에 김천 봉곡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좌상(목조보살좌상 1구 대휴사 소장)과 경남 창녕 포교원 목조여래좌상을 제작하고, 고흥 금탑사 극락보전 미타삼존을 개금․중수하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그의 활동 시기는 1703년부터 1730년까지이다.


목조보살좌상은 높이가 76.0㎝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접목식 중형보살상이다. 보살상은 상반신을 앞으로 조금 내밀어 자세가 구부정하다. 보관 안쪽에는 정수리 부분에 두 가닥으로 묶은 작고 단순한 형태의 보계(寶髻)가 있고, 양 어깨에는 둥글게 말린 보발(寶髮)이 세 가닥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타원형 얼굴에 살짝 뜬 눈은 거의 일자형으로, 눈꼬리가 위로 약간 올라갔고, 삼각형의 코는 콧등이 평평하며, 입은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보살상의 얼굴 생김새를 갖추고 있지만,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기년명 보살상보다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고, 하반신이 높게 제작되었다.


바깥에 걸친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 짧게 U자형으로 걸친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는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복부에서 오른쪽 어깨를 덮은 편삼과 겹쳐져 있다. 하반신의 대의 처리는 중앙에 한 가닥이 길게 늘어져 끝단이 반원형으로 길게 늘어지고, 좌우로 대의자락이 두 가닥 접혀서 흘러내리고 있다. 또한 왼쪽 소매 자락은 연판형으로 무릎을 완전히 덮고 있다. 이와 같은 하반신에 걸친 대의 처리는 17세기 후반에 호남에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이 제작한 목조보살좌상에서 볼 수 있는 요소이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조각승 하천은 색난(色難), 일기(一機)→하천(夏天), 필영(弼英), 석준(碩俊)→성찬(成澯), 종혜(宗慧), 굉척(宏陟) 등으로 이어지는 18세기 대표적인 조각승 계보에 속하는 스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조보살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92호

김천시청 홈페이지의 설명문은 너무 짧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사진도, 설명문도 찾을 수 없었다.

(2016년에 지정되엇는데 아직도 준비중이란다)


 

우협시.지장보살좌상


 

대휴사

지례면.구성면 등의 마을 동제를 위탁하여 모시고 있으며

비구니 3대 강백으로 추앙받는 혜옥(1901~1969)스님이 입적하신 사찰이다.


 

 

지례

지례

지례

고향으로 이장한 9대~6대 조부모님 산소가 있었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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