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사지 오래전 푸른바다님이 올린 풀숲속 맷돌.부도 사진을 보고 사무친 그리움으로 오매불망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 인연은 몇 해를 지나 봄 바람에 실려 입소문 없이 달구벌로 날려왔습니다. 모든 일과를 제쳐두고 한달음에 달려 그렇게 그렇게 뵈었습니다. 그리움 뵙고 싶었던 그리움
그리움 옆에 두고 느끼는 그리움이 가장 절실한 그리움이라 했는데 그리움 미치도록 다시 보고 싶은 형언키 어려운 그림움의 원형질은 무엇일까요?
절터 잿빛 겨울을 비켜 연록으로 물들어 가는 봄날의 절터 주석하였던 낭랑한 비구니스님의 독경을 떠올리며 금당자리를 돌아서는 순간 아~ 목탁소리가 들려 옵니다. 환청이 아닙니다. 분명 간헐적으로 은은하게 절터를 감싸 돌고 있습니다. 동행인에게 동의를 구해보지만 그저 미소만 짓습니다. 산아래 굴삭기의 기계음 마져 목탁소리로 들리는 봄날의 절터 그 곳에서는 꿈 꾸고 싶습니다. 일장춘몽.남가일몽 호접몽이면 더 좋겠지요.
지장사지 지암3리 지장골경로당에서 마을을 지나 길 끝에 위치 "지장사 창건에 관한 문헌기록이 전하지 않고, 일제 강점기 지리지인 상산지常山誌에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77년 자료에는 지장사지가 ‘진천 지암리사지’로 보고되어 있고, 이후 자료에는 ‘지장사지’로 보고되어 있다. 기존 조사에서는 지장보살을 모셨던 사찰이어서 ‘지장사’라고 하였고, 마을 지명도 여기서 유래하였으며, 지금도 이 일대를 ‘지장골절터’라고 전해 진다고 한다. 이곳은 폐사된 후 경작지로 사용되다가 1980년 이후 경작을 금지하였다고 하며, 건물지와 관련된 유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맷돌 1기와 승탑 1기가 있다고 한다.옛날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6개소의 암자가 있었으며,전성기에는 승려가 많아 쌀을 씻는 물이 절에서 3㎞ 떨어진 문백까지 흘렀다고 한다. 또한 상산지에常山誌에 채지홍蔡之洪(1683~1741년)이 이곳에 왔다가 지은 시 한수가 전하고 있어, 조선 영조 때까지 절이 존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절의 폐사에는 영일 정씨와 관련된 일화가 전래된다. 영일정씨가 이 절의 뒷산에 묘를 쓰려 하자 비구니들이 이를 저지하여 싸움이 붙었으나 결국 정씨들에게 지고 말았다. 정씨들이 묘를 쓴 다음날 승려들이 일어나 보니 불상은 땀을 흘리고 있고, 방에는 빈대기둥이 두개나 생겨났으므로 승려들은 살 수 없어 그곳을 떠났고 사찰은 폐허가 되었다 한다."(한국의 사지에서 발췌 정리)
지장사...채지홍(1683~1741)/상산집 임궁숙숙수운심(琳宮肅肅垂雲深) 아름다운 옥궁은 조용하고 엄숙한데 상서로운 구름이 서리었구나 일점니주만고심(一点尼珠万古心) 한 알 한 알 움직이는 여승의 염주소리는 퍽 먼 옛적의 마음이로다. 굴지저두하소색(屈指低頭何所索) 손가락을 꼽으며 고개를 숙여본들 어디 가서 찾으리오 명관응료거래금(冥觀應了去來今) 조용히 고금의 모습만 더듬어 볼 뿐이로다.
맷돌 간벌로 사지가 드러난 절터 상부에 있습니다. 아랫돌만 남아있으며, 대형 맷돌 입니다. 맷돌 상면에는 만력사년병자(자)대화주신녀 비구 천O유O(萬歷四年丙子 (自)大化主信女比丘天◯有◯)라고 음각되어 있습니다. 만력4년은 1576년(선조9)으로 임진왜란 발발 전이며 재가여자신도의 보시와 비구니스님의 주관으로 설치하였음을 암시 합니다. 또한, 숭유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중기에 민가에서 불교를 믿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애잔합니다. 접동새가 우는 날이었다면 난 산아래로 내려가지 못 했을 겁니다.
백허당 부도 사역에서 지장골로 내려오는 임도 아래 경사지에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누워 있습니다. 속리산 하관음암지 정관당 부도 그리고 지장사지 백허당 부도 오늘 인연 지을 백운사지 부도 모르겠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고마움으로 울컥 하고...... 이런 모습으로 물려 주어야 할까요?
석종형 부도.조선후기 원위치는 위쪽 100m라고 하며, 방형 지대석은 땅속에 파묻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주민들은 승탑을 ‘독부독’이라 부르는데, 30년 전에 다시세우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기단부를 포함하면 족히 2미터는 훨씬 넘을 크기 입니다. 탑신석 하부에 부도 주인공인 백허당白虛堂 당호를 새겼습니다.
오래전 부도를 뵙고 온 분이 주민에게 채록한 내용에 의하면 “절터에 있었던 부도인데 몇해 전 어느 스님이 자기 절로 가지고 간다고 끌고 왔다가 못가지고 가고 놔 둔 것인데, 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라고 설명했다. 또 어르신은 부도 밑이 잘린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동네 한분이 맷돌을 만들기 위해 부도 밑을 잘라가지고 갔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맷돌은 그 집 어딘 간에 뭍혀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탑신과 일석인 보주 보주 괴임 위에 연화형 보주를 올렸습니다.
내려 오는 길 정송강의 장진주사를 떠올렸으니. 나? 도대체 어떤 중생일가요? 장진주사(將進酒辭)...鄭澈(1536~1593) 술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헤아리며 끝없이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으로 덮어서 졸라매고 가든 아름답게 꾸민 상여 뒤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뒤따르든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무덤을 말함]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굵은 눈, 소슬바람 불 때. 누가 한잔 먹자할까? 하물며 원숭이가 무덤 위에서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2019.04.08 |
'충청북도 > 진천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천...계산리사지 부도 (0) | 2019.04.14 |
---|---|
진천... 향토민속자료전시관 대좌.귀부.하마비.철비 (0) | 2019.04.13 |
진천...태화4년명마애불상 (0) | 2012.08.02 |
진천...상산초교 석탑.석등부재 (0) | 2012.08.01 |
진천...삼용리 석불입상 (0) | 2012.07.29 |